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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문스독

[다자츄] 전화

* 조각글 

* 다자이가 포트 마피아를 떠나고 한 달 뒤

* 글귀 인용


진동이 손을 타고 전해진다. 보스의 명령, 혹은 누군가의 사상 소식을 전할 때. 이를 제외하고는 연락이 오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 그에게 이 진동은 그리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뜸을 들이다 마지 못해 액정에 시선을 주었다. 휴대폰을 밝히고 있는 이름 하나. 그것을 확인하고서 그는 진동이 온 몸에 파고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진동의 의미는 곧 변화한다. 반갑지 않은 전화에서, 피하고 싶은 전화로. 휴대폰을 쥐고 있는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렸다.

휴대폰은 꾸준히 울렸다. 그러나 그는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가만히 두었더니 굳어 버렸다. 다만 그것 때문인지, 혹은 시야에 들어온 이름 탓인지. 실은 모든 것이 상대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변명일지 몰랐다. 끊이지 않는 진동이 귀를 파먹을 것 같다. 어서 목소리를 들려달라는 재촉이 점점 격해진다. 휴대폰을 놓칠 것 같아 손에 힘을 주었다.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 나온다. 장갑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곧 휴대폰은 울음을 토해내길 멈추었다. 그는 그것을 다른 손으로 옮겨 잡았다. 장갑의 끄트머리를 앞니로 살짝 물어 당겼다. 순간 휴대폰이 다시금 그를 찾기 시작한다. 화들짝 놀라 떨어뜨릴 뻔한 것을 두 손으로 간신히 잡아낸다. 그리고 속삭임과 같이 들려오는,

 

[츄야?]

 

부름.

의도치 않은 접촉이 전화를 수신한 것이었다. '츄야'라 불린 이는 휴대폰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는 입술로 물고 있던 장갑을 쥔다. 수화기 너머는 고요하다. 발신인의 목소리를 자그맣게도 들을 수 없다. 멀기에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님을 그는 알았다. 상대는 말없이 그의 답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는 결국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댄다. 머뭇거리다 짙은 한숨으로 말을 대신한다. 여전히 덧붙여 오는 음성은 없다. 며칠일지 모르는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아 목이 잠기었을 테지만 그는 물음을 건넸다.

 

"왜."

 

낮게 소리를 내었음에도 목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져 입을 다물었다. 휴대폰을 얼굴에서 떼어내고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이 사람과 그리 말을 많이 했던가 의문이 들 정도로, 상대를 잃은 뒤 그는 말을 하는 것이 지나치게 어색했다. '잃었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했다. 애초에 소유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 멀어졌다는 말이 맞겠다. 손이 닿지 않을 곳까지 멀어진. 그는 그리고 그것을 대신할 말을 찾기 시작했다. 손을 맞잡은 적은 있었나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멀어진 것과(이것은 상대가 아닌 다만 휴대폰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다시 가까워지고 싶지는 않았으나 이미 받아버린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끊어버리면 되었다. 그렇게 한다면 이후 다시 전화가 걸려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러지 않았다. 사실 그는 상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전화를 받을 줄은 몰랐다네. 한창 때였으면 임무로 바쁠 시각인데 말이야.]

 

변한 것 없는 목소리. 아니, 조금은 수척해졌을지 모른다. 그것은 아마 그만의 생각일 것이었다. 자신이 없는 상대가 온전하다는 사실을 그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마음조차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말이다. 그것을 제쳐 두고서라도 그는 화가 났다. 배신자 주제에 뻔뻔히 연락을 해 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자이 오사무가 이리도 생각 없는 작자였나. 멍청하게 구는 것이 하루 이틀은 아니었다만, 그래도 언제나 속에 꿍꿍이를 품고 사는 놈이었단 말이다. 아, 그래. 그런 놈이었지. 그렇다면 말이 달라진다. 지금 또한 바라는 것이 있어 전화를 걸어왔을 가능성이 없지만은 않다. 아마 그럴 것이다. 확실히 그렇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서 그는 마음의 침전을 감각했다. 그래, 바라는 것이 있어서. 놈에게 필요한 것이, 나에게 있으니까. 결국 상대에 대한 그의 존재는 그것밖에 되지 아니하였다. 분노도 불쾌감도 사라졌다. 남은 것은 공허. 오히려 아까보다 편안해졌다. 사실 그는, 이렇게 전화를 걸어온 상대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감히 화를 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그 어떤 감정도 받아낼 수 없다면, 화를 내어 받아낼 수 있는 것 또한 없다. 상대는 그의 분노를 흘려낼 뿐이다.

 

"용건."

 

아까보다 단호하고 깔끔한 어투였다. 앞선 한 마디가 실은, 그는 몰랐으나, 정처 없는 떨림을 담고 있었으니. 대화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것에 상대는 숨을 훅 들이킨다. 그 소리는 그의 귀에 틀어박혔다. 상대는 우물쭈물 하는지, 아니면 고민이라도 하는지, 겁에라도 질렸는지 말이 없다. 물론 그는 알았다. 셋 모두 아니라는 것을. 그렇지만 전부 아니라면, 그저 숨을 고르고 있는 것뿐이라면 열 받으니까. 그래서 그는 다시 한 번 말하려고 했다. 여유를 주고 싶지 않았다. 재촉과 동시에 짜증스러운 기색을 한껏 드러내고자 했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그는 숨을 들이쉬었는데, 그것보다 먼저 상대가 입을 열었다.

 

[잘 지내?]

 

언제나보다 다정하고, 언제나보다 부드러운. 그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는 숨만이 오고 갈 뿐이다.

 

[여전히 예쁘고?]

 

그는 저도 모르게 전화를 끊었다. 상대의 목소리를 누군가 덮어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것 또한 상대가 맞았다. 들어버린 목소리도, 머릿속에 파고든 목소리도 다자이 오사무의 것이었다.

 

예뻐, 츄야.

예쁘다니까? 이런 걸로는 거짓말 안 해.

진짜 못났는데 예쁘다.

예쁜아.

츄야.

 

츄야, 사랑해.

 

아, 아아. 눈물이 뺨을 적시고 입 안으로 스민다. 너의 얼굴은 그리도 상냥했던가. 너의 기억을 죄 지워냈다 생각했는데 남은 것이 왜 이리도 많은지. 너와 함께 했던 평생을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지워내기에 충분하지 못했나 보다. 사랑을 전하는 눈이, 입술이 지나치게 낯설고 지나치게 그리워 나카하라 츄야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만다. 흐느낌은 골목을 채워낸다. 그리고 꺾어진 골목의 끝, 누군가의 새카만 그림자가 가로등 아래를 헤매는 듯하였다.

 

 

 

1_9_97s의 글귀를 인용했습니다 (잘 지내? 여전히 예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