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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문스독

[히구아쿠] 사랑해요, 선배

     * 달성표 보상
     * 학원물
     * 남 X 여


     "이상해."
     "뭐가?"
     "걔."

     걔, 라는 한 글자에 나카지마는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화가 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표정 변화가 두드러지지 않는 아쿠타가와가 이리도 심각한 얼굴을 하게 만든 거, 누군지 뻔하지. 누가 옆에 있었어도 '아, 그 1학년?'하고 대꾸했을 거다.
     그 후배 덕분에 아쿠타가와는 혼자만의 시간을 죄 빼앗겼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투덜거리기 일쑤다. 그녀의 불만 토로 대상은 언제나 나카지마였으니 아쿠타가와의 고충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들 장난의 소재 삼아서 둘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만 말이다. 나카지마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 그 손에는, 히구치 이치요의 불타는 시선이 꽂혀 있었다.


  
                           사랑해요, 선배


     1학년 A반 히구치 이치요가 아쿠타와를 괴롭히기(아쿠타가와는 이렇게 표현했다)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삼 개월 전, 그러니까 입학식부터였다. 나카지마가 친한 동생을 보겠다고 아쿠타가와를 입학식에 끌고 간 것이 문제였다. 아쿠타가와는 그 때 따라가서는 안 되었다 며칠 동안 후회했고, 나카지마는 옆에서 쩔쩔매며 그녀를 달랬었다.

     '안녕하세요.'
     '나 알아?'
     '이제부터 알아가고 싶습니다.'

     강당을 벗어나는 아쿠타가와의 앞을 가로막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더니 어울리지도 않는 작업용 대사를 건넸지. 기괴하게 일그러지는 아쿠타가와의 얼굴을 나카지마는 더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었다. 싫어하는 것은 일단 피하고 보자. 부러 귀찮은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한 아쿠타가와의 모토였다. 아쿠타가와는 진지한 얼굴의 히구치를 외면하고 지나쳐 갔으며 그 해프닝을 잊었다. 다음 날 자신의 반에 찾아온 금발의 알 수 없는 남자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를 애타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히구치를 아쿠타가와는 의아한 얼굴로 쳐다볼 뿐이었다. 누구지? 그리고 나카지마가 '어제 그 아저씨 같던 신입생.' 속삭여줘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내 반은 어떻게 알았대? 그거야 나도 모르지. 잠시 소곤거림을 멈추었을 때 나카지마는 저를 향한 이글거리는 눈빛을 알아 차리고는 모르는 척 시선을 돌렸다.

     '선배!'
     '뭐야.'

     뒷문에 서서 큰 목소리를 내는 히구치와 상반되게 아쿠타가와는 중얼거리듯 툭 대답을 던졌지만 어찌 들은 것인지 얼굴을 발갛게 붉히더라. 선배가 대답해 주셨어! 변태 같아, 하고 아쿠타가와는 씹어먹듯 말을 내뱉었고 히구치는 정자세로 서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반했습니다! 저와 사귀어 주세요!'

     그 이야기를 들은 3학년 다자이 오사무는 친히 히구치를 찾아가 '두 번째 만남에서 고백하다니 패기는 인정하겠다만, 그렇게 하면 우리 아쿠타가와 양이 겁을 먹는다고.' 어깨를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었다. 그리고는 제가 여자를 꼬시는 법을 보고 배우라고 히구치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히구치는 반나절만에 알게 되었다. 이 사람, 쓸모가 하나도 없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쿠타가와는 히구치를 한동안 미워했었다 : 다자이 씨와 어깨 동무를 했다고? 손을 잡았다고? 초점이 조금 어긋난 것 같지만 말이다.
     히구치는 바로 다자이에게서 독립하여 아쿠타가와에게 마구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히구치는 아쿠타가와가 툭 치면 픽 쓰러지는 병약한 공주님을 대하듯 했는데, 아쿠타가와는 그런 대우가 익숙치 않았을 뿐더러 다자이가 아니라면 모두가 그녀의 관심 밖이기 때문에 그녀는 도무지 히구치에게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히구치는 꾸준했다. 덕분에 그녀가 모르는 사이, 이제는 2학년 C반에서는 아쿠타가와의 '걔'를 모르면 전학 왔냐고 비난 받는 지경이 되었다.

     히구치는 매일 찾아와 답지도 않은 이야기를 뒷문에서 조잘대거나 나카지마에게 부탁해 선물을 건넸다. 히구치와 아쿠타가와의 연애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급우들은 히구치가 시끄럽게 떠드는 게 싫다는 것을 핑계로 아쿠타가와의 자리를 뒷문 근처에 배치해 버렸다. 그 덕에 최근의 아쿠타가와는 좀 더 불행해 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히구치는 변한 게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카지마는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었다. 저기, 아쿠타가와. 나카지마는 아주 천천히 말을 꺼냈다. 섣부르게 물었다간 아쿠타가와에게 쥐어 뜯기고 반 밖으로 던져질 것이다. 최악의 경우 하루 종일 무시 당할 지도. 삐진 아쿠타가와는 정말 무섭다. 남몰래 몸을 부르르 떤 나카지마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새삼 이상하다는 거야?"
     "걔가."
     "응."
     "안 와."

     응? 안 온다고. 응? 그 쓸모 없는 귀를 떼어내지 그래. 아니, 아니. 나카지마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어리둥절한 기색을 지워내지 못했다. 일단 히구치는 꾸준히 남의 반에 출석을 하고 있다. 아쿠타가와에게 말을 걸지 않을 뿐이지 쉬는 시간만 되면 총알 같이 날아와 교실 안을 훔쳐보고 있단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놀랍지 않다. 요새 들어 히구치가 눈에 띄지 않게 몸을 숨기는 것도 같았으니 그렇게 생각한대도 무리는 아니다. 나카지마가 놀란 부분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아쿠타가와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히구치가 안 온다면 아쿠타가와는 은근히 기뻐하며 나카지마에게 딸기 우유를 물려 주어야 하는데. 입술을 달싹이던 나카지마는 입을 꾸욱 다물었다. 아쿠타가와가 웬일인지,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안 따라 다닐게요.'
     '내가 그걸 어떻게 믿냐?'
     '진짜예요. 싫어하지만 말아주세요.'

     며칠 전의 대화가 아직도 아쿠타가와에게는 생생하다. 다만 아쿠타가와는 화가 났을 뿐이었다. 정말 오지 말라는 게 아니었다. 오지 말라고 해도 꿋꿋하게 찾아오는 녀석이라 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다. 물론 반 정도는 진심이었지만.
     아쿠타가와는 그때 우연히 만난 다자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아쿠타가와가 다자이를 쫓아가 있는 칭찬, 없는 칭찬을 줄줄 늘어놓은 것뿐이지만 말이다. 아쿠타가와의 말을 흘려 듣던 다자이는 갑작스레 제 어깨를 붙드는 손에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또 스토킹 중?'

     당연하게도 히구치였다.

     '지켜보고 있던 것뿐입니다.'
     '헤에, 그럼 불청객은 이만.'
     '아쿠타가와 선배 옆에서 좀 떨어지세요.'

     손을 팔랑이며 사라지는 다자이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아쿠타가와는 생각했다. 이만큼이나 히구치가 보기 싫었던 적은 없었다고.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저보다 다자이와 더 친해 보이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다자이와 저를 방해한 것에 화가 났다. 그래서 아쿠타가와는 제게 웃어주며 눈높이를 맞추려 허리를 굽히는 히구치에게 말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따라 다니는 거 범죄야.'
     '네?'
     '스토킹.'

     난 그런 거 싫어.
     아쿠타가와는 한숨을 짙게 내쉬었다. 나카지마는 난처한 얼굴을 했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쿠타가와도 히구치도 잘한 건 없지만 평소의 것들과 다를 바 없는 사건이었다. 아쿠타가와가 상당히 좋아하는 다자이가 연관된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평소처럼 다물고 있어야 하나? 그러나 둘 다 그들답지 않게 행동하고 있으니, 제가 조언을 해 주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 끼어들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카지마는 아쿠타가와를 흘끔거리다 용기를 내어 툭 내뱉었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한 번 가 보지 그래?"
     "내가 왜?"

     즉각 튀어 나오는 대답에 아츠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히구치 군이 영원히 안 와도 좋아? 아쿠타가와는 우물쭈물 하다가 벌떡 일어섰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카지마는 흠칫 놀라 그녀에게서 멀어지려 의자를 뒤로 끌었다. 가까이 있다간 분명 맞을 거다. 주제 넘게 굴었다고 혼날 거야.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아쿠타가와는 몸을 돌려 뒷문으로 향했다.

     "어디 가, 아쿠타가와?"

     나카지마는 다급히 아쿠타가와를 불러 세웠다. 문 밖에서 후다닥 사라지는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지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가 보라며."

     그 말을 끝으로 아쿠타가와는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 버렸다. 별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봐서는 금세 이 층의 복도에서 도망친 모양이다. 충분히 시간을 벌어주지 못해 미안해. 나카지마는 히구치에게, 닿지 않을 사과를 건네 본다.

     "히구치 있어?"
     "아, 예? 예. 방금 들어왔..."
     "아쿠타가와 선배!"

     이 놈이나 저 놈이나 표정이 왜 저래. 히구치의 반이 어디냐 물었던 1학년도, 반에 찾아와 앞에 얼쩡거리길래 잡았던 1학년도 얼떨떨한 얼굴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로 했다. 말을 걸었던 녀석의 입을 막으며 급히 뒷문을 박차고 나타난 것은 히구치였기 때문이었다.
     히구치는 절망하고 있었다. 아쿠타가와 선배에게 더 이상 치근대지도 않고 경박스러운 모습도 보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친구 놈이, 자신이 방금 들어왔다고 말하면 아쿠타가와의 반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던 것을 그녀가 알 것이었다. 물론 화장실에 갔다 온 척 하면 되었지만, 더욱이 아쿠타가와가 그렇게 히구치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할 리 없었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히구치는 친구의 등을 밀어 저 멀리 보내버린 뒤 헛기침을 했다. 최대한 점잖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아쿠타가와가 처음으로 자신을 찾아와 저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말이다.

     "무슨 일이세요?"
     "죽었나 해서."

     물론 아쿠타가와는 히구치의 목소리 톤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었다.

     "네?"
     "죽었나 해서 보러 왔다고."

     하도 안 오길래. 덧붙여진 말에 히구치는 결국 우는 소리를 내며 아쿠타가와를 껴안고 만다. 그러나 함부로 아쿠타가와에게 스킨십 하지 않기, 를 굳게 지키고 있던 그는 곧 제 행동에 놀라 그녀에게서 떨어진다. 물론 아쿠타가와는 히구치의 행동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히구치가 그녀와 시선을 똑바로 맞추며 굳은 다짐이 담긴 목소리를 내었다.

     "선배, 나 선배 포기 못 해요."
     "그러던가."

     그리고 아쿠타가와는 고개를 돌렸다. 예비종이 울렸다. 반에 돌아가야 했다. 데려다 드릴까요? 꺼져. 다정하지 못한 대답에도 히구치는 마냥 웃기만 한다. 아쿠타가와는 분명 거절의 의사를 밝혔음에도, 제 뒤를 강아지처럼 쫓아오는 히구치에 슬며시 웃는다. 귀찮은 일을 자처했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 웃음을 히구치에게, 그를 위해 보일 날이 곧 올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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