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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문스독

[다자츄] 遺(남기다, 그리고 남다)

* 문스독 전력 <눈>
* 사망 소재
* 遺 남기다 유 / 남다 유


0.
눈이 와.
눈이 와, 다자이.
너와 내가 사랑이란 걸 하게 된지 꼭 일 년 째 되는 날, 이렇게도 예쁘게 눈이 와. 조금 유치한 말이지만ㅡ, 하늘도 우리를 축복하는 걸까.

나는 잘 지냈어. 네 생각도 조금 했고, 술도 많이 안 마셨어. 퍽 하면 들이붓고 전화하던 주정뱅이는 어디 갔냐고 놀림 받을 지경이다. 너 솔직히 놀랐지? 아닌 척 할 거 뻔하지만 다 알아, 인마. 나도 조금은 놀랐는걸, 취하지 않고도 멀쩡히 걸을 수 있으니 말야. 뭐, 보통 반대지만. 하여튼! 네가 놀랄 것도 없다 이거야. 건강 챙기라고 한 건 너잖아. 바보.
애들도 잘 지내. 걔네가 애냐, 너 없으면 못 살게. 밥도 잘 챙겨먹고 있어. 아..., 딱히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네가 놀라 자빠질까봐. 아쿠타가와가 많이 아파. 곧 너한테 보내게 될 것 같다. 말 없이 안아줘. 평소처럼 죽빵이나 갈기지 말고.

눈 많이 오네. 돌아갈 때 힘들겠군. 문득 생각났는데 네가 예전에 눈을 좋아하냐고 물었었지. 그 때 내가 뭐라고 했더라. 아주 귀찮고 짜증난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내 말은 기억이 안 나. 하지만 네 얼굴은 똑똑히 기억해. 너는 웃었고, 나는 너를 차마 쳐다보지 못했었다. 너는 정말로, 너무도..., 깨질 것 같았으니까.
나는 아직도 눈이 싫어. 사실은 눈만 보면 구역질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그 때 눈 속에 처박히던 네가 자꾸만 떠올라서 나는, 아니. 아니야. 나 가볼게. 내년에 또 보자. 어쩌면 내일일 수도 있고.


1.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자이 오사무는 죽었다. 폐병이라고 했다.

나카하라의 세상이 무너진 것은 눈이 오는 새하얀 거리에서였다. 둘은 손을 잡았고 부끄러운 듯 웃었고 수줍게 입을 맞췄다. 나카하라는 눈이 싫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소복소복 쌓인 눈을 밟는 걸음은 지나치게 신이 나 있어 다자이는 웃음을 참아내기 바빴다. 나카하라는 다자이의 떨리는 입꼬리를,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고 생각했다. 감히 그렇게 생각했다. 행복하다고, 이 세상 누구보다 더.

사람을 죽이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가 그런 생각을 한 순간 무언가를 빼앗기게 되어 있다.

나카하라는 맞잡은 손을 빼앗겼다. 얼굴에 한 가득 담겨 있던 미소를, 기쁨을, 여유를 빼앗겼다. 다자이의 무릎이 얼굴이 눈에 파묻혔고 나카하라는 조심히 무릎을 꿇었다. 다자이? 손을 뻗었다. 다자이? 어깨를 흔들었다. 다자이? 입술을 짓씹었다. 다자이? 눈물이 비집고 나왔다. 다자이? 다자이? 다자이?
나카하라는 아무도 없는 그 무서우리만치 깨끗한 거리에서 다자이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리고 쓰러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울음을 참느라 이를 앙 다문 아쿠타가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생각했다. 빌어먹을 세상이 끝났구나.


2.
그 어깨에 손끝이 닿았던 순간 어쩌면 이미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산산히 흩어질 미래, 라는 것을.


3.
나는 남겨지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너만을 의지하고 살았던 내가 유일하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면 너를 두고 떠날 수 있기를, 그저 그것 뿐이었다. 너에게 이별을 고하든 덜컥 죽어버리든 어떤 쪽이든 상관 없었다. 나는 잃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너는 그것을 전부 알았으면서, 왜, 나를 두고.

너 따위를 사랑했던 게 죄라고, 나는 오늘도 너를 잊지 못해 후회한다.


4.
"나카하라 씨."
"어."
"이거, 다자이 씨가 전해 달라고."
"뭐? 다자이? 씨발, 야. 그걸 왜 지금...!"

자신의 멱살을 움켜쥔 손을 떨쳐내지도 못하고, 그 말단 조직원은 덜덜 떨며 '다, 다자이 씨가 꼭 올해 첫 눈 오는 날에 전해 달라고... 도, 돌아가시기 전에. 죄송합니다!' 자신의 입장을 전한다. 나카하라는 떨구어 내듯 손을 떼어낸다. 그는 눈치를 보는 듯 하더니 후닥닥 자리를 벗어난다.
한숨이 입술 새로 비어져 나온다. 왜, 너를 만나고 온 날ㅡ 정정. 네가 잠들어 있는 납골당에 다녀온 날 나는 또 다시 멈출 수 없는 절망감에 휩싸여야 하는 것인가. 왜 저런 이름도 모르는 녀석보다 나는 너의 죽음을 늦게 알았어야 했는가.

나카하라는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고, 제게 주어진 구깃구깃한 편지지를 펼친다.

"츄야에게."

소리내어 읽기 시작한다. 마치, 그러면, 다자이가 제게 말을 걸어주는 것과도 같을까봐.

"나를 지켜줘."

편지의 내용은 그것이 다였다.


5.
나는 그에 담긴 의미를 알아내고자 하였다. 나를 지켜줘, 정말 너를 지키란 의미였을까? 너를? 이미 죽어버린 너를? 너는 그 짧은 한 문구를 쓰는 순간에도 너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을 터인데. 그러나 이러한 고민은 쓸데 없는 것이었음을 곧 나는 알게 된다.
네 목소리가 들렸다. 기억해 내기에는 조금 희미한 과거의 네가 아주 자그맣게, 그러나 선명하게.

세상이라는 것이 사실은 전부 네가 아닐까?

아.
그래.
나를, 나는 나를 지키면 되는구나.


6.
너, 너는 곧 너의 세상, 너의 세상은 곧 나.
한심했다. 한심하게도 눈물이 났다. 너는 어째서 내가 죽지도 못하게 하니.


7.
나는 남겨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남겨졌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명백한 사실이다. 고로 나는, 나에게 네가 억지로 떠넘긴 너의 것들을 지켜야 한다. 너는 나 자신만을 지키라 하였으나 만일 또 다른 너의 사랑들을, 마음들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너를 볼 낯이 없지. 그것이 떠나간 자에 대한 예의이자 너에 대한 나의 마지막 사랑이다.


8.
눈이 온다.
네가, 잊혀지지 않는 밤.


각ㄱ주충 : 5번에 세상이라는 것이 사실은 전부 네가 아닐까? 는 다ㅏ자이 오사무의 세상이라는 것이 사실은 전부 자네 아니야? 라는 말에서 따 왔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구절이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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