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D/문스독

[다자츄] 혐관에서 맞관되기 04

* 03 : http://xkznshin.tistory.com/255

* 학원물

 

 

 

공주.

공주야.

츄야, 우리 공주.

 

시답잖은 말들이 귓가를 맴돈다. 손바닥으로 귀를 짓눌러 막아도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검지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틀어막아 보았지만 그 다정하고 짜증나는 부름은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다. 주머니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던 휴대폰을 꺼냈다. 이어폰을 구멍에 맞추어 쑤시는 손이 거칠다. 최대한 시끄러운 노래를 틀어 귀에 이어폰을 끼웠다. 그리고 나카하라의 얼굴이 잔뜩 구겨진다.

 

공주야. 공주야.

 

음량을 아무리 키워도 속삭임은 그 사이를 파고들어 나카하라를 괴롭혔다. 목소리를 지워내려 계속 소리를 키웠더니, 노랫소리가 너무 커져 귀가 아팠다. 신경질적으로 이어폰을 뽑아냈다.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어 의자에 앉은 채로 발을 쾅쾅 굴러댔다. 열 받아. 그리고 문득 알게 되었다. 그 목소리는 밖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니다. 정체 모를 누군가가 귀에 목소리를, 끊임없이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

나카하라 츄야의 머릿속에서 울려대는 것이었다.

 

씨바알.”

 

앓는 소리와도 같은 욕설을 느릿하게 뱉어내고 나카하라는 책상에 엎어졌다. 차가운 책상에 뺨을 문질러도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도무지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카하라는 조금 바보 같을지 모르는 결론을 내렸다. 다자이 오사무의 목소리를 잊자. 공주라는 말을 지워내 버리자. 그래서 나카하라 츄야는 다자이 오사무를 피하기로 했다.

 

 

 

혐관에서 맞관되기 04

 

 

다자이 오사무는 심란한 얼굴로 밥알을 씹었다. 그의 앞에 앉은 이는 어째선지 불편한 얼굴로 젓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다자이는 밥이 조금 얹어진 숟가락을 입 안에 가져다 대려다 말고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반듯한 얼굴에 힘줄이 돋아나는 것 같았다. 숟가락을 입 안에 들이 밀었다가, 멈춰 버리고 다시 한숨을 푸욱. 쿠니키다 돗포는 결국 탁 소리 나게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주의를 집중시키는 소리에 멍하게 고개를 든 다자이의 미간을, 쿠니키다의 손가락이 똑바로 가리켰다.

 

밥맛 떨어지게 왜 자꾸 한숨이냐!”

내가 그랬어?”

 

쿠니키다는 얼굴을 조금 일그러뜨리더니 말을 말자는 식으로 입을 다물었다. 몇 분가량의 시간 동안 그 입술이 벌어지는 것은 음식을 밀어 넣을 때뿐이었다. 다자이는 반찬을 집어 먹는 법이 없었다. 보다 못한 쿠니키다가 얹어 주는 것만을 깨작거리다 대강 삼켰다.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도저히 말을 건네고 싶지 않아, 조용하지만 시끄럽고 그러나 군더더기 하나 없는 동작으로 쿠니키다는 다자이의 식사를 계속 도왔다.

쿠니키다가 그러면서도 식판을 전부 비워냈을 때 다자이는 반에 반도 해치우지 못한 상태였다. 쿠니키다는 미간을 잔뜩 좁히고 입을 열었다. 도대체 왜 그따위의 상태냐 묻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다자이, 하고 부르려던 입은 곧 다물린다.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츄야가, 츄야가.

 

츄야가 밥 따로 먹자고 했어.”

안다. 그래서 나와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따로 먹자고 했어.”

안다.”

따로.”

안다.”

 

꼬박꼬박 대꾸해 오는 쿠니키다에 다자이는 세상을 잃은 얼굴을 했다. 부정하고 싶었던 사실을 확인 사살 당한 것이었다. 나카하라에게 그 말을 들은 지 한참 지난 시각이었으며, 현재 쿠니키다와 식판을 맞댄 상황이면서도 다자이는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자이가 절망스러운 얼굴로 절망스러운 목소리를 내었다.

 

츄야가 날 싫어하나봐.”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거냐?”

쿠니키다 군은 몰라! 바보!”

 

다자이는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식당을 빠져나갔다. 전력 질주와도 같은 걸음이었다. 어이가 없어 움직이지 못하는 쿠니키다만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식판 두 개와 함께.

 

쿠니키다는 다자이의 츄야가 밥 따로 먹자고 했어.’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자이가 과민 반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1학년 때부터 그들을 지켜본 이라면 다자이의 반응을 납득할 수 있을지 모른다. 쿠니키다는 다자이와 나카하라가 아주 친하며 다자이가 그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보다 조금 더 오래 둘을 가까이 두었던 몇 명은 한 가지의 사실을 더 안다. 두 사람이 좀처럼 떨어지는 법 없었다는 것. 별 것 아니지만 다자이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 중요한 사실이다.

다자이가 이와 비슷한 말을 쿠니키다에게 하지 않았을 리 없다. 나랑 츄야는 거의 한 몸처럼 붙어 다녔다니까? 그리고 쿠니키다는 그것을 순도 백 퍼센트의 거짓말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오히려 순도 백 퍼센트의 진실이었지. 그것을 굳이 증명해야 한다면, 급식실을 빠져나간 뒤의 다자이를 따라가면 된다.

 

츄야가 그렇게까지 말했다니 참 별일이구나.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모양이야, 다자이.”

아니에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 갑자기 츄야가 나랑 밥 안 먹는다고 했어.”

네가 모르는 사이에 츄야에게 잘못을 한 거겠지.”

 

3학년 A반 오자키 코요는, 책상에 엎어져 칭얼거리고 있는 다자이에게 책을 한 권 건넸다. 다자이는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축 처진 어깨로 책꽂이 맨 위의 비어 있는 공간에 책을 끼워넣었다. 도서부장 오자키는 다자이에게 책을 한 무더기 건넸다. 고민 상담 값이라고 주장하는 오자키에,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다자이는 순순히 정리를 도왔다.

나카하라의 옆집 누나로, 다자이보다 나카하라와 오래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오자키 코요. 처음에 다자이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1학년 1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였다.

 

누님, 보고 싶었습니다.’

등교하다가 만나지 않았니.’

그래도 학교에서 보는 건 다르지요.’

 

그렇게 애교를 부리는 나카하라는 다자이는 본 적이 없었다. 둘이 서로를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에서 자신이 나카하라를 좋아했을 리 없다고 다자이는 생각했지만, 그런 나카하라의 모습을 보면서 다자이가 느낀 감정은 분명 질투였다. 제게 답삭 안긴 나카하라의 등을 토닥이며 오자키는 다자이와 눈을 맞추었다. 시선을 얽은 오자키의 눈빛이 다자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언가를 꿰뚫고 있는 듯했다. 정말 오자키는 다자이의 생각을 꿰뚫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다자이 그 자신보다, 오자키가 그의 마음을 먼저 알아 버렸는지 모른다. 그건 지금에 와서야 든 생각이고. 그 당시 오자키는 다자이에게, 그저 치워 버리고 싶은 여자 하나에 불과했다.

 

츄야가 그랬다니까요.’

츄야는 원래 수줍음이 많은 아이야. 너도 알잖니?’

그건 그렇지만.’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지 오자키는, 다자이의 고민을 성심성의껏 들어주는 몇 없는 이들 중 하나가 되었다. 제 이야기를 시간과 장소 따위 가리지 않고, 타인의 상황 따위 고려하지 않고 늘어놓는 다자이의 말을 경청하는 이는 많이 없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사실만으로 다자이는 오자키에게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엇다. 게다가 오자키는 나카하라와 관련된 고민이라면 종종 해결책도 제시해 주었다. 다자이는 2학기가 시작될 무렵 오자키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나보다 네 놈이 누님이랑 더 친해 보여, 하고 나카하라가 투덜거릴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나카하라가 오자키에게 무언가 말을 했을 줄 알았는데, 다자이가 오자키를 찾아올 것을 알았는지 그녀에게 무엇도 말하지 않은 듯했다. 아니면 그녀가 모르는 체 하는 중이거나. 우울한 다자이의 걸음은 교무실로 향했다. 다자이는 별다른 노크도 없이 교무실 문을 확 열었다. 교무실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다자이는, 저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오다사쿠! 안고!”

다자이, 교무실이다.”

어차피 안고와 오다사쿠뿐이지 않은가.”

다자이 군은 우리를 교사 취급 해줄 필요가 있어요.”

 

안고의 투덜거림에 잠시 즐거운 듯 웃어 젖혔던 다자이의 얼굴에 금세 그늘이 드리운다. 다자이는 구석에 박혀 있는 의자를 질질 끌어 두 사람과 가까이 앉았다. 다자이와 나카하라의 담임이었던 오다 사쿠노스케와, 다자이의 친한 형이자 오다의 동료 교사인 안고는 다자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전교적으로 눈치가 없다고 소문이 자자한 오다마저도 그의 침울함을 눈치 채었던 것이다.

 

무슨 일 있나, 다자이.”

오다사쿠.”

왜 그러는가.”

츄야가 오늘 나랑 밥 먹기 싫다고 했어.”

 

오늘 밥 따로 먹자. , 달라붙지 마라. 꺼져. 꺼져. 쿠니키다랑 먹으면 되잖아! 친구도 많은 놈이 짜증나게, 진짜. 왜냐고? 그냥 너랑 먹기 싫어. 매정하고 상처만 줄 뿐이었던, 조회 시간 전의 나카하라를 다자이는 다시 떠올리고 울상을 지었다. 안고는 헛웃음을 치며 안경을 올렸다. 나이가 몇인데 친구가 그런 말 했다고 상처를 받습니까, 타박을 주려던 안고의 입은 말을 쏟아내지 못했다. 오다의 진지한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 어떤 잘못을 한 건가, 다자이. 나카하라가 더 화나기 전에 어서 사과하도록 해. 일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말이다.”

 

한 번에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오다는 처음이라고, 안고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웃기지도 않는 대화 내용이다만 두 사람이 저러고 있는데 혼자 분위기를 헤집어 놓을 수는 없어 난 잘못한 게 없어! 츄야가 날 싫어하는 게 분명해. 난 미움 받고 있어.’ 우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 다자이의 곁을 지나쳐, 안고는 교무실을 나갔다. 안고, 어디 가! 다자이는 뒤늦게 그것을 알아차리고 안고를 붙잡기 위해 팔을 휘저었지만 허공만 움켜댈 뿐이었다.

 

안고는 교무실 바로 옆에 있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아래층 복도의 끝에서, 사뭇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나카하라 츄야와 에도가와 란포를 목격했다.

 

다자이와 밥이 먹기 싫어질 정도라니, 큰일인데.”

싫은 건 아니고, . 좀 그래요.”

흐음. 그 부분은 내가 해결해줄 게 없지.”

그렇죠.”

 

두 사람의 대화가, 나카하라의 한숨이, 듣고 싶지 않았음에도 안고의 귀에 파고든다. 도대체 두 사람이 함께 밥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왜 그리 심각하게 다가오는지 안고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교실에서, 제 교과서에 다자이의 글씨체로 잔뜩 새겨진 나카하라의 이름을 박박 지워내고 있는 쿠니키다와 마찬가지였다.

'2D > 문스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자츄] 죄  (1) 2017.04.02
[다자츄] 마음을 나누어요  (0) 2017.03.27
[다자츄] 전화  (0) 2017.03.09
[다자츄] 혐관에서 맞관되기 03  (0) 2017.03.05
[다자츄] 혐관에서 맞관되기 02  (0) 2017.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