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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문스독

[다자츄] 혐관에서 맞관되기 01

* 학원물

 

 

다자이 오사무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고민. 당장 무엇인지 말하지 않으면 머리에 구멍을 뚫어 버리겠다고 총을 들이밀어도,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만큼의 일급비밀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끄러우니까!

 

수업을 배경음악 삼아 볼펜으로 무언가를 끼적이던 다자이의 두 눈이 갑작스레 초점을 찾는다. 정신을 차리려는 듯, 턱을 괸 그대로 가만히 눈을 깜빡이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글자를 읽어 내린다. 아아, 다자이 오사무는 믿을 수가 없는 사실을 직면하고 만다. 제 손은 도대체 무엇을 써 내려가고 있던 것인가. 인정할 수가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안타깝게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순간 열이 훅 끼친다. 발갛게 물든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공책의 한 바닥, 낙서로 뒤덮인 쪽을 황급히 뜯어낸다. 손 안에서 종이가 우그러든다. 그것은 가차 없이 주머니에 쑤셔 넣어진다.

허리를 숙여 책상에 뺨을 대었다. 뜨거운 얼굴에 닿는, 차갑고 딱딱한 책상의 느낌이 이질적이다. 살짝 움츠렸던 어깨를 편히 늘어뜨린다. 자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자 버리자. 눈꺼풀로 눈을 뒤덮었다. 빛을 차단했지만 정신은 말짱하다. 밤을 거의 새다시피 했음에도 영 잠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자야 한다. 깨어 있는 시간이 괴롭다. 마냥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닌데, 어쨌든 괴롭다.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잠을 청하려던 찰나.

 

다자이 오사무!”

네에.”

 

날카로운 선생의 부름에 몸을 느릿느릿 일으킨다. 다물린 입술을 톡톡 치는 한숨을 꿀꺽 삼켜낸다. 매서운 눈빛을 피해 교과서에 시선을 처박았다. 다자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도움이 안 돼.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잠은 오지 않지만 졸려서 그런지 시야가 흐릿하다. 그 중에서도 분명하게 보이는아냐, 아냐. 이러면 안 되지. 책상 밑으로 손을 내려 허벅지를 아프게 꼬집었다. 눈물이 핑 돌아 눈앞이 조금 더 뿌옇게 변하지만 그것만큼은 여전히 또렷하다. 또 이래, . 입 안 여린 살을 저도 모르게 짓씹었다.

 

예뻐서는 안 되는데, 예쁠 리 없는데, 그럼에도 예뻐서. 그래서 도통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얼굴이 책 위를 어른거린다.

 

 

 

혐관에서 맞관되기 01

 

 

다자이는 도통 요즘의 제 상태에 대해 납득할 수가 없었다. 자꾸 떠오른다. 그 얼굴을 그려낼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계속 보고 싶고 헤어질 때가 되면 아쉽다. 손가락이 스치면 냉큼 잡아버리고 싶다. 허리를 와락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며 입을 맞추고 싶다. 그것을 다자이는 절대로, ‘사랑이라는 말로 정의하고 싶지 않았다.

한심하다는 건 안다. 누가 봐도 사랑인 것을, 아니라고 우겨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 대상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사람인걸. 나는 그 애를 좋아해, 머릿속을 스치는 그 한 문장을 다자이는 자꾸만 부정하고 있었다. 될 수 있다면 이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다. 물론 불가능하다는 것은 일찌감치 알아챘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가득 채워 버린 이름.

 

나카하라 츄야.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는.

 

다자이는 앓는 소리를 내며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또 떠올려 버렸어.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와 정신을 어지럽힌다. 이래서는 안 되었다. 다자이는, 다자이 오사무는, 적어도 다자이 오사무만큼은 이래서는 안 되었다.

 

물론 그가 고민하고 있는 이유가, 나카하라 츄야가 남자라는 사실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성별 같은 거, 그렇게 문제되는 거 아니잖아. 같은 반 남자 아이에게 고백하던 중학교 2학년의 다자이 오사무가 했던 말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깔끔하게 차이고 게이라고 소문도 났다. 세상에게 버림받느니 내가 세상을 버려주겠어. 2병의 정석을 밟았던 다자이에게는 트라우마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일이지만. 누구보다 당당하게 왕따 아닌 왕따로서 중학교를 졸업한 다자이는 지금, 훌륭한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있었다.

그를 이리도 심각하게 만든 것은 자신의 연애 세포를 일깨운 사람이 나카하라 츄야라는 사실 자체였다. 그것이 왜 문제냐. 한 번 물어보도록 하자. 다자이 오사무가 나카하라 츄야를 좋아한다는데, 그러면 안 되나요? 이 학교 학생에게 묻는다면 백이면 백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을 것이다. 욕을 하는 이도 있겠지. 선생에게 말한다면 조퇴를 시켜버릴지도 모른다. 다자이 오사무가 나카하라 츄야를 좋아한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를 해.

 

이 씨발놈아, 내 체육복 니가 가져갔지.”

츄야도 참. 내가 유아용 체육복을 가져서 뭐해?”

, 그러네가 아니잖아!”

 

하루가 멀다 하고 주먹다짐을 벌이는 이들 사이에서 그런 감정이 피어날 리 없잖아?

 

라고, 다자이 오사무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나카하라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은 다자이에게 재앙과도 같았다. 이리도 불행한 일이 왜 하필 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자각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렇게 중얼거리며 강물에 뛰어들려는 것을 쿠니키다가 열다섯 번 정도 막았었다.

 

짧은 팔을 몇 번 휘두르다, 제 분에 못 이겨 씩씩대며 반을 나가는 이의 뒷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내 체육복 어디 있는지 아냐고 마주치는 모두에게 던지는 의미 없는 물음. 그 목소리가 작아져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자 다자이는 그제야 시선을 돌렸다. 츄야는 정말 귀찮다니까. 전혀 귀찮아 보이지 않는 표정과 말투로 그렇게 중얼거리고서 다자이는 가방 지퍼를 열었다.

 

츄야 주제에 눈치만 빨라서.”

 

, 내가 가져간 건 아니지만. 맨 위에서 얌전히 돌돌 말려 있는 체육복을 꺼내 펼쳐 들었다. 나카하라 츄야. 정자로 박혀 있는 글씨를 소리 내어 읽고는 그것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졸리니까, 졸린데 불편하니까 베개로 쓰는 거야. 그런 거야. 다른 마음은 없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고는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그에 얼굴을 처박는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저희 집 섬유 유연제 냄새가 날 뿐이었지만 어째선지 입 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간다. 어느 순간 그의 옆에는 못마땅한 기색을 숨길 줄 모르는 쿠니키다가 서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마음을 아는 이들 중 하나. 그러나 그것을 혼자서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쿠니키다는, 자신이 다자이의 도를 넘는 행동을 저지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쿠니키다는 다자이를 막기 위해 출동했다.

 

다자이, 절도는 나쁜 거다.”

~니거든요. 바보 츄야가 우리 집에 두고 간 거거든요.”

 

쿠니키다는 믿을 수가 없었다. 변태적인 성향이 뼛속부터 가득 차 있는 다자이가, 좋아하는 사람의 냄새를 맡겠답시고 체육복을 훔쳤을 가능성은 아주 농후하다. 아무래도 나카하라에게는 자신이 돌려주어야겠다. 그렇게 생각을 마치고서 손을 뻗었지만, 다자이는 의자를 뒤로 끌어 가뿐하게 피한다. 그리고는 체육복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로 벌떡 일어서더니 쿠니키다가 방향을 틀 새도 없이 뒷문으로 달려간다.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던 쿠니키다가 몸을 바로 하고서 퉁명스레 물었다. 체육복 탈환은 포기한 채였다. 어디 가나? 돌려주러 가야지. 곧 종이 칠거다. 괜찮아요, 괜찮아. 경쾌한 스텝으로 다자이 오사무는 반을 빠져 나갔다. 귀찮은 일은 질색이라는 그 다자이 오사무가 친히 그의 반까지 행차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을 묻는다면 본인은 아마 이렇게 대답하겠지.

 

내 거 도장 찍으려고?

 

그리고서는 화들짝 놀라 손사래 치며 내가 츄야를 좋아한다는 건 아냐! 그냥, 츄야는 내 거니까.’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을 것이었다.

 

아차차. 한적한 복도를 달리던 다자이는 방향을 틀어 매점으로 향했다. 츄야 화낼 테니까 초코 우유라도 사 들고 갈까나. 벌개진 얼굴로 목청껏 소리 지르다가, 우유에 빨대를 꽂아 물려주면 눈을 세모꼴로 뜨고서도 쪽쪽 맛있게 빨아 먹을 나카하라를 생각하니 절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곱게 휜 두 눈이, 어느 순간 올라가 있던 입 꼬리가 사랑을 잔뜩 담고 있다.

물론 그렇게 정성을 다 해도 두 사람이 연애라는 것을 하게 될 거라고,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것은 다자이조차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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