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챠코는 침대 옆 간이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이즈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고 버티고 있던 이즈쿠는 결국 그 손길에 무너졌다. 팔이 힘 없이 툭 떨어졌다. 상체를 수그리고 무릎 위에 무기력하게 늘어진 팔에 이마를 대었다. 깊고 억눌린 한숨이 이즈쿠의 입술 새로 비어져 나왔다. 그 숨에는 물기가 잔뜩 어려 있어 오챠코는 마음이 아팠다.
이즈쿠가 몸을 숙여서 허공에 붕 떠 버린 제 손으로 천천히 주먹을 쥐며 오챠코는 제 앞 하얀 침대로 시선을 돌렸다. 이즈쿠를 보고 있으면 그 슬픔과 절망에 짓눌려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바쿠고 군, 괜찮을 거야. 오챠코는 그렇게, 진심으로 바라지만 확신할 수는 없는 위로를 건네려고 했다. 제가 생각해도 같잖지만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오챠코는 할 수 없었다. 침대 위 그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무언가 말할 준비를 하던 입 안으로 빠르게 숨이 들어찼다. 그는 가만히 누워 있던 그 자세 그대로, 아무 소리도 아무 기척도 내지 않고 눈만 뜨고 있었다. 순간 예상치 못하게 그 새빨간 눈동자와 마주친 것에 놀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자, 오챠코는 대신 입 모양으로 '바쿠고 군' 그의 이름을 소리 없이 불렀다.
카츠키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시선을 내리깔았다. 두 눈에 이즈쿠의 초라한 등이 담겼다. 카츠키는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계속 꼭 다물고 있어 바싹 마른 입술이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을 억지로 벌렸다. 잔뜩 갈라진 입술 새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아주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데쿠.
"…캇쨩."
그 조그만 부름에도 이즈쿠는 크게 반응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카츠키가 희미하게 웃었다. 깨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큰 움직임이 힘든 모양이었다. 그 미소를 본 오챠코는 침대를 지나쳐 병실을 나섰다. 그녀가 할 일은 끝난 것 같았다. 그녀가 있을 곳이 더 이상 아닌 것 같았다. 실제로도 둘 중 누구도 오챠코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서로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즈쿠 역시 그 얼굴을 보았다. 언제나처럼 예쁜 웃음을 보았다. 이즈쿠가 버벅버벅 손을 허우적거리다 의자를 침대에 바싹 당겨 앉았다. 그럼에도 원하는 만큼 가까워지지 못했는지 발로 의자를 밀어버린 이즈쿠가,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카츠키의 오른손을 양 손으로 붙들었다. 시선이 조금이라도 빗겨가면 카츠키가 저를 쳐다보기 힘들까봐 이즈쿠는 무릎을 세워 그가 고개만 살짝 틀면 제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카츠키는 손을 꿈질거리며 이즈쿠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카츠키의 손가락이 이즈쿠의 한 쪽 손 손가락 사이사이로 파고들었다.
이즈쿠는 카츠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깍지 낀 손을 들어 두 손으로 꼭 감싸고 그 손가락에 입을 맞추었다. 그 짧은 과정 동안 제게서 떨어지지 않는 시선에 이즈쿠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카츠키가 깨어나면 평소와 같은 얼굴로 '잘 잤어, 캇쨩?'하고 웃어주려고 꾹꾹 참아왔던 눈물이 밀려나왔다.
"우냐, 데쿠."
"응, 아냐…."
"울보."
그 툭 던져진 것 같으면서도 다정함이 잔뜩 묻어나는 한 마디에 이즈쿠는 결국 눈물을 투둑 떨어뜨렸다. 카츠키는 피식 웃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울 줄만 아는 거, 똑같아. 카츠키는 일어나 이 바보같고 사랑스러운 애인을 꼭 안아주고 싶었으나 몸이 축축 늘어지는 게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대신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그 미약한 몸짓에 이즈쿠는 입술 새로 울음소리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시끄러. 웅얼거리는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이즈쿠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놓으며, 울음에 묻혀 잘 들리지도 않는데 꾸역꾸역 말을 늘어놓았다.
"캇, 쨩, 미안, 해."
"뭐가, 인마."
"나, 때문, 다, 내가,"
이즈쿠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맞잡은 손에 이마를 대고 흐느낌을 억누르려 노력했다.
'왜, 왜 안 되는 거야?'
'데쿠!!'
빌런이 달려오는데 도대체 어째선지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 갑자기 개성을 슬 수 없게 되었다. 당혹스러움에 발이 묶여 움직이지도 못하고 주먹만 미친듯이 쥐었다 폈다. 물 타입 빌런, 이곳의 히어로는 캇쨩과 나. 내가 해야 해, 내가. 내가 모두를 지켜야 해. 근데, 근데…. 이즈쿠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오른쪽 손목을 세게 움켰다. 왜 이래, 이거!! 답답함과 절망에 버럭 터진 이즈쿠의 분노 섞인 음성 직후 빌런은 그에게 덤벼들었고, 그리고,
'카, 캇쨩!!'
'아, 윽, 씨바알…."
이즈쿠의 앞을 카츠키가 막아섰다. 하반신이 완전히 빌런에 짓뭉개져 온 얼굴에 고통이 들어차 있으면서도, 카츠키는 먹히지 않는 폭발만 계속 만들어내며 빌런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제지하고자 했다.
지키고 있던 사람이 정말 전력을 다해 지키고 싶었던, 지키고 싶은 사람이 나로 인해. 그 이후 자신이 어떻게 무엇을 했는지 잘은 모른다. 다만 그 때서야 개성이 발동했고 그 빌런을 구속해야 한다는 본분을 잊고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그리고 카츠키가 병원에 실려왔고,
'다리는, 글쎄요. 평생 못 쓰지 않을까.'
'왜, 왜, 왜죠? 리커버리 능력자가,'
'그만큼을 치유할 체력이 바쿠고 군에게 존재하질 않아서 말입니다… 지금 정도가 최선입니다.'
보호자 자격으로 의사와 대면하게 된 이즈쿠에게, 그 어떤 감정도 실려있지 않은 목소리로 의사가 말했다. 최선, 최선, 최선. 대체 뭐가 최선이라는 거야? 이즈쿠는 고개를 푹 숙이고 무릎을 꽉 쥐었다.
어째서.
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내가, 내 손으로 파괴해버린 거야.
전부 나 때문이야. 전부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나, 내가 잘못한 거야. 난, 난 정말…
그리고 그 속에 불쑥 나타난 그 사람의 한 마디.
"네 탓 아냐."
이즈쿠는 그 짧은 한 마디에 흐느낌을 참으려는 노력조차 잊고 마구 울음을 뱉어냈다.
"흐, 으욱, 캇쨩,"
"시민을 지켜야 해. 그게 히어로의 임무다."
그리고 데쿠 넌 나보다 약하니까 시민. 내가 지켜야 할 시민이야. 난 내가 할 일을 했어. 너와는 상관 없이.
이즈쿠를 위로하려는 심산인지 작고 나직한 목소리로 카츠키는 답지 않게 길게 말을 건넸다. 이즈쿠는 그 마음이 손끝을 타고 목소리를 타고 전해져 오자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살짝 몸을 일으킨 이즈쿠는 덜덜 떨리기까지 하는 손을 뻗어 카츠키의 뺨을 검지 손가락으로 부볐다. 그리고 그의 손바닥이, 카츠키의 뺨을 감싸쥐었다.
붙든 손을 놓지 않고 이즈쿠는 고개를 숙여 카츠키와 이마를 맞대었다. 이즈쿠가 카츠키와 맞닿은 코를 부볐고, 눈물이 카츠키의 코를 타고 흘렀다. 카츠키의 혀끝에 짠 맛이 닿았다. 이즈쿠는 눈물이 끝없이 쏟아져 시야가 흐릿함에도 카츠키의 두 눈을 또렷이 마주하려 애썼다.
"카, 흐윽, 캇쨩,"
"응."
"우리, 우리 결, 결혼하, 자…."
카츠키는 웃었다. 참 데쿠스러운 청혼이라고 카츠키는 그 상황에서도 그 생각부터였다. 예상조차 못하게 했고 분위기라고는 조금도 없지만 마음이 가득가득 담긴, 멍청이 같은 고백. 이즈쿠는 제 눈물로 축축해진 카츠키의 뺨을 계속 어루만지며 울음소리 사이로 목소리를 끄집어내려 했다. 나, 내가, 내가 다, 다, 책임, 지고, 나… 으우, 윽, 너, 내가. 그러나 울음이 도저히 멈추지 않아 이즈쿠는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어, 답답함에 가슴이라도 내리치고 싶었다.
카츠키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왼쪽 팔을 억지로 들어올려 이즈쿠의 머리통에 턱 올렸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지도록, 아직도 아이처럼 서툴기만 한 사랑스러운 애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
"우, 흐윽, 캇쨩,"
"결혼하자."
멋없는 고백에 뒤따라온 다정한 대답에 이즈쿠는 더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더 솟구치는 울음에 얼굴을 마구 일그러뜨리며 허겁지겁 카츠키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제 입술을 그의 입술에 마구 부비며 붙은 두 입술 새로 흐느낌을 내보내는 이즈쿠의 머리를, 굳은살이 잔뜩 배긴 카츠키의 손이 계속 어루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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