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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문스독

[다자츄] 네 번의 사랑

* 불로불사 다자이


전전전생의 너는 아팠다. 많이 아프고, 또 아파서 내 손을 잡을 힘도 없었다. 간신히 나의 손등 위에 얹힌 손은 언제나 파르르 떨고 있었다. 안쓰러워 조심스레 붙들면 네 입술은 희미하게 웃었다.
너는 늘 말했다. 다음에는 건강하게 태어나서, 너랑 걷고 싶어. 소박하게도 네 바람은 그것 하나였다. 네가 입버릇처럼 하던 그 말을 듣고서 나는 대꾸했다. 걷는 걸로 만족하지 마. 하늘을 날자, 우리. 태양에 닿자. 너는 말도 안 된다며 작게 웃었다. 늘 같은 대답에 너는 늘 웃어 주었다. 그런 너의 미소가 좋았다.

'또 만나.'

네가 말조차 끄집어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때 나는 그렇게 말했고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으나 충분했다.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너와 함께하고 싶다는 말에 네 대답이 더 이상 돌아오지 않게 되어서야 나는 너를 떠났다. 음, 정정하자면 나를 떠난 네 옆을 떠났다. 네가 살던 주변을 맴돌고 가만히 누워 네 생각에 잠겨 있기도 했다. 다음 생의 네가 내 눈앞에 언젠가는 찾아올 거라 믿고 나는 가만히 너를 기다렸다.

'아.'
'... 눈 뜨고 다녀라.'
'.......'
'뭘 봐, 새끼야.'

우연찮게 만난 전전생의 너는 온 몸에 흉터를 달고 있었지만 어쨌든 너였다.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어도 너는 너였다. 나는 슬쩍 웃고 너를 지나쳤다. 다음에도 만날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의도치 않았음에도, 그리고, 우리는 꽤 자주 만났다. 너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위협하려고 했던 것 같지만 나는 웃었다. 무엇을 칼끝으로 도려내든 너는 너였기 때문이다.

'자주 보네요.'
'또 너냐.'
'아직도 위험한 일 해요?'

나는 전전전생의 네 소원을 들어주었다. 전전생의 너와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뭐, 제대로 된 대화를 한 건 아니지만. 너는 나를 귀찮아 했고 종내에는 나를 피해 뛰어 가다가 차에 치여 죽었다. 그건 꽤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영원을 살면서 그보다 대단하다 할 수 있는 일들은 수없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장면은 도저히 잊히지 않는 거다.
우습게도 나는 네 뇌수가 질질 흘러나오는 것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 말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조차 믿을 수 없으나.

'네 소원을 이뤘어. 그걸로 괜찮은 거지?'

돌아오는 답은 없었지만, 나는 네 입술이 희미하게 미소를 띠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어도 좋았다. 아마 착각이었을 테지만 그래서 나는 마음을 놓고 약속했던 것이다. 나와, 너, 다음에ㅡ.

'또 만나.'

전생의 너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전전전생과 전전생의 너와 다를 것 없었으나 더한 사랑을 받고 자란 너는 미(美) 그 자체였다. 빛이 났고 고귀했다. 그런 너에게 미천한 나는 어울리지 않았다.
처음의 너는 나를 사랑했다. 상냥한 목소리로 감싸고 부드러운 손으로 뺨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네가 더 이상 나를 봐 주지 않게 되었을 때는 내가 괴물이라는 걸 너에게 들킨 순간부터. 그래서 나는 너를 죽였다. 폭언을 내뱉는 너를, 전전생의 네가 생업으로 삼았듯 칼로 후벼팠다. 어렵지 않았다. 나는 네 뺨을, 붉게 얼룩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말했다. 이번 너는 아니었던 것 같아. 물론 사랑하지만. 그러니까 다음생에,

'또 만나.'

너를 죽인 뒤 나는 한참이나 괴로움에 잠식되었다. 너를 향한 마음이 슬슬 어둠에 파묻혀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므로 다음의 너에게는 속죄와 사랑을 담아 잘해주고 싶었다. 그것만을 생각했다, 새로운 너를 기다리면서.
그리고 절망에서 빠져 나오고는 즐거운 상상과 시간을 보냈다. 너와 만나기 직전이었다. 어떻게 너를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 여태껏 너무 특별한 삶이었으니 평범한 게 너에게 가장 좋겠지. 평범하게 거리를 두고 평범하게 사랑하고. 평범하게, 평범하게. 이번에는 사랑다운 사랑을 하고 싶었다.

"...애초에 사랑다운 게 뭔지 나는 모르지만."

오랜만이었다. 입밖으로 말을 꺼낸 것은. 나조차도 내 목소리가 어색해 목을 쓰다듬었다. 손바닥을 내려다 보자 붉은 모래에 뒤덮여. 나는 내 앞에 가지런히 누워 있는 너에게 시선을 도로 주었다. 정확히 일주일이었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너를 지키기만 한 것이.

우리는 사랑 비슷한 것을 했다. 내가 원했던 이상적인 그것과 가장 유사했다. 지금까지 정확히 네 번 너를 사랑해 왔지만 이리 행복한 적은 없었다. 현생의 너는 첫 만남처럼 가엾고, 두 번째의 너처럼 막무가내였지만, 세 번째의 너처럼 아름다웠으며, 무엇보다도 나를 좋아했다. 손을 잡으면 아닌 척 얼굴을 붉혔고 입을 맞추다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다. 너는 귀여웠고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네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어.
붉은 바람이 뺨을 스쳤다. 눈이 따끔거렸다. 배가 아팠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보낸 일곱 개의 하루하루는 내 몸을 좀먹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죽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있다. 외로이 보낼 영원, 그것의 시작.

모두 죽었다. 너도 그 '모두' 중 하나였다. 나는 그 '모두' 중 하나가 되지 못했다. 그것은 비참하고 사무치게 서러워 눈물이라도 쏟아내고 싶었으나 길고 긴 세월은 나로 하여금 우는 법을 잊게 하였다. 나는 그래서 울음을 터뜨리는 대신, 그것이 치밀어 오를 때마다 너에게 한 마디씩 나의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진심을 건네면 네 번째의 너마저 날아가 버릴까 참고 참았던 마음들을 이제야 건넨다. 듣지 못하는 너에게, 부질없게도.
나는 네 뺨을 쓸었다. 까끌거리는 모래가 손등을 아프게 한다. 아랑곳하지 않고 엄지 손가락으로 네 입술을 문지른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자그맣게 말해. 츄야, 들어줘. 이 메마른 땅에서 살아 숨쉬는 유일한 존재가 내뱉는, 최후의 고백.

"또 만나."

ㅡ 이제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심한 나는 사랑한다는 말에 겁이 나, 오늘도 그 짧고도 달아빠진 말 대신 마음 속 깊이 재회를 꼭꼭 약속하고 곱씹는다. 매일 같은 말을, 매일 네 번씩.

모래 바람이 한 번 더 한 줌의 재와도 같은 이를, 그리고 우주를 감싸 안는다.




1. 시한부 - 병사
2. 조폭 - 교통사고로 즉사
3. 곱게 자란 애 - 다자이가 늙지 않는 것을 눈치 채고 모든 것을 이해한다며 진실을 캐물었다가, 전부 알고는 다자이를 경멸하며 피하려 하다 살해
4. 지구가 한 순간에 황폐한 사막으로 변해 생명이 전부 죽음 츄야는 뼈만 남은 걸로 봐도 좋고 재만 남은 것도 좋고 다자이가 감싸서 온전한 시체인 것도 좋고... 마지막 경우 제외하고는 다자이가 미쳐서 헛 츄야(...)를 보는 거겠지요

마지막 문장은 불로불사여도 사랑하는 이 하나 지키지 못하는 한 줌의 재 같은 다자이와 그의 우주인 츄야... 그런 느낌으로 썼어요 ㅋㅋㅋㅋㅋㅋ 에라이 (때려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