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D/문스독

[다자츄] 눈이 멀어버린 날 上

* 컬러버스
* 카페 사장 X 교사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을 장님이라 지칭했다. 나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네. 그 말을 들으면 대부분 의아해 했지만 그저 잘못 들은 양 넘겼다. 다자이와의 인연을 더 이상 잇지 않을 이들의 경우였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꽤나 오랜 시간 지속되자 그를 다그치고 그런 장난은 치는 것이 아니라고 달래었다. 그럼에도 다자이는 꿋꿋이 자신을 장님이라 지칭했다. 그들은 머지않아 포기했다. 다자이의 고집을 이길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다자이가 거리 변두리에 차린 조그만 카페 이름도 Blind, 장님이었다. 전부 새카맣고 새카만 카페였다.
다자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조금도 장님인 척 하지 아니하였다. 평범하게 앞을 봤고 평범하게 생활을 했다. 카페에서 한두 달 가량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학교 새내기 나카지마 아츠시는 도대체가 영문을 모르겠어서 매니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사장님은 왜 눈이 안 보인다고 말하시는 건가요? 쿠니키다 돗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알겠냐, 다자이 놈 생각을.

'언제부터 그러셨던 거예요?'
'처음 만났을 때도 저러고 있었다.'
'에엣.'

나카지마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게 다였다.

나카지마가 다자이의 알 수 없는 말을 그냥저냥 납득해가던 참이었다. 그리고 그 날은 아주 바쁘지 않으면 카페에 모습을 보일 줄 모르는 다자이가 어째선지 구석진 곳 의자에, 오픈 시각부터 삐딱하게 앉아 있던 날이었다. 요새는 보기 힘든 까만 중절모를 덮어 쓴 남자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님 없이 한산한 시간대였다.  테이블 밑을 비질하던 나카지마가 경쾌하게 외쳤다. 어서 오세요! 그러나 그 인삿말은 다자이의, 아마도 처음 듣는 톤의 쾌활한 부름에 묻힌다.

"츄야!"
"여, 다자이. 변함없이 시끄럽군."

나카지마에게 다자이는 아주 조용하고, 하는 것이라고는 시집 책장을 팔랑팔랑 넘기거나 커피를 내리는 것 뿐인데다가 말을 하는 일도 드문 사장이다. 그래서 다자이의 텐션에 한 번 놀랐고, 낯선 이의 말에 두 번 놀랐다. 쿠니키다는 익숙한지 귀를 막고 한숨만 쉬었다 : 이는 언제나 다자이가 말이라는 걸 할 때면 나오는 행동이었다.

"츄야, 츄야. 뭐 먹을래?"
"그만 좀 불러라, 이름. 아무거나."
"대령하겠습니다, 마마."
"죽어, 미친놈아."

다자이는 배실배실 웃으며 주방 쪽으로 뛰어갔다. 나카지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다자이와 그의 손님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게걸음으로 쿠니키다에게 다가간다. 발꿈치를 들어 쿠니키다의 귀에 입술을 바싹 들이민 나카지마가 소근소근 묻는다.

"저 사람은 누구예요?"
"아? 어. 다자이 녀석의 고등학교 후배라고 들었다."
"호, 혹시 애인...? 막 말도 놓고 그러는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나카지마는 곁눈질로 그 사람을 흘끔흘끔 훔쳐 보다 눈이 마주친 순간 뒤로 넘어졌다. 바보냐? 한심해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보다는 저 남자가 비웃고 있을 것 같아 창피했다. 엉덩이에 느껴진 강한 충격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서 나카지마는 쿠니키다의 부축을 받고 비틀비틀 일어섰다. 카운터를 짚고 한숨을 포옥 내쉬자 처음 듣는 목소리가 나카지마를 부른다.

"저기."
"...저요?"
"네, 그쪽. 왜 자꾸 봐요?"
"아, 으, 아니.... 그게."

나카지마는 우물쭈물 하다가 갑자기 굳은 결심이라도 한 듯한 얼굴로 그에게 걸어갔다.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남자는 나카지마가 다가오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카지마는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추더니 허리를 팍 숙여 대뜸 인사를 건넨다.

"아, 안녕하세요!"
"......."
"실례지만 사장님과 사귀는 사이십니까?!"
"......."
"......."
"초면에 미안한데 미쳤어요?"

고개를 들어 확인한 표정은 정말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어 나카지마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 그러시군요. 사장님께서 저희한테 커밍... 아니, 이걸 말해도 되는 건가? 하여튼 그것도 그렇고 저런 사장님은 처음 봐서, 죄, 죄송합니다아.... 남자는 귀찮다는 얼굴로 손을 대충 흔들었다.

"그냥 친구예요. 좀 오래된."
"그, 그럼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될까요."

남자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무얼 물어볼 것인지 들어나 보자 하는 기색을 비추었다. 나카지마는 허리를 숙여 남자와의 거리를 좁힌다. 아주 특별한 비밀이라도 말하는 양 나카지마는 소리를 죽여 자그맣게 물었다. 사장님께서 자기를 장님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아시나요? 그의 노력이 무상하게도 남자는 목소리 톤을 전혀 낮추지 않고 버럭 외치듯ㅡ나카지마의 기준에서ㅡ 되묻는다.

"아직도 그래요?"
"저어, 저, 조금만 조용히...."
"유난이네..., 고등학교 때도 그러긴 했어요. 한 달 전에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그랬지."

그렇지만 나도 이유는 몰라요, 하고 남자가 말을 끝맺자마자 다자이의 방정맞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어어, 아츠시 군! 내 츄야한테서 떨어져!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몸을 틀어 나카지마에게서 시선을 거둔다.
팔짝팔짝 뛰며, 그러면서도 쟁반은 몹시도 안정적으로 든 채 다자이는 남자에게 다가왔다. 테이블에 안전하게 쟁반을 내려놓고 다자이는 남자의 맞은편에 의자를 빼 앉았다.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서는 얼굴을 받치고 다자이는 빙그레 웃었다.

"아츠시 군이랑 무슨 얘기 했어?"
"별로."
"헤에, 궁금한데."
"야, 이거 맛있네."
"그으치! 다자이 표 특제 케이크랍니다. 츄야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포크로 케이크를 조금씩 떠 먹는 이를 다자이는 계속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것은 그가 접시를 비우고, 휘핑크림이 잔뜩 얹어진 캬라멜 마끼아또를 입에 댄 이후에도. 당연한 것인지 츄야라 불린 이도 다자이도 불편한 기색 하나 없었다. 나카지마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여전히 궁금해 하는 듯했지만 다자이는 별 말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중에 알바생과 사장의 긴밀한 면담이라도 가질 셈인 것 같았다.
사실 나카지마가 둘을 계속 염탐하며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그 상황보다 제 친구를 바라보는 다자이의 눈이었다. 보기 힘들다는 듯 눈가를 찌푸렸다가 부비기도 했다가 빠르게 깜빡이기도. 보다 못한 나카지마가 다가가 다자이의 어깨를 톡톡 쳤다. 다자이는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그 손짓에 대답했다.

"왜?"
"눈이 불편하시면 인공 눈물이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요사노 상은 가지고 계실 것 같은데."
"괜찮을 텐데. 쟤 맨날 저래요."
"응, 괜찮아. 그리고 우리 츄야가 너무 눈 부셔서 눈이 안 아플 수가 없어."

또 개소리한다. 난 언제나 진심인걸! 그의 친구와 달리 그러한 발언에 익숙치 않은 나카지마의 시선이 얼굴을 찔러댔지만 다자이는 모르는 척 했다. 이 유달리 반짝이는 사람을 눈에 담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남자가 입술에서 컵을 잠시 뗀 사이를 틈 타, 다자이는 손을 뻗어 그의 한 쪽 뺨을 감싸쥐었다. 남자가 눈을 사납게 떴다. 신경 쓰지 말고 먹어. 혀를 쯧 차고서 다시 컵을 기울이기 시작한 이의 얼굴을 몇 번 쓰다듬고서 다자이는 손을 거두었다. 눈이 자꾸만 비명을 질러 댔지만 시선을 돌릴 수는 없었다. 돌려지지 않는다. 직접 만든 걸 먹이고 싶다는 욕심에 떨어져 있던 그 잠시 동안이 미치게 아쉬웠다.
다자이는 새까만 장갑에 감싸진 채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손 위에 제 손을 몰래 올려두었다. 잠시 쳐다 보았다가도 곧바로 신경을 꺼 버리는 그가 너무도 사랑스럽고 예뻐서 다자이는 슬금슬금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느라 바빴다.
나의 빛, 나의 세상에 색을 틔워 준 고마운 사람. 다자이는 그의 손을 세게 움켰다. 그러지 않으면 눈을 깜빡인 새 훌쩍 떠나버릴 것 같아서.



하 편에서 고등학교~현재 이 기간의 내용을 다룰 계획인ㄷ ㅔ 내가 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