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직도 죽지 않았어?
음?
왜 살아 있냐고, 다자이.
눈을 꿈뻑이다 빙그레 미소 짓는다. 그리 웃음으로써 이 상황을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려는 듯 하다. 그를 마주한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진다.
손을 팔랑거리며 츄야, 하고 이름을 부른다. 불린 이는 말이 없다. 그럴 줄 알았으면서도 다자이는 일부러 맥이 빠진 양 한숨을 포옥 내쉰다. 그러더니 양 손을 허리에 얹고 답답하다는 기색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다자이는 츄야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조금은 줄어든 거리에서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내가 말했지, 츄야. 머리 나쁜 것 좀 드러내지 말라구.
뭐…!
언성을 높이려는 이를 손을 들어 제지한 후 다자이는, 그제야 그의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전한다.
늘 말해 왔잖아.
다자이는 웃었다. 언제나와 같은 미소였다.
네가 죽여주지 않으면 안 돼.
아니, 조금은 다른.
아, 흐으. 다자, 다자이.
응, 츄야.
제 배를 짚고 있는 마른 팔이 바들바들 떨고 있음을 알면서도 다자이는 츄야의 등허리를 가볍게 두드릴 뿐이었다. 어디 알아서 잘 해보라는 제스처인 것을 곧바로 눈치 채고 츄야는 제 아랫입술을 조금 더 세게 짓씹었다. 다자이가 옅게 웃었다. 심통이 잔뜩 난 것을 숨기지 못하는 츄야가 귀여웠지만, 놀려주거나 할 여유는 본인에게도 없다. 버티고 있는 것은 다만 츄야가 혼자 제 것을 끝까지 삼켜 내는 것을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인한.
다자이는 팔을 뻗어 츄야의 뒤통수를 잡아 눌렀다. 그의 위로 츄야가 풀썩 쓰러진다. 성기가 애먼 곳을 찔렀는지 작은 신음과 함께 엉덩이가 들썩인다. 다자이가 그 뒷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턱을 쥐고 입을 맞춘다. 감각을, 아려오는 접합부가 아닌 다른 곳에 분산시키고 싶어 츄야는 혀를 쭉 내민다. 키스를 조르는 것이 평소답지 않아 다자이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을 알면서도 물고 늘어질 힘이 없어, 다자이의 입술 새로 혀만 꼼질꼼질 파고든다. 다자이가 손을 뻗어 엉덩이를 주무르자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더니 다시금 성기를 안쪽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다자이는 그제서야 입술을 벌렸고, 기다렸다는 듯 혀가 밀고 들어온다.
"왜."
"담배, 혼나."
새삼스레 무슨 헛소리냐 물으려던 츄야는 다자이의 시선을 따라가다 알았다. 손가락에 들려 있던 담배가 툭 떨어진다. 아. 츄야가 허리를 굽혀 그것을 주우려 했으나 다자이가 빨랐다. 다자이는 집어든 담배를 제 주머니에 밀어 넣는다. 츄야가 아깝다는 듯 혀를 쯧 찬다. 다자이가 인상을 조금 찌푸린다. 그리고는 옆으로 다가가 츄야의 허리를 감싸 안고, 아까부터 제가 바라보고 있던 그 마른 배를 토닥인다. 츄야가 조금은 눈을 사납게 뜨고 바라보자 어색하게 웃는다.
"참자, 츄야."
"죽어."
"미아안."
"짜증나."
다자이는 대답 대신 입을 맞췄다. 츄야는 타박 대신 눈을 감았다.
츄야, 울지.
안 울어.
울잖아.
안 운다고.
다자이는 말 없이 츄야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숙여진 고개가 다자이의 가슴팍에 톡 닿았다. 츄야는 결국 숨기려는 것을 포기했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폭 싸여진 얼굴을 다자이는 보고 싶었지만, 일단은 츄야를 달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여 그의 허리를 천천히 도닥이기 시작했다.
우리 애기, 왜 울어요.
뒤져.
일부러 낸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곧바로 돌아오는 답이, 울고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츄야 다워서 다자이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어깨와 허리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준다.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고 다자이는 츄야의 귓가에 입을 맞추었다. 머리카락, 목 뒤, 이곳저곳에 키스하던 다자이가 문득 조금은 조심스럽게 묻는다. 있잖아…, 혹시 내가 뭐 잘못했어? 그 순간 결국 울음이 터진다. 다자이는 귀에 파고드는 아이 같은 울음 소리에 모든 행동을 멈추었다.
* 우는 이유는 다자이가 예전에 섹스했던 여자랑 친구랍시고 떠들고 있는 걸 본 게 서러워서라고 하자!
졸업 축하해, 츄야.
뭐…, 그래. 너도.
왜 그런 얼굴이야. 드디어 학교 탈출이잖아?
다자이의 장난스러운 목소리는 츄야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려는 의도였으나 실제로 그러지는 못하였다. 학교 때려 치우고 싶어, 매일같이 했던 말은 이미 잊은지 오래다. 이별이라는 사실이 갑자기 훅 밀려와 이제는 괜히 울컥 눈물만 치밀 뿐이다. 꼴사납게 울고 싶진 않아 츄야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다자이는 벌개진 눈가를 가만 바라보더니 손을 뻗어 츄야의 머리를 헝클였다. 그 손은 조금 내려가, 차가운 봄바람에 잔뜩 언 뺨을 문지른다. 츄야는 고개를 들어 다자이와 시선을 맞추었다. 맞닿은 시선이 왠지 모르게 아프다.
다자이. 평소보다 가라앉았고 왠지 모르게 떨고 있는 부름에 다자이는 옅게 웃었다. 엄지 손가락이 츄야의 눈두덩이를 문지른다. 츄야는 눈을 감았다. 다자이가 입술을 작게 벌렸다. 그 사이로 작고 다정한 목소리가 새었다.
하지 말자.
…….
하지 말자, 츄야.
다자이는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츄야는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다자이는 손을 떼었고 츄야는 천천히 눈을 떴다. 다자이는 울고 있지 않았다. 츄야는 웃었다. 응, 그래.
꽃 피는 삼월, 영원히 피워내지 못할 마음이 끝끝내 져 버린 달. 그 헤어짐과 만남의 계절이 츄야는 싫다.
* 삼 년 간 함께 지내면서 서로 좋아했지만 관계가 끊어질까봐 고백하지 못했던 다자츄. 츄야가 졸업식 날 용기내서 고백하려고 했는데 다자이가 눈치 채고 막는 내용. 어차피 깨어질 관계라면 더 많이 사랑하게 되어 아프고 싶지는 않아. 이런 느낌? 츄야도 다자이 마음을 읽어서 뭐라고 못한 거. 그게 자기도 맞다고 생각하니까... 졸업하고 나서 만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다가 몇 년 뒤 우연찮게 만났을 때, 그 때는 조금 더 솔직하고 아픔을 견딜 용기가 생겨 있었으면 좋겠다.
싫어.
츄야, 말 듣자.
씨바알, 맨날 지 멋대로… 맨날….
네가 보이지 않는다. 눈물에 시야가 흐리다. 손등으로 눈을 마구 비볐다. 눈물을 닦아냈다. 그러나 눈물은 다시금 들어찬다. 여전히 네가 보이지 않는다. 손을 뻗어 잡을 수 있다면. 하지만 아무리 팔을 휘저어도 너는 닿지 않는다. 그게 서러워 나는 울음만을 토해낸다. 네가 내 옆에 여전히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들려오는 네 목소리. 그것이 요구하는 내용은 알고 싶지 않다만 그냥 너를 듣고 있다는 사실에 어째서인지 나는 지나치게 안심하고 있었다.
츄야, 울지 말고. 나를 봐.
꺼져, 좀. 애초에, 애초에 나타나질 말았어야지. 빨리 뒈져 버렸어야지…,, 개새끼야.
미안해. 미안해, 하지만 알잖아. 이제 가야 하는 거 알잖아. 보내줘, 츄야. 부탁이야.
혼령 따위에 홀릴 줄 몰랐다. 사랑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주게 된 존재가 사람이 아니게 될 줄은 몰랐다. 후회할 거라고, 너를 조금씩 알아갈수록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지만 나는 마침내 너를 전부 알게 되었고 빌어먹게도 내 세상이 너로 가득 차 버렸다. 마지막으로 눈을 보게 해줘, 네 눈을 보게 해줘. 애달프게 속삭이는 너를 나는 아직 보낼 자신이 없다. 사랑하는 이를 내 손으로 없애야 하는 날이 올 줄 알았더라면 이런 길 따위 택하지 않았어.
츄야.
또 한 번의 부름. 나는 애써 눈을 떴다. 네가 바싹 다가온다. 울음에 세상이 잠기어 아무것도 보지 못함을 너는 알았던 거야.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너는 웃고 있었고 동시에 울고 있었다. 너는 떠나야 함을 알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동시에 괴로워 하고 있었다. 발버둥 치고 있다. 보내지 마, 나를 보내지 마. 아. 너는 너무도 가엾고 불쌍한 한 줌의 영혼이라 나는 결국 다시 한 번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눈이 멀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 퇴마사 츄야네 집에 갑자기 나타난 영혼 다자이. 두 사람의 시작은 콩트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안녕.
아, 씨발! 막 튀어 나오지 말라고, 개새끼야!
놀랐어?
퇴마사 나카하라 츄야, 퇴마 인생 22년 처음으로 존나게 귀찮은 귀신이 들러 붙었습니다.
츄야는 영안을 가졌고 퇴마 능력이 타고나서 아주 어릴 때부터 많은 귀신을 승천시키고 소멸시키고 그랬음. 그런데 같이 살게 된 귀신은 다자이가 처음인 걸로. 다른 애들은 즉각 소멸이었는데 얘는 아무리 해도 안 없어져서 포기. 그래서 같이 살면서 어찌저찌 좋아하게 됐고 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다자이가 떠나야 할 시간이 된 것. 둘 다 직감적으로 이별해야 하는 순간을 알게 되었으면.
다자이는 살아 있을 때 츄야를 좋아했었음. 츄야는 다자이를 몰랐지만. 그래서 교통사고로 죽은 이후 그게 한이 되어서 츄야 주변에 나타난 거고 츄야한테 사랑을 받은 순간 이승에 남아 있을 수 잇는 이유였던 원한이 사라진 거야 그리고 세상의 이치에 따라 승천이나 소멸을 해야 하는데 그걸 시켜줘야 하는 게 츄야.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걸 둘 다 알지만 서로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겠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 역시 그냥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 아무도 마음을 고백하지 않았지만 그냥 그렇게 네가 나를 사랑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걸 아는 거.
우리는 너무 어렸다.
그래, 그게 다였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잘못은 없다.
나는 아직도 너를 떠올린다. 가슴이 아릿할 만큼 저려온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너는 종종 내 머릿속에 불쑥 나타났고 나는 그런 너에게 인사를 건넨다. 또 왔어?
그 정도다. 너를 많이 사랑했고 너와의 이별을 인정한 날에는 참 많이도 울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무뎌지는 게 감정이라지. 더 이상 너를 떠올려도 슬퍼지거나 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 던 것…, 같은데.
"어이, 다자이?!"
"……."
"왜 쳐 울어, 인마!"
정말로 너와 닿아 버린 순간,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
* 잠입을 위해 댄스 파티에 참석한 커플로 위장.
내가 왜 이딴 수모를!
수모라니, 엄연히 조직을 위한 일인걸.
나카하라는 반박하지 못하고 씨근거리다 몸을 휙 돌렸다. 등을 보임으로써 화가 났음을 어필하려는 셈인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음에도 어린 아이 같기만 한 모습에 다자이는 몰래 웃었다.
팔을 뻗어 훤히 드러난 나카하라의 등에 손바닥을 얹었다. 정말 놀랐는지 히익, 하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몸을 파득득 떤다. 빠르게 몇 발짝 떨어져 저를 노려보는 사나운 눈에, 다자이는 싱긋 미소를 보였다.
뭘 쳐 만지는 거야, 변태 다자이!
아니, 등을 그렇게 내 놓고 있는 츄야는 처음이라.
이, 미친.
노출이라 하면 질색하며 온 몸을 꽁꽁 싸맸던 나카하라는, 댄스 파티에 노출 없는 드레스는 죄악이라 바득바득 우기는 보스 덕에 처음으로 등이 푹 파인 드레스를 입게 된 것이었다 : 애초에 드레스도 처음이지만.
나카하라는 입술을 달싹이다 할 말이 없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괜한 승리감에 도취한 채로 다자이가 손을 내밀었다. 자. 나카하라는 그 손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다자이가 팔을 내리고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내쉰다.
츄야, 사회 생활 좀 해.
너나 잘 해, 히키코모리 성격 파탄 새끼야.
다자이는 그 유치한 악담을 못 들은 척 허리를 살짝 굽혔다. 그리고 다시금 손을 뻗었다. 나카하라는 그의 의도를 그제야 눈치 챘는지 자신의 앞에 놓인 손, 그 위에 평소와 다르게 새하얀 레이스 장갑으로 감추어진 손을 조심히 올려놓았다.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었는데 아마 창피함 혹은 부끄러움 탓이겠지. 아니면 둘 다.
다자이는 허리춤에 팔을 얹고 고개를 살짝 들어 나카하라와 눈을 맞췄다. 나카하라는 눈을 빠르게 깜빡이면서도 시선은 피하지 않았다. 다자이가 눈이 휘어지게 웃는다. 입술 새로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아가씨, 가시죠.
진짜 죽여 버린다.
그가 장난 삼아 건넨 호칭에 질색하며 구두 앞코로 다자이의 정강이를 걷어 차려던 나카하라는,
질풍노도의 아가씨네.
악!
어, 가만히 있어. 떨어진다? 그러다 골로 간다구. 츄야가 죽어 준다면 나야 고맙지만.
어쩔 수 없다고 중얼거리다 저를 번쩍 안아올린 다자이에 의해 굳어 버렸다. 그 순간에는 놀라 허우적대더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자마자 뻣뻣해진 나카하라에 다자이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근데 츄야, 살 좀 빼. 너 진짜 무거워.
죽어 버려, 다자이. 자살해.
고마워!
개 씨발.
나는 너를 잃었다. 한 순간이었다. 호흡을, 입술을, 마음을 맞추어 오던 자를 잃었다. 너는 나를 버렸고 나는 너에게 버려졌다.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보스가 나를 보고는 흠칫 놀라 앨리스의 눈을 가릴 만큼 초췌해져 강제 휴가를 받았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네가 나를 그리도 가볍게 생각했다는 것만 떠올리면 나는 꼭, 내 삶의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되었다. 이 바닥에서 죽음은 빈번하며 또한 당연한 것. 어찌하여 너는 죽음 하나에 벌벌 떨며 이곳을 떠난 것인지. 아니,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다. 왜 나마저도. 왜 너는 나마저도 떠난 것일까, 그것이 나에게 절망을 안겼다.
있잖아, 다자이. 나는 네 파트너이기 이전에 연인이야. 그 간단한 것을 잊었다는 것이 나는,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이것이 너에게서 선사받은 배신감으로 무너져 내린 나의 심정.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현재 나의 상황. 네가 떠난지 나흘 째, 너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것, 그것이었다.
나는 받을 수 없었다. 신호음은 곧 끊겼다. 나는 휴대폰을 아프게 쥐었다. 손이 떨려올 정도로 힘을 주었다. 눈물이 났다. 울음을 토해 내려는 순간 다시금 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손가락이 천천히 수신 버튼을 밀어낸다. 네가 너무 밉고, 죽었으면 좋겠고, 그렇지만 네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었다.
"……."
[츄야.]
"……."
[혼날래? 왜 연락 안 했어.]
숨이 턱 막혔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물어볼 것은 산더미처럼 많았는데, 화도 내고 싶었는데 머릿속이 순식간에 텅 비었다. 왜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야? 나를 떠난 것은, 버린 것은ㅡ,
[설마 내가 포트 마피아를 관뒀으니까 이제 너랑도 헤어지는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서얼마. 우리 츄야가 그렇게 멍청이일 리가 없어. 쪼끔 멍청하지만.]
넌데. 너였는데. 너인 줄 알았는데.
[츄우야. 뭐라고 말 좀 해봐. 화났어? 응?]
"…그래."
[엑, 정말? 말도 안 하구 그만 둬서 정말 미안해. 그치마안, 죽은 친구의 유언인걸. 츄야가 이해해줄 줄 알았어.]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래, 그랬지. 나는 네 파트너이기 이전에 연인이었지. 네가 더 이상 극악무도한 마피아의 간부가 아니어도, 너와 내가 쌍흑이라는 유치한 이름으로 불리지 않게 되더라도 나는 너의 연인이잖아.
그리도 간단한 것을 잊었던 것은, 아무래도 나였나보다.
[…츄야, 울어? 우는 거야? 나 때문이야? 응?]
"다자이."
[응, 츄야.]
"보고…, 보고 싶어. 네가. 지금 당장."
여전히 숨이 막힌다. 이번에는 다른 의미에서였다. 그 답답함이 더 이상 괴롭지 않다. 아무래도 나는, 너를 있는 힘껏 껴안고 싶어진 것 같다.
"선생님."
"비켜."
"도와드릴까요?"
"네 도움은 필요 없다, 망할 꼬마."
다자이는 조금 상처 받은 눈을 했다가 나카하라가 저를 바라보고 있지 않자 금세 원래대로 돌아온다. 나카하라가 봤다면 연기가 몸에 배어 있다며 영악하다고 한 소리 들었을 것. 물론 평소에는 저런 기색을 보이면 '척' 하고 있음을 생각지도 못하고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원하는 걸 하게 해 주는 바보 같은 사람이다만, 아예 쳐다보질 않는 게 기분이 좋지 못한 모양이다. 아무도 상대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 보이는데. 다자이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렇다고 물러날 다자이 오사무가 아니지.
"선생님!"
"와악! 야, 떨어뜨릴 뻔 했잖아!?"
다자이는 비스듬한 각도로 달려들어 나카하라를 옆에서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허둥거리는 나카하라에게서 다자이는 짐을 죄 빼앗아 들었다. 그러니까 진작 들어준다고 했잖아요. 의기양양한 얼굴을 한 건방진 제자의 어째선지 나무라는 말투에, 나카하라는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럴 여력도 없어 말 없이 다자이의 뒤를 따랐다.
* 사립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다자이, 무료한 학교 생활을 어찌저찌 버티고 있던 중 2학년 새 학기에 새로 들어온 국어 선생 츄야를 보고 반하다!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맨날맨날 따라다니면서 들이대는 중.
* 다자이 때문에 아이들을 사랑하는 착한 선생이 되겠다는 결심이 무너지고 며칠만에 욕쟁이가 된 츄야. 다자이를 망할 꼬마 멍청이 바보 이런 유치한 말로 부른다. 다자이는 처음에 쌤이 날 꼬마라고 부르기엔 내가 너무 크다, 그치? 이랬는데 하도 맣이 불러대니까 태클 걸기 포기함.
* 사립에서 어린 교사들에게 일을 엄청 많이 시키잖아 그래서 츄야가 업무 처리로 끙끙대는 일이 엄청 많은데 그럴 때면 슬쩍 와서 먹을 거 주고 어깨 주물러 주고 하는 다자이. 무거운 건 꼭 자기가 들겠다고 쌤 키 줄어든다고 떼 쓰다 맞고 ㅋㅋㅋ 위 글에서 츄야 기분이 안 좋았던 건 일처리 구리게 했다고 (엄청 열심히 한 건데) 부장 선생한테 진탕 깨져서.
* 츄야는 이과였는데 교차 지원해서 국어교육과 간 거고, 다자이는 이과. 가끔 다자이가 졸라서 같이 카페 가면 (단, 다자이가 공부하는 조건) 과학이나 수학 츄야가 알려주는데 과학은 화학, 생물 잘 하고 수학은 못 해서 다 틀려. ㅋㅋㅋ
이거 놔, 새끼들아. 놔!!
다자이는 거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제게 잔뜩 달라붙은 검은 양복의 사내들에 온 몸으로 저항했다. 발로 땅을 박찼고 빠져 나오려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울음을 가득 머금었다. 두 눈은 눈물에 흠뻑 젖어, 그럼에도 똑똑히 나카하라를 바라보고 있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사랑. 다자이는 아랫입술을 있는 힘껏 짓씹었다. 나카하라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제멋대로 벌어진 입술 새로 흐느낌이 샌다. 제발 너를 떠나 보내게 하지 말아줘.
다자이는 어깨를 털어냈다. 잠시 떨어지는가 싶더니 다시금 쥐어 오는 손. 다자이는 전신을 휩싸는 무력감에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울부짖었다. 처음이었다. 그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마피아가 되라며 시쳇더미 속에서 굴려졌을 때도, 사랑하는 친구와 더 이상 술잔을 기울이지 못하게 되었을 때도 다자이는 울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 여기서 츄야를 잃으면 영원히 울지 못하게 된다. 그것을 알고 사자후를 뿜어 대는 것인가.
츄야, 츄야아!!
목소리가 죄 갈라진다. 다자이는 숨 쉬는 것조차 가쁘다고 생각했다. 목이 따끔거렸다. 숨을 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호흡할 이유가 있었다. 츄야를 멈춰야 해, 그의 몸을 좀 먹는 오탁을 멈춰야 해. 다자이는 헐떡이며 손을 뻗었다. 팔을 잡아끄는 수많은 손에, 어깨가 빠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손을 뻗었다. 나카하라에게, 그의 파트너에게, 사랑하는ㅡ,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의 사람에게.
널 믿고 오탁을 쓴 거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너를 믿고 오탁을 쓸 거다.
아, 나는 자만했나 보다. 내가 있으면 너는 죽지 않으리라. 그것을 지나치게 확신했나 보다. 처음 스스로 의식을 놓아버린 날, 너를 껴안고 흙바닥을 굴러버린 나의 가슴팍을 툭 치던 작은 주먹을 떠올릴 때면 답지도 않게 눈물이 난다. 그것은 결국 운명에 순응할 줄 모르는 건방진 이를 심판할 최후를, 직감하고 있었다는 의미였을까.
새빨갛게 달아오른 몸이 툭 쓰러진다. 다자이는 의식을 놓았다.
이름은?
없어.
내가 자네를 무어라 부르면 되지?
오탁.
그것 참 음울한 이름이로구만. 짧은 감상평에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인위적으로 붉은 기를 낸 입술이 다시 담배를 문다. 희뿌연 연기가 시뻘건 공기를 메운다. 다자이는 숨 한 가득 그것을 들이마시고는 한숨과도 같이 내쉰다.
손을 뻗었다. 남자는 수많은 박스들을 쌓아 밟고 올라 앉은 채라, 키가 아주 작아 보임에도 턱에 손끝이 아슬아슬하게 스친다. 손가락 끝에 닿은 턱선이 가냘프면서도 매끄럽게 잘 빠져 있어 다자이는 속으로 감탄하였다. 그대, 굉장히 수려한 외모를 가졌구려. 자신을 유혹할 때 언제나 등장하는 고리타분한 멘트에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삐딱하게 꺾고 자신을 내려다 보는 이의 모습이 마치 왕좌에 군림하는 것도 같아 다자이는 다시 한 번 경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산다면 한 번쯤은 나락으로 고꾸라진 과거를 가지고 있을 것인데, 참으로 고고한 영혼이다.
다자이는 남자의 얼굴을 조용히 감상하였다. 그 어느 예술 작품과 나란히 두어도 손색이 없을 외모이니 감상이라는 말이 어울릴 터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술을 열어 아주 천천히 말을 끄집어 냈다.
그대의 몸에는 수많은 붉은 보석이 새겨져 있군.
이것이 온 몸에 퍼져 있으리라는 것을 어찌 알지?
감이랄까.
그 아름다운 핏빛 자국들이 손까지 뻗쳐 있는지 확인하려 다자이는 슬금 그의 장갑 끄트머리를 잡았다. 순간적으로 탁 쳐 내는 손길에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는 빙그레 웃는다. 손가락마저 고울까 궁금하여 그랬다네. 시키지도 않은 변명을 내놓자 남자는 얼굴을 미묘하게 일그러뜨리더니 허리를 숙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똑바로 얽힌다. 어느 새 표정을 지운 남자는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은 얼굴을 하고서 담배 연기를 후욱, 뱉어낸다. 입술 새로 몽글몽글 솟아난 것이 다자이의 얼굴을 덮는다. 새까만 장갑, 두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 한 개비가 빨갛게 타고 있다.
여기에 온 목적?
눈이 휜다. 명백하게 기쁨을 담고 있다. 이 질문을 여태껏 기다린 모양이었다. 굳이 그 감정을 감추지 않은 목소리가 경쾌하게 대답한다.
자네를 데리러 왔네만.
흐음.
다만, 잊혀질 하룻밤을 고요히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아니하지.
남자는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 소리를 내었다. 다자이가 한 걸음 물러서 손을 뻗었다. 거절할 텐가? 담배를 쥔 손이 천천히 다가온다. 그 한 개비의 담배는 건네진 손을 지나 코트 소매를 느릿하게 지진다. 장난끼 어린 입술이 나긋나긋 목소리를 낸다.
다음은 너의 목덜미일 텐데.
환영한다네.
그렇다면.
남자는 제 뒤로 아무렇게나 담배를 던졌다. 아직 타오르는 담배의 끝, 불이 날 수도 있겠으나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언제 사그라들지 모를 목숨으로 무엇을 두려워 하겠는가. 남자는 팔을 뻗었다. 내려줘. 갑작스럽게도 아이 같은 목소리, 다자이는 조금 놀랐다가 금방 웃는다.
다자이가 남자의 마른 몸을 끌어안고, 그가 제 목을 가볍게 감싸자 조심히 그를 밑으로 당긴다. 남자가 다자이의 입술에 성급하게 입을 맞춘다. 다자이가 눈을 감고 남자의 머리카락을 쓸어 내린다. 마른 다리가 다자이의 허리에 휘감긴다.
* 츄야의 외관은 오탁 썼을 때.
* 츄야는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이 강도에게 살해당해서 고아가 됐다. 예뻐서 근처 창촌 누나가 데려다 키움.
* 다자이가 보스의 명령으로(섹스를 위함인지 조직원을 시킬 셈인지 알 수 없으나 보스는 로리콤이므로 후자라고 다자이는 생각했다. 참고로 보스는 모리가 맞다.) 츄야를 데리러 갔다가 마음에 들어 꼬시는 중.
* 츄야가 다음은 네 목덜미라고 한 건 진심임. 취미가 여왕플인 도S 츄야! 채찍과 기구도 능숙하게 다룸. 마조히스트에 탑인 게이 사이에서는 엄청 유명해서 줄을 서고 예약을 해야 겨우 섹스할 수 있음. 츄야의 눈에 들었을 경우 제외. 다자이는 M은 아닌데, 츄야랑 섹스할 수 있으면 기꺼이 어떤 수치도 당해주겠노라 하는 마음.
* 같은 반 친구 아츠시 시점
* 매우 네이트판 같음
안녕, 오늘부터 반 친구 두 명을 관찰하기로 했어요. 함께 하실래요? 네? 저 누구냐구요? 아, 알면 다쳐요. 쉿. 관찰 대상, 이 아니라 제 친구들부터 소개할게요. 아니, 내 이름은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먼저 저 작은 친구 이름은 최중원이에요. 별로 안 친해서 잘은 모르지만 전에 태재한테…, 옆에 있는 녀석이 태재예요. 이태재. 어쨌든 태재한테 들은 바로는,
'중원이는 어어엄청 츤데레란 말이야.'
'그래? 맨날 싸우기만 하는 것 같던데.'
'음, 절대 아니거든. 저번에 싸우다가 최중원 때문에 얼굴에 상처 났었는데,'
'뭐? 얼마나 싸운 거야?'
'들어봐. 아프다고 하니까 뽀뽀 해줬어. 귀엽지? 안 피하길 잘했다니까.'
'아니, 이상한데. 그거 이상한데.'
…그렇다덥니다.
더 알아두면 좋은 게 뭐가 있을까요. 음. 태재는 착하고 좋은 녀석인데 중원이랑 관련된 일에만 유난히 유난이에요. 어, 좀 라임… 죄송해요. 저번에는 중원이 키 작다고 놀린 녀석 얼굴을 뭉개서 반성문 열 장을 썼대요. 자기도 맨날 놀리면서! 중원이도 허구한 날 놀림 받으면서 태재가 교무실에 갔다는 말 듣고 새파래져서 뛰쳐 나가더라구요. 이상해, 너네 이상해.
한 번은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죠.
'저, 태재야. 나 전혀 편견 없고 그냥 친구로써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최중원이랑 사귀냐고?'
'어, 으응.'
'그렇게 보여? 네 눈에도?'
'응, 솔직히. 기분 나빴다면 미안...! 인데 왜 웃고 있냐.'
'응, 아냐. 우리 애기 만나러 가야지.'
'대답은?!'
…그렇다덥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둘이 발뺌하지 못할 완벽한 단서를 잡아내서 당당히 추궁할 예정입니다. 어, 지금 둘이 매점에 가는 모양인데요. 얼른 따라와요! 네? 스토킹 아니냐구요? 시끄러워. 안 오면 두고 간다.
"아흣, 아, 다자이…! 네 놈, 용서, 안, 해."
"츄야, 예쁘잖아. 이렇게 예쁜데."
나카하라는 다시금 울음을 터뜨렸고 다자이는 눈물이 흐르는 길을, 혀를 내어 천천히 핥아올렸다. 혀끝이 닿는 부분이 따갑고 축축하다. 나카하라는 허공에서 허우적대던 손으로 다자이의 머리카락을 잡아챘다. 마치 생명줄을 붙드는 것처럼 간절한 손길이라고 다자이는 멋대로 생각했다. 아팠지만 그것마저도 환희였다. 츄야가 반응하고 있어, 나를 잡았어. 그가 나를 의지해. 말도 안 되는 생각과 그로 인한 희열.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골반을 쥔 손에 힘을 주고 더욱 깊숙히 파고들었다. 나카하라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아이처럼 엉엉 우는 소리마저 사랑스러워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온 얼굴에 입술을 부볐다. 나카하라는 고개를 힘겹게 돌렸다. 미약한 반항이었다.
나카하라는, 태어난 이래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최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잔뜩 흥분했는데도 박아 넣지 못해 성기가 저릿저릿 아팠다. 허리가 덜덜 떨렸다. 쑤셔지고 있는 내벽이 아파서, 너무 아파서 나카하라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전부 꿈이었던 걸로 될 것 같아서 질끈 감아 보지만 화끈거리는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앙 다문 잇새로 흐느낌은 여전히 비어져 나오고 있다. 나카하라는 억울했다. 나카하라는 알파다. 우성 알파다. 이런 꼴을 당할 이유가 없단 말이다. 일반적인 연인 간의 섹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강간이라니. 나카하라는 서러워서 눈물을 그칠 수 없었고 그 사실조차도 참으로 서러웠다. 나카하라가 입술을 벌려 울음인지 말인지 모를 것을 토해냈다.
"넌, 너느은, 오메, 가…, 잖아. 오, 오메가잖아."
"응, 맞아."
"근데, 근데, 어떠, 어떠케…."
"그렇지만 나 남자인걸, 츄야."
오메가라고 마음을 놓으면 안 되지, 나는 늘 너를 무너뜨리고 싶었는걸. 나카하라는 두 손으로 입을 꾸욱 막았다. 감당할 수 없이 치미는 울음을 밀어넣을 셈이었다. 다자이는 몸을 숙여 나카하라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오래된 친구의 절망과 두려움, 그의 얼굴은 즐거움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나카하라는 결국 다자이의 등을 와락 껴안았다. 이 상황을, 버텨내기 위해서. 그 뿐이었다.
1. 포트 마피아 시절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입 안을 매일 맴도는 말이, 나를, 가시처럼 찔러댄다.
나는 네 눈을 피한다. 네 시선은 집요하게 나를 쫓는다. 모르는 척 할 수 없음에도 외면한다. 너를 똑바로 바라보게 된다면 그 순간 나는 견디지 못할 거야. 결국 뱉어낼 거다. 그 곪아 터지고 진부한 마음을 너에게 떠넘겨 버릴 거다. 너를 좋아해, 아주 많이. 그러니까 제발 보지 마. 따라오지 마.
아, 너는 결국 내 어깨를 잡아챘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원하지 않았음에도 끝까지 달라붙어 오는 시선을 마주했다. 네 얼굴이 일그러진다.
"뭐라고, 츄야?"
거 봐, 말해 버렸잖아.
2. 학원물
"더러워."
"알아."
"더러워, 츄야."
"그래."
다자이는 무어라 더 말하지 못했다. 입술을 아프게 짓씹다가 한숨을 짙게 내쉰다. 나카하라를 잠시 쳐다 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내리깐다. 나카하라는 멋쩍게 웃는다. 발끝이 죄 갈라진 흙을 톡톡 찬다. 입술 새로 덧없는 말들이 줄줄 샌다. 알아, 알아. 나도 다 알아. 네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그러나 그조차 끝맺지 못한다. 나카하라의 중얼거림은 다자이의 외침에 먹히고 만다.
"그럼 왜 말했어!"
"그러게."
"내가 앞으로, 너를 어떻게 보라고…!"
"다자이."
나긋한 부름이 평소와 조금도 닮아 있지 않아 다자이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나카하라는 고개를 조금 숙인 채였다. 실소가 비어져 나온다. 나카하라는 심호흡을 하는가 싶더니 얼굴을 슬몃 들었다. 다자이를 본다. 전혀 그럴 용기 따위 남아 있지 않으면서 나카하라는 어떻게 해서든, 어찌 하였든 그와 시선을 얽었다. 다자이. 한 번 더 나카하라는 애달픈 이름을 꺼내었다. 다자이가 미묘한 표정을 했다. 나카하라는 다시 한 번 머쓱하게 웃었다. 하지만 조금도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일 년을 버텼어."
"……."
"조금만 봐주라, 어? 다자이."
마지막 이름은 지나치게 떨고 있었으며 아주 흐릿하여 다자이는 주먹만을 움키었다.
"어이이, 다자이!"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주정뱅이의 목소리가 문 바깥에서 울린다. 쿠니키다가 벌떡 일어나 외친다. 들어가! 일제히 의자를 빼고 각자 책상 밑으로 몸을 구겨 넣는다. 란포가 마지막으로 느리게 의자를 당겨 완전히 은닉한 순간, 문이 벌컥 열린다. 모자가 떨어질까 꾸욱 눌러 쓴 채 등장한 포트 마피아 간부. 잔뜩 취했는지 얼굴이 새빨갛고 눈이 풀려 있다. 어지러운지 작게 신음했다가 비틀비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다자이, 어딨냐! 나랑 싸워라, 다자이이!"
문장 하나에 다자이 하나. 어지간히도 사랑하나 보군요, 츄야가 들었으면 이단 옆차기로 응징 당했을 생각을 하고서 아츠시는 혀를 츳 찼다. 그 환멸 가득한 얼굴이 츄야가 여태까지 얼마나 행패를 부려왔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책상이 조금 흔들리는가 싶더니 둥실 떠오른다. 일제히 한숨. 책상, 의자,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이 천장에 달라붙는다. 츄야가 쭈그려 앉아 있는 사람들의 옆을 흐느적거리며 지나친다.
"다자이, 어딨냐고. 작아서 안 보이냐아? 응?"
늘어지는 말꼬리가 의도치 않게 애교로 들려 다자이는 그만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츄야는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츄야가 역시나 앉아 있는 다자이의 곁을 지나칠 때, 다자이는 슬그머니 일어나 츄야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다자이이."
"응, 츄야."
"어디야, 어디!"
"음, 세 발자국만 앞으로 가 봐."
뒤를 돌아볼 생각은 못 하고, 다자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저 허둥대는 츄야와 그를 놀려먹기 시작한 다자이에 모두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편히 앉는다. 지금부터는 원하든 원치 않든 구경 타임이다. 다자이에게는 이능력을 쓸 생각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귀여운 간부 애인의 술주정을 있는 대로 즐길 생각이다. 쿠니키다가 이마를 짚었다. 계획이 또 틀어졌다. 일주일만에, 같은 이유로.
* 쿠니키다가 책상 밑으로 들어가라고 한 이유는, 츄야 눈에 띄었다간 다자이로 오인 받고 츄야가 결투 신청을 해 오기 때문.
* 취한 츄야는 바로 눈앞에 있는 거 아니면 못 본다고 하자.
온갖 캐롤이 섞여 시끄럽게 거리를 울려도 하나도 거슬리지 않는 날, 크리스마스 이브. 다자이는 집에서 저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조금은 아플지도 모르는 애인을 위해 걸음을 빨리했다. 이런 날까지 정시 퇴근을 시키다니, 잔인한 회사. 다자이는 답지 않게 투덜거리며 아예 뛰기 시작했다. 복작이는 거리에서 잘도 부딪히지 않고 달린다. 그리고 그의 품에는 아까부터 반짝이는 포장지로 덮인 커다란 상자가 안겨 있었다.
현관문 앞에 선 그는 도어락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오늘은 츄야가 문을 열어줬으면 좋겠어. 그래서 다자이는 초인종을 꾸욱 눌렀다. 한 타임 늦게 츄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냥 들어와! 다자이는 그 말을 무시하고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누른다. 그리고 잠시 서서 기다리자 도도도 뛰어 오는 소리가. 다자이의 입가에 스멀스멀 웃음이 핀다.
"내가 그냥 들어 오랬지!"
문을 벌컥 열고 다자이가 그 사이로 들어오자마자 바락 소리치더니 선물은 냉큼 받아든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고는 팔을 벌리자, 상자를 조심히 바닥에 내려놓고 폭 안겨든다. 어깨를 끌어안고 살살 흔들자 팔이 허리를 슬금 감싼다.
"다자이."
"음?"
"……."
"왜, 츄야."
츄야는 다자이의 가슴팍에 뺨을 부비더니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머뭇거리다 말을 잇는다. 밥? 목욕? 아니면…, 나? 아무래도 방금 전 행동은 부끄러움에 나온 것이었나 보다. 다자이는 츄야를 힘껏 안았다 포옹을 풀었다. 얼굴이 벌개진 채로 저를 올려다 보는 연인에게 다자이는 활짝 웃어 주었다.
"밥!"
"…그래."
금세 풀이 죽은 표정이 지나치게 사랑스럽다. 다자이는 신발을 벗고 발을 들이며, 뒤돌아 가려는 츄야의 팔을 꾹 붙들었다. 뭐냐고 묻는 듯한 눈은 이미 감정이 상해 있다. 허리를 숙여 귀에 입술을 부비었다. 곧 짜증을 낼 것 같아 얼른 속삭인다. 밥 먹고 힘내야 너 놀아주지. 손을 떼고 머리를 헝클어뜨리자 눈을 빠르게 깜빡이기만 하다 더듬더듬 대답해 온다.
"뭐, 뭘 놀아…."
"어른의 놀이, 츄야아."
교태를 부리는 것 마냥 말꼬리를 늘이고는 혼자 웃음이 터져 거실로 폴짝폴짝 뛰어가는 다자이의 뒷모습을 얼어 붙은 채로 바라보다 츄야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저게 뭐야, 멍청한 다자이.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오히려 더럽다고 욕해줘야 마땅한데다가 그래주고 싶은데. 츄야는 입술을 잘근거리다 괜히 몰리는 열에 귀를 감싸쥐었다.
* 보통 츄야가 먼저 퇴근하고 다자이를 기다리며 저녁을 만든다.
* 리맨물인 척 하는 동거물
* 사내 연애 : 팀장 X 신입
"츄야. 츄우야."
"아, 뭐."
"삐져떠요, 우리 애기?"
그리고서는 나카하라의 표정을 보고 조용히 입을 다문다. 나카하라는 다시 텔레비전에 시선을 박았다. 다자이는 여전히 나카하라를 바라보고 있다. 번쩍거리는 빛에 약해서, 텔레비전을 오래 보고 있으면 눈이 시큰거려 곧잘 눈물을 흘리는 나카하라를 안다. 지금도 눈꺼풀이 파들파들 떨리는데 다자이를 쳐다보기는 싫어 애쓰고 있는 것도 안다. 그래서 다자이는 손을 들어 그의 눈을 가렸다.
뭐하는데. 짜증스러운 음색과 저를 떼어 내려는 다정하지 못한 손길. 다자이는 다른 손으로 리모콘을 쥐고 전원 버튼을 누른 뒤에야 나카하라를 놓아 주었다. 바로 고개를 팍 틀며 사납게 쏘아 붙이려 하길래 다자이는 냅다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놔라, 다자이!"
"자기야아."
"미친."
걸렸다. 다자이가 승리의 미소를 띠었다. 나카하라는 전부터 낯간지러운 호칭에 약했다. 벌개진 귀와 멈춘 목소리.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어깨에 뺨을 마구 부비며 사과의 탈을 쓴 칭얼거림을 시작한다.
"미안해. 응? 그치만 자기만 안 혼내면 사람들이 막 나쁜 말 할 거잖아. 우리 자기야 나쁜 말 듣는 거 싫어. 내 맘 알지? 응? 응?"
"…몰라."
"아이이, 우리 자기 어떻게 해야 풀릴까. 응? 뽀뽀 해줄까요?"
대답이 없다. 다자이는 고개를 들어 뺨에 입술을 꾸욱 찍어 누른다. 뭐라고 말을 해야 되긴 할 텐데 말문이 막혀 입술을 달싹이기만 하다 나카하라는, 뺨에 닿은 감각이 사라지자 슬쩍 얼굴을 돌린다. 잠깐 둘의 시선이 맞닿는다. 다자이가 씨익 웃으며 얼굴을 들이밀어 나카하라의 입술을 잘게 깨문다. 작은 손이 머뭇거리다 다자이의 옷자락을 쥐어 온다. 결국 오늘도 나카하라의 투쟁은, 여기서 끝.
* 다자이가 시켜서 바이브 꽂고 수업 들어온 츄야 선생님
* 안경 츄야
1.
아아, 어쩜 저리도 순진할까. 다자이는 교탁 앞에 서 제 눈치를 보는 나카하라에게 조금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그렇게 생각했다.
덥지도 않은데 들어올 때부터 벌갰던 얼굴, 분필을 잡은 손은 조금 떨고 있고 말은 자꾸 끊겨. 나카하라가 필기를 위해 뒤를 돌았을 때, 다자이는 손끝으로 책상을 톡톡 치며 빙글 웃었다. 아무래도 우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잘 해온 모양이다.
2.
"수업…, 이쯤 할까."
"선생니임, 첫사랑 얘기 해주세요!"
대략 이십 분을 남겨 두고, 지쳤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교과서를 덮자마자 촐랑거리며 웬 녀석이 외친다. 선생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가득이다. 아마 이 남은 시간 화장실이든 어디에서든 나한테 어리광 부리며 이제 빼도 된다는 허락을 받을 생각이었겠지. 선생은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이쪽을 흘끔거린다. 내가 저를 데리고 나가길 바라는 것 같았다. 저런 게 무슨 선생이라고, 애새끼지.
나는 딴청을 피우다가 교실이 더 소란해졌을 때 손을 들었다. 선생의 얼굴이 조금 밝아진다. 선생님. 작게 그를 부르자 응, 하고 허겁지겁 대답해 온다. 정말 귀여워. 비죽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삼키고 말했다.
"첫사랑 얘기 해주세요."
이제 빠져나갈 수 없다. 선생의 얼굴이 무너진다. 결국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3.
"다자이, 나 지금… 지금 뺄래. 빼게 해줘."
"넣은 건 선생이잖아. 왜 내 허락을 구해?"
울 것 같은 얼굴이 참 사랑스럽다. 입술을 달싹이다 할 말을 찾지 못해 꾸욱 다문다. 반박은 하고 싶은데 사실이라 어쩔 수가 없나봐. 웃어 버릴 것 같아서 입 안 여린 살을 씹었다.
대충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발기한 것을 나카하라의 얼굴에 부볐다. 쿠퍼액이 뺨에, 입술에, 눈꺼풀에 덕지덕지 묻는다. 조그만 얼굴이 있는대로 인상을 쓴다. 찌푸려진 눈가를 엄지 손가락으로 문지르자 억지로 얼굴을 편다.
"빨리 쌀 테니까. 응? 착하지."
"우응…."
말인지 옹알이인지 모를 것을 입술 새로 뱉어내고는 갑자기 성기를 붙들어 온다. 슥슥 쓸더니 귀두를 입 안에 담는다. 다자이는 놀라 나카하라의 머리를 밀어 냈다. 다치기라도 할까 세게 힘을 주지 못했으나 나카하라는 순순히 물러났다. 물론, 이미 늦었지만.
"아, 욱."
"허으, 야… 나 갈, 갈 것 같았, 흐읏. 같았다고."
"그런 말 안 했잖아. 짜증나."
혀를 내어 입술을 할짝인다. 비리다며 다시 짜증을 낸다. 성기를 몇 번 쥐고 흔든다. 뺨에 남은 정액을 죄 토해내고, 이제는 한계인지 별 말 안 하고 엉덩이만 들썩이는 이의 안경을 엄지 손가락으로 비볐다. 투명했던 렌즈에 뿌옇게 액이 번진다.
빛을 잃었다고 했다. 색을 잃었다고 했다. 내 얼굴을, 내 웃음을 잃었다고 했다. 영원히 눈을 뜰 수 없게 된 것을 너는 그렇게 말했다. 아니, 말했다고 했다. 울먹이며 나카하라 상이 그렇게 전해 달라 하셨다고 말을 더듬는, 이름도 모르는 부하 녀석이 그랬다.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언어를 네 목소리로 직접 듣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츄야."
"어, 다자이냐."
나는 곧바로 너를 찾았다. 너는 눈에 붕대를 둘둘 감고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가 올 것을 알았는지 놀라는 기색은 없었다. 이곳에 남아 있는 너를 보아하니, 병원을 보내려는 모두에게 유난 떨지 말라고 핀잔을 주고 제 방에 틀어박힌 모양이었다.
우습게도 눈물이 났다. 갑자기. 갑자기였다. 정말 눈물이 났다. 눈물만 났다. 울음 소리도 무엇도 없이 그저 뺨을 타고 흐르기만 한다. 마음이 아프지도, 울 것 같지도 않았다. 예고 따위는 없었다. 단지 너를 보았을 뿐이었다.
너에게 한 발짝 두 발짝 다가갔다. 너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너의 곁에서 내 걸음이 멈추었을 때, 너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바라보는 것 같았다. 정확히 네 얼굴은 내 얼굴을 향해 있었다. 그렇지만 너는 나를 보지 못한다. 내가 울고 있다는 것도 모르겠지.
나는 손을 뻗어 네 뺨을 감싸쥐었다. 너는 고개를 기울여 내 손에 얼굴을 부볐다. 그리고 물었다.
"다자이, 슬퍼?"
"……."
"지금 울고 있어?"
응, 그랬구나. 방금의 그 감성 가득한 생각은 안일한 나의 착각이었던 거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네가 나에 대하여 모를 것이라는 건, 정말 바보 같은 말이었던 걸로. 그러기엔 너와 나는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너무 오랜 시간을 사랑했다.
사실은 슬픈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지만, 너와 다시 시선을 얽고 두 눈에 담기었던 미소를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 머리에서부터 천천히 퍼지고 있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 너의 질문에 대한 대답. 너는 볼 수 없는, 하지만 너는 어째선지 나를 달래려 팔을 뻗는다. 나는 그 작은 품에 가만히 안기었다.
네 녀석을 보면 구역질이 나서 미치겠어.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제발…, 내 앞에서 꺼지라고.
무너진 네 모습은 처음이었다.
너는 내 가슴팍을 아프게 쥐었다. 사라져 달라고 애원하면서도 몸을 지탱하기 위해 손에 자꾸만 힘을 준다. 너를 도우면 네가 정말로 끝 없는 나락에 자신을 처박을 것 같아 나는 가만히,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우리의 주변에 꽃이 만개한다. 네 몸도, 내 몸도 꽃잎 범벅. 하얗고 노란 꽃이 바닥에 자꾸만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네 어깨도 떨린다. 그것이 네 손을 타고, 나에게까지 전해져 온다. 너를 보면 구역질이 나와, 그럴만도 했다. 수없이 꽃을 토해내며 그러지 않을 수가 없다. 너는 목을 부여잡고 컥컥대다 뭉텅이로 꽃을 떨구기도 했다. 무언가의 서커스 같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떡하면 멈출 수 있어?
씨바알.
나는 물었고 너는 대답했다. 별로 만족스러운 답은 아니라 나는 계속 네 말을 기다렸다. 너는 고개를 푹 숙이고 표정을 보여주지 않았다. 알고 싶었다. 네가 지금 어떤 얼굴인지.
너는 주먹을 쥐고 내 어깨를 아프게 쳤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이 떨고 있었다. 그것 때문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쿵, 쿵, 두어 대 때리고서 힘이 빠졌는지 숨을 몰아쉬다 다시 꽃을 와르르 뱉어낸다. 그리고 기침 한 번. 채 입에서 나오지 못했던 꽃잎 하나가 팔랑 떨어진다. 멍하니 있다 순간적으로 그것을 받아내었다. 놓치지 않게 꽉 쥐자 네 입술 새로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꽃이 아닌 웃음은 나에게 조금, 다행이었다고.
어떻게 멈출 수 있냐고?
응.
나를? 이 꽃을?
응.
네가. 너, 다자이 오사무가.
네 목소리가 비통하게 속삭인다. 나를, 사랑하면 돼. 그리고 너는 결국 주저앉는다. 꽃들 사이에 파묻힌 꽃이 꽃잎을 토해낸다.
나는 손을 찬찬히 폈다. 피에 젖은 하이얀 꽃잎. 분홍빛이 감도는 하이얀 꽃잎. 나는 눈을 감았다. 그랬으면 좋았을걸. 이것만큼은 삼켜주었다면 좋았을걸. 너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이것만큼은 삼켜주지 그랬어, 나의 사람아. 그러나 나의 사람은 대답이 없다.
* 이 세계에서는 하나하키가 흔하기는커녕 의사들도 모르는 병인 걸로 하자. 그리고 둘이 파트너인 시절이어야겠지 츄야는 자기가 다자이를 좋아하는 걸 알아 그런데 다자이를 생각하고 보고 만지고 하면 꽃을 막 토해 둘은 파트너니까 다자이가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지 츄야가 자기를 좋아하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다자이한테 츄야는 '나의 사람' 범위 안에 있는 소중한 친구야 딱 그 뿐이라서 츄야는 다자이에게 꽃을 토하는 걸 멈추는 방법을 말하지 않고 있었어 방법을 츄야가 옛날 책을 뒤져보다 알게 된 것도 좋고 본능적으로 알게 된 것도 좋다 후자가 더 슬프겠군 뭐 어쨌든 그래서 잘 지내다가 펑 터진 거였으면 좋겠다 츄야가 처음으로 각혈을 한 거야 다자이가 그거 보고 눈 돌았으면. 어떻게 멈추는데, 너는 알잖아, 왜 말해주지 않아, 도와줄게 뭐든 할게 어깨 잡고 막 흔들다가 츄야가 울어서 다자이 정신 차리고 멈춘 거였으면 좋겠네 그래서 위 글처럼 된 거. 막 생각해 낸 설정이라 위에 언급은 없지만 (ㅋㅋㅋ) 어떡하면 멈출 수 있냐고 물은 건 서로 진정된 것 같아서 다시 물어본 거야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마지막에 다자이가 잡은 꽃잎은 리시안셔스, 꽃말은 변치않는 사랑. 자신은 츄야에게 연애 감정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야 그러니까 저 꽃잎의 꽃말은 츄야에게도 자신에게도 힘든 말이라서 마지막 부분처럼 생각한 거고... 다자이가 힘든 이유는 정말 츄야 마음이 안 변하면 츄야가 괴로워 하는 걸 끝낼 수 있는 건 자기 뿐인 게 되지만 못하니까 미안해서 정도? 마지막 저기는 다자이 생각이어도 좋고 츄야에게 말한 것이어도 좋다!
* KK - true 듣고 썼습니다
잘 지내?
응.
나도 잘 지내.
알아.
다자이는 가만히 나카하라를 바라보다 빙긋 웃었다. 다정한, 예전과 다를 것 없는 다정한 미소라고 나카하라는 생각했다. 그리고는 정말 구질구질하고 멍청한 생각이라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나카하라는 생각과 생각에 둘러싸여 다자이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럼 나중에 밥이나 먹을까.
그 말이 형식적인 의미만을 담고 있음을 아주 잘 알고 있어 나카하라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놓았다. 화가 나는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순간 나카하라의 뺨에 낯선, 그러나 익숙했던 손이 닿는다. 조금은 차가운. 나카하라는 어깨를 조금 떨었다.
왜 이렇게 말랐어, 응?
안 말랐어.
어디 아픈 데는 없지?
잘 지낸다고.
홧김에 말이 날카롭게 나갔지만 괜찮다. 어차피 지금 보고 말 거니까, 다신 볼 일 없으니까. 나카하라는 다자이의 손을 치워냈다. 천천히 손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나카하라는 입술을 잘게 씹다가 자그맣게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어차피 넌 다 잊었잖아.
츄야.
너랑 내가 했던 약속이나…,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이나.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은데. 진짜 찌질하고, 진짜 별론데. 그런데 자꾸만 나온다. 너를 붙잡아 두고 싶어서인지, 보내고 싶어서인지. 그것은 나도 알 수가 없다.
벼, 별로 신경 쓰는 건 아니지만. 그런 거, 내가 알 바냐고. 횡설수설 내뱉는 말은 아마 하나하나 후회가 되겠지. 나카하라는 고개를 숙였다. 그 표정을 보고 싶지 않다. 냉소적이고, 감정 따위 없는.
츄야.
듣고 싶지도 않아. 하나도, 나는. 네 마음 같은 거 알고 싶었던 적 없다.
안 잊었어.
알고 싶지 않아.
잊지 않았어.
다자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뒤를 돌았다. 그리고 걷는다. 점점 멀어진다. 나카하라는 얼굴을 천천히 들었다. 입술을 달싹이다 나카하라는, 다자이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딱 그 생각 하나만으로 발을 떼었다.
조금 뛰듯이 다가가 나카하라는 다자이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얼굴을 등에 파묻고 나카하라는 울먹이면서도 말을, 진심을 전했다.
거짓말이었어.
그래.
신경 쓰여. 매일, 매일 네 생각 해.
그래.
돌아와…, 돌아와줘.
다자이는 말 없이 제 허리를 감싸안은 손을 어루만졌다. 손등을 손끝이, 간지럽게 그림을 그리듯 맴돈다. 다자이는 제 등에 조금 더 파고드는 나카하라를, 그의 손을 세게 쥐며 대답했다.
그래.
아주 작고, 젖은 목소리.
나는 너를 몰라.
…정말?
응.
정말, 정말 나를 몰라?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다자이는 오히려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서로 알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아, 그 얼굴.
누구도 익숙하지 않은.
다자이는 울 것 같은 이를 가만히 바라보며, 마지막 질문의 의도를 생각하였다. 정말 너를 모르냐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진실을 전해주자니 상처를 받을 게 뻔하잖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다자이는 모르는 이를 위해 마음을 써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애초에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라ㅡ현재 기억하는 것이 없는 한에서, 다자이는 그렇게 추측했다ㅡ 솔직히 말하기로. 조금은 조심스러운 듯하면서도 툭 내뱉어진 말이 남자의 귀에 파고든다.
정말, 정말 너를 몰라.
역시 무너지는 낯선 이, 그러나 그를 안다는 말의 뒷감당을 할 자신은 없다. 다자이는 물끄러미 제 앞에 주저앉은 남자를 내려다보다 몸을 돌렸다. 갑작스레 찾아온 것은 그 쪽이니 책임지고 데려다줄 필요는 없겠지.
저벅거리는 소리가 작아질 때 쯔음 얼굴을 든 남자는 역시나 울고 있었다. 달싹이던 젖은 입술 새로 자그맣게 소리가 샌다.
다자이.
그 애달픈 이름을 한 번 부르고서 남자는, 나카하라 츄야는 고개를 다시 푹 숙였다.
"너 미워."
"그래도 안 돼."
"더 마실 거야, 망할 다자이!"
"그럼 여기 뽀뽀."
제 뺨을 검지 손가락으로 톡톡 치는 다자이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던 츄야가 조그맣게 물었다. 하면? 다자이가 빙그레 웃는다. 마시게 해줄게. 그 말에 허겁지겁 달려드는 입술이 귀여워 다자이는 조그만 머리통을 꼭 감싸 쥐었다. 빠져 나가려 바동거리는 츄야의 허리를 끌어안고 입술에 연신 쪽, 쪽, 입을 맞춘다. 놔 주었을 때 날아드는 주먹 세례가 여간 아픈 것이 아니지만 일단 만족이다. 그리고는 술병을 테이블 밑에 내려놓는다. 고개를 돌린 츄야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술 없어졌어."
"그러네."
순간 울망울망 해지는 눈에 다자이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웃음을 삼켜냈다. 우으. 그리고 들려오는 울음 섞인 목소리에 슬쩍 손을 치워내자 눈물을 툭툭 떨구고 있는 츄야. 다자이 얼굴도 없어졌었어. 칭얼거리는 츄야를 다자이는 단숨에 가득 끌어안고 머리에 뺨을 부볐다. 사랑스러움에 벅차는 마음을 견뎌낼 수 없는지 숨을 멈춘 채였다. 몇 초 뒤에야 숨을 한 번에 잔뜩 내뱉으며, 다자이는 츄야의 귓불을 잘근거린다. 츄야가 어깨를 움츠렸다. 츄야. 왜애. 츄야. 왜 불러. 츄야아.
"왜 자꾸,"
"올해도 나랑 사랑해줘서 고마워."
"뭐야…."
흐려지는 말끝이 귀여워 다자이는 동그란 이마에 입술을 부비었다. 그리고 이번 해의 마지막으로,
"사랑해, 츄야."
Happy new year,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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