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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문스독

[다자츄] 놓아야 함을

* 보스 X 간부

 

 

츄야, 자네는 남게.

 

짤막한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자리를 벗어날 때 다자이가 입술 새로 툭 뱉어낸 말이었다. 의자를 밀어 넣던 손이 멈춘다. 무슨 잘못을 한 적이 있나, 잠시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단 한 순간도 실책을 저지른 적은 없다. 무슨 용무십니까.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조차 없다. 비어져 나오려는 헛웃음을 참아낸다. 언제부터 그 자신이 타인의 눈치를 보았던가. 저를 부른 이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나카하라는, 다른 이들이 회의실을 벗어날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의자를 정리하다 말았던 그 모습 그대로 말이다. 마지막으로 방을 벗어난 누군가 문을 세게 닫는 소리가 나카하라의 귀에 파고든다. 닫혀 버린 문, 이곳에는 자신과 보스뿐이다.

도저히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다. 내가 어떤 얼굴로 다자이를 마주했었지? 어떤 말투로, 어떤 목소리로 다자이를 불렀었지? 잘근거리던 입술을 놓는다. 이전과 다를 것 없는 부름이 그를 향했기 때문이었다.

 

츄야.

.

 

머뭇거리다 건네진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미간을 좁힌다. 그것이 나카하라에게 보일 리 없었다. 나카하라의 시선은 그 자신이 쥐고 있는 의자 등받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의 눈 맞춤도 허락되지 않는다. 다자이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나카하라는, 다자이 주제에 그 한숨은 무엇이냐고 바락바락 대들어야 했을 나카하라는 여전히 미동조차 없다. 우리 둘 뿐이잖아. 달래듯 건네진 말은 평소처럼 대해 달라는 의미였으나 나카하라는 그럴 수 없었다. 다자이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모든 것을 외면하고픈, 단순한 고집이고 간절한 바람이었다.

 

무슨, 용무십니까.

 

아까부터 입 안을 맴돌던 말을 간신히 끄집어낸다. 한숨이 다시 한 번 다자이의 살짝 벌어진 입술, 그 틈을 비집고 나온다. 한참의 정적 끝에 다자이가 작게 중얼거린다. 애달픔을 잔뜩 억누른 목소리였다.

 

우리가 용무가 있어야 만나는 사이던가?

저와 당신은 더 이상 파트너가 아닙니다.

 

곧바로 튀어 나오는 대답이 다자이를 아프게 할퀸다. 두 손이 얼굴을 쓸어내린다. 그렇다면 너는 내 연인이잖아, 하고 말하기에는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것마저 부정당하면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카하라가 저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는 것을 안다. 그러나 멀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이것 또한 단순한 고집이며 간절한 바람이었다.

 

지금도 우리는 파트너야.

당신은 제가 섬겨야 할 보스입니다.

 

시선을 조금도 맞추지 않으려던 모습은 환영일 뿐이기라도 한 것인지, 푸른빛이 진하게 감도는 눈동자가 다자이를 향하고 있다.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눈을 사랑했지만 그것이 저에게 전하는 마음은 보고 싶지 않았다. 당신은 한 조직의 우두머리십니다. 덧붙여지는 말은, 둘 사이에 벽을 만들 작정이다. 그것이 뻔히 보여 다자이는 숨이 막혔다. 작게 기침을 토해낸다. 난 이런 말을 듣기 위해 이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야. 순간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내가 누굴 위해 어울리지도 않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건데. 다자이는 결국 격앙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조금은 사나운 말을 뱉는다.

 

보스는 널 죽이려고 했어.

압니다.

나는 너를 위해서 보스를 죽인 거야.

압니다.

 

담담하고 일관된 반응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알면서, 알면서 그래? 전부 너를, 내 파트너를, 내 연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모든 것은 너를 위해 흘러간다. 이 조직은 나를 우두머리로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모르지 않을 텐데. 그렇다면 네가 나한테 이래서는 안 되는데.

 

보스는, 자신이 보스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충분히 알고 있어.

그 말이 아닙니다. 주제넘게 굴어서 죄송하지만.

 

나카하라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너는 저번에도 나를 구하려고 수십 명을 죽였잖아.

 

떨리는 목소리가 건네는 말은 분명 원망이고 질책이었다. 존칭을 쓰지 말아달라는 것이 이런 의미는 아니었다. 그것을 떠나서, 다자이는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그것이 왜? 뭐가 문제인데? 네가 살았으면 됐잖아. 너를 위해서라면 나는 수백 명도, 수천 명도 죽일 수 있어. 그 말을 대답으로써 전하지는 못했다. 나카하라가 저를 더 이상 미워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츄야.

…….

나는 너를 사랑해. 그래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들어 올린 얼굴은 울음을 머금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이렇게 다자이를 마주하고 있는 것 자체가 나카하라에게는 괴로움이었다. 고통이었다. 죽어버린, 제 눈앞에서 저를 위해 죽어버린 부하들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구역질이 나왔다. 다자이는 저를 위해서라면 이 조직 전원을 갈가리 찢어 죽일 수 있는 남자다. 나카하라는 이 조직을 사랑했다. 부하들을 사랑했다. 더 이상 저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는 한 명도 죽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카하라는, 사랑하는 이에게서 멀어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모두의 목숨을, 헛되이 쓰지 말아주십시오.

 

나카하라는 그 말을 끝으로 발을 떼었다. 빠르지 않게, 하지만 빠르게 그곳을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다자이는 나카하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눈동자조차 나카하라를 쫓지 못했다. 나카하라의 손이 문고리에 닿았을 때, 그제야 다자이는 힘겹게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네 파트너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

보스의 말은 듣는 것인가?

 

나카하라는 말이 없었다. 무슨 대답을 바라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다자이의 손끝이 책상 위의 종이를 구긴다. 다자이 오사무는 나카하라 츄야를 놓을 수 없었다. 놓지 못한다. 놓아야 함을 모른다. 침착한, 아니, 그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목소리가 자그맣게 속삭인다. 그렇다면 츄야, 보스의 명령이야.

 

나를, 나를 사랑해. 놓지 말아줘.

 

말끝이 흔들린다. 울음을 삼키는 것도 같았으나 그런 일이 있을 리 없었다. 문고리에 얹혀 있던 손에 힘을 준다. 문이 열렸고, 나카하라는 문틈으로 억지로 몸을 비집어 넣었다. 문이 그의 뒤에서 세게 닫힌다. 순간 다리에서 힘이 풀린다. 뺨을 축축이 적신 눈물을 손등으로 아프게 닦아낸다. 일어나려고 바닥을 짚었지만 후들거리는 다리는 도저히 몸을 지탱할 수가 없다. 다자이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데. 얼른 이 자리를 떠야 하는데.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흐느낌을 억누르기 위해 입을 틀어막는 것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사랑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건데. 헛된 후회가 머릿속을 맴돌다 못해 흘러넘친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상체가 무너진다. 차가운 바닥에 뺨이 닿는다. 짓눌린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멈출 생각이 없다. 너는 어떨까. 너도 울고 있을까. 숨을 삼켜내려고 헐떡이는 와중에도 떠오르는 생각이 한심하기 그지없다. 저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울컥 밀려든다. 너는 모두를 죽여 놓고 아직도 사랑을 하고 싶니? 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나카하라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일어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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