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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문스독

[다자츄] 비틀림

* 네임버스


"츄야."
"그만, 좀. 빌어먹을... 새끼야."

숨을 몰아쉬느라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는 이의 등을, 다자이는 손바닥으로 찬찬히 쓸어내렸다. 앉아 있을 기력도 없는지 바닥에 엎드려 나카하라는 기침을 함으로써 물을 토해냈다. 괴로움에 절어 내뱉은 신음을 마지막으로 그곳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은 숨소리 뿐이었는데, 다자이의 것은 들리지 아니하였다.
나카하라는 다자이가 혹여 사라진 걸까봐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음에도 상체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오는 다자이의 모습에 유달리 안심한 얼굴. 다자이는 그의 표정 변화에 대답이라도 하듯 조금 웃었다. 나카하라는 손을 뻗어 다자이의 옷깃을 붙든다. 다자이의 손이 그 위에 겹쳐진다. 나카하라는 멀뚱히 다자이를 쳐다보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헛기침을 하고는 톡 쏘아붙인다.

"그만 좀 해라, 이 망할 자살 매니아."

아직 메인 듯한 목소리는 체념을 한 것도 같아 다자이는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어조로 넘기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탁 튕겨내었다. 악! 이마를 감싸쥐면서도 옷을 놓지 않는 손. 나카하라는 아픔으로 인해 벌개진 눈으로 다자이를 매섭게 노려 보았다. 다자이가 딴청을 부리는 척 휘파람을 짧게 휘익, 불더니 나카하라와 시선을 마주한다.

"츄야가 구하러 와줄 거 알았거든."
"하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다년 간의 경험으로 익숙해졌다고?"
"자랑이다."

다음엔 안 구해줄 줄 알아. 나카하라는 그리고서 후들거리는 다리로 억지로 일어선다.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천천히 신중하게 옮기는 나카하라의 뒤를 다자이가 졸졸 따른다. 흡사 애완동물 같은 모습이었다 : 말로써 나카하라의 성질을 살살 건드리고 있었다만. 어라? 이 말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데. 저어번에 차에 치이려고 했을 때였나. 아니, 그 때는 목을 맸었나? 나카하라는 귀를 틀어막았다. 그럼에도 다자이의 기분 나쁜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카하라는 그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이것을 다행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카하라는, 오늘도 강 속 깊은 어둠에 처박히기를 간절히 소망하던 다자이를 끌어내었다.

***

다자이 오사무의 양 팔에는 똑같은 이름이 한 쪽에 한 번씩 선명하게 박혀 있다.

'이름이 뭐야?'
'나카하라 츄야.'
'...어?'

그래서 다자이는 처음 나카하라를 만났던 날 그의 손을 붙들고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눈을 뜨고 감는 순간 한 번씩 되뇌었던 그 이름, 그 이름을 가진 자가 눈앞에 있다. 어째선지 붕대로 감은 곳이 마구 따끔거리던 게.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환희, 열망, 다른 의미로써의 갈증. 그리고 그 날 다자이는 손목을 그었다. 나카하라가 노 네임드였기 때문이다.
다자이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누구보다 빨리 병원 문을 열어 제꼈던 나카하라는, 다자이가 이름을 보여주었을 때 별로 놀라지 않았다. 다만 그 이름을 가만가만 쓸어보더니 옅게 웃었다. 그 웃음은 곧 비난으로 탈바꿈. 겨우 이딴 것 때문에 뒈지려 했단 말이지?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다자이는 괜히 과장하여 놀란 척을 했다. 나카하라의 눈에 그것은 다 보여 비웃음만 당할 뿐이었다.
입을 꾹 다물고서는 나카하라는 제 이름을 빤히 바라보더니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목소리로, 점심 메뉴를 정하는 것보다도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그깟 운명이니 뭐니 웃기고 자빠지고 있네. 정 그러면 너도 내 운명 시켜줄게. 감사해라. 그리고 침대 옆 서랍장 위에 놓여 있던 볼펜을 집어든다. 소매를 걷고 나카하라는 제 팔 위에 볼펜을 직직 긋는다. DAZAI OSAMU. 나카하라는 그 팔을 다자이에게 보여주면서 웃었다. 다자이는 웃을 수 없었다. 딱 그것만큼도 웃기지 않는 것이, 이는 둘이 처음 얼굴을 마주한 뒤 바로 다음 날의 일이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카하라는 옆에 다자이가 없으면 불안해했다. 몇 년을 함께 하면서 다자이가 없어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게는 되었으나 오래 자리를 비우면 무엇이든 내팽개치고 다자이를 찾으러 갔다. 언제나 그럴 때면 다자이는 죽음을 잡기 위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럴 때면 나카하라는 다자이를 붙잡았다. 언제나 그럴 때면 다자이는 죽음을 그리도 바라왔으면서도 나카하라를 떨칠 수가 없어 그에 한 발짝 물러섰다.
죽음에 대한 열망이 다자이를 감쌌고 매일 밤 누군가 죽음을 부추겼지만 다자이는 죽지 않고 있었다. 나카하라가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나카하라가 다자이를 더 이상 동정하지 않게 되어 곁에서 떠나면 자신은 그제야 죽음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다자이는 생각했다.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것에 의한 절망감은 다자이가 자살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게끔 하였다. 나카하라가 옆에 있음에도 말이다. 나카하라는 그것을 알았다. 다자이의 생각을 전부, 전부 안다. 모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속내를 감추고 사는 그라지만 매 순간을 함께하는데 어찌 모르겠는가. 그래서 나카하라는 다자이를 보면, 그를 생각하면 괜히 눈물이 났다.

이번에 다자이가 택한 수단은 약물 자살이었다.
약을 잔뜩 처먹고 병원 침대에 고요히 누워 있는 다자이에게 나카하라는 다가섰다. 무릎을 꿇고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마치 시체처럼 차갑고 하얗고. 나카하라는 손을 뻗었다. 코끝에 닿은 손가락에는 숨결이 끼쳐 온다. 안도감에 눈물이라도 나올 것 같아 입술을 아프게 씹는다.
나카하라의 손이 다자이의 뺨을 감쌌다. 엄지 손가락이 자꾸만 그 얼굴을 쓸었다. 나카하라는 침대에 얼굴을 기대었다. 눈을 감았다. 한숨이 짙게 배어 나왔다.

"땅 꺼지겠네, 츄야."
"노, 노, 놀랐잖아, 네 놈!"
"자는 사이 몰래 만지기나 하고 있었으니 놀랄 만도 하지."

어느 샌가 눈을 반짝 뜨고는 츄야는 변태야, 제멋대로 음을 붙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다자이를 나카하라는 한 대 때려주려다 말았다. 환자니까 참는다고 속으로 다자이를 마구 씹으며 나카하라는 벌떡 일어섰다. 어디 가냐 묻는 듯한 눈. 나카하라는 무시하려다 퉁명스레 대답 아닌 대답을 전했다.

"배고파서 먹을 거 사러."
"안 물어봤다, 츄야."
"야!"
"농담. 밥도 못 먹고 달려올 만큼 걱정 시켰다니 이거 미안하네."

사실이었지만 나카하라는 그에게 인정하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 뒤를 휙 돌아 문으로 향했다. 누가 까까 사준다고 해도 따라가지 말고 조심히 다녀와! 나카하라는 대답할 가치를 못 느껴 그대로 병실 문을 열고 나왔다. 쾅, 생각보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힌다. 어깨를 살짝 움츠렸던 나카하라는 그대로 문에 기대어 주저 앉는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은 맞다만, 그렇다고 해서 배가 고픈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죽음에 실패한 다자이에게 슬퍼할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보다 솔직해지자면 나카하라 츄야는 다자이 오사무에게 언제나 미안했다. 그의 옆에 있으면서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짓누르며 살아왔다. 그래서 지금 그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다자이의 자살 시도가 본인 때문이어서? 그보다는, 그의 절망을 막을 수 있는 법을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는 것에. 자신은 용기가 없었다. 이미 시작된 것을 멈출 용기도, 다자이에게 제 속내를 전할 용기도. 일상의 사소한 행복이 비틀릴까 무서웠다.

당신이 연민이라 칭하는 것을,
나는 감히 사랑이라 부르고 싶은데.

나카하라는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아직은 진심으로 다가서기가 무섭다.



설명 : 다자이는 츄야가 자기 찾고 데리고 다니고 살리려는 게 연민 탓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랑이라는 내용임릐다... 제목은 둘 다 머 단단히 비틀ㄹ려 잇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