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메가버스
* 베타 X 오메가
인간을 엮어놓는 빌어먹을 인연이라는 것에는 동물적 감각만이 있을 뿐이다.
사랑, 사랑. 온갖 대중매체에서는 온갖 방법을 통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감정을 울부짖지만 불행하게도 다들 틀렸어. 애초에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가? 혼자서는 가질 수 없는, 그러니까 타인과의 어떠한 교감을 사랑이라 정의내렸지. 그러나 세상에는 페로몬의 이끌림 뿐 사랑은 없다. 그래, 한 발 물러나 베타만은 인정한다고 치자. 아, 정정. 베타끼리만. 베타는 서로를 유혹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 '사랑' 그와 유사한 것을 한다더군.
그렇다면 우리는?
아, 우리.
짐승 그 자체지.
냄새에 환장해 사타구니에 코를 처박고 할딱이는 꼴이란.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지랄 맞던 알파와 천대 받던 오메가가 끌어안고 사랑해 사랑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은 정말 못 들어 주겠다고. 알파와 오메가의 사랑, 진실된 마음, 그런 게 어딨어.
「널 좋아해.」
스스로의 불행함에 취해 세상에 의지할 곳은 나 뿐이니 어찌니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홋케.」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본능.
「나, 널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어.」
그러니 너의 말은 들을 가치가 없다. 귀를 막는다.
***
"못 알아 듣겠으면 다시 말해줄까?"
"아니, 아니. 네 말 뜻이 뭔지는 하안참 전에 알았는걸."
"그럼 이제 비켜줄래. 다신 찾아오지 말고."
"싫어."
언제나 단정히 뜨여 있던 눈이 사납게 스바루를 노려본다. 일자로 다물린 입술이, 화가 났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다. 스바루는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호쿠토의 손을 슬쩍 잡는다.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
곧바로 내쳐지지만.
금세 붉어지는 손등을 문지르며 스바루는 잠시 억울한 표정을 띄웠다가 한숨을 포옥 내쉰다. 나도 몇 번이나 말했잖아, 홋케. 그런 이상한 호칭으로 부르지 말라고 타박을 주려다 호쿠토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팔짱을 턱 낀다. 그 자세가 지나치게 호쿠토와 어울려 터질 뻔한 웃음을 스바루는 꾸역꾸역 밀어넣는다.
"난 베타라니까. 알파가 아냐."
"알고 있어."
"그렇지만 홋케가 계속 알파랑 오메가, 우리, 사랑을 할 수 없다고."
"난 너와 날 우리, 라는 말로 묶을 생각 없어."
끝까지 듣지 않아도 다 알겠다는 듯 한심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호쿠토는 귀찮음이 가득한 음성으로 말을 자른다. 스바루는 무어라 말하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냥 입을 다문다. 호쿠토는 아까 그 삐딱하던 자세를 고쳐 똑바로 서고는, 스바루와 눈을 맞추고 또렷한 목소리를 낸다. 알파, 오메가. 그것들이 '우리'야. 알겠어? 그리고 우리 사이에는 페로몬에 의한 교미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아까는 알겠다며?"
"난 베타잖아. 그럼 그 말에서 제외되는 거 아냐?"
"그ㅡ러니까."
정말 답답하다는 듯 발을 작게 구르고 호쿠토는 급기야 스바루의 얼굴을 향해 검지 손가락을 척 치켜든다. 베타인 너는, 내 페로몬도 느끼지 못하면서 나한테 관심 갖는 척 하지 말란 말이야. 여전히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스바루는 뚱하게 호쿠토를 바라만 보았다. 호쿠토는 한숨을 한 번, 또 한 번 내쉬고는 팔은 내렸다.
"베타는,"
"그게 무슨 상관이야?"
"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널 좋아해."
또 다시 듣기 싫은 말이 귓가에 스며들자 호쿠토는 인상을 팍 쓰고 뒤를 돌아 버렸다. 더 듣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홋케. 다정한 목소리가 부르는 이름을 모르는 척. 스바루의 손이 다시 한 번 호쿠토를 붙든다.
"나, 널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어."
"난 듣고 싶지 않다고 말할래, 그럼."
떨쳐 내려 하지만 손은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네가 날 싫어하는 거라면 인정할게. 하지만 네 말은 이상해."
"뭐가?"
"난 베타야. 그렇지만 널 사랑한다니까?"
페로몬은 하나도 중요한 게 아냐. 호쿠토는 제 손을 붙든, 생각 외로 부드럽고 따뜻한 손을 저도 모르게 맞잡을 뻔 하다 다시 한 번 쳐 내었다. 소용은 없었다. 제발, 웃기지 마. 날카로워진 목소리가 여태까지와는 다른 말을 뱉어낸다. 네가 뭘 알아, 내 향을 맡지도 못하는 주제에. 조금은 격앙된 것도 같은 목소리.
"페로몬에 취해서 사랑한다는 헛소리를 뱉어내는 알파는 한심하지만 가엾지."
"홋케. 페로몬은,"
"그조차 느끼지도 못하는 주제에 거짓말이나 하는 건 용서할 수 없어."
정말로 화가 난 듯한 목소리에 스바루는 어쩔 줄 몰라했다. 물론, 손은 놓지 않았다. 아랫입술을 아프게 짓씹는다.
대체 이 아이를 이렇게까지 꼬이게 한 것은 무엇일까. 이 세상이? 어떠한 알파? 혹은 베타? 그것도 아니라면 오메가? 처음 만난 순간 그 반짝이는 눈에 반했고 반짝이는 마음에 반했고 반짝이는 홋케에 반했어. 하지만 세상에 사랑이란 없다며, 베타는 베타끼리 놀음이나 하라는 퉁명스러운 말만 듣기 일쑤. 도대체 어떻게 마음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다.
"가게 해줘."
"…내일 또 봐."
대답 없이, 자유로워진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싸쥐며 호쿠토는 떠났다. 스바루는 점점 멀어지는 뒷모습, 작아지는 발소리에 집중했고 괜한 서러움에 열이 오르는 눈가를 손바닥으로 꾹꾹 눌렀다. 내일은, 내일은 내 말을 들어주겠지. 내 맘을 알아주겠지. 스바루는 고개를 끄덕이고 빙긋 웃었다. 안녕, 홋케. 내일 그를 만났을 때 이렇게 웃으면서 인사해야지. 하지만 그의 얼굴은 웃음을 껴안는 대신 물기에 어린 채 떨리고만 있다.
젠장.
젠장, 젠장.
호쿠토는 커브를 돌아, 골목의 벽을 손바닥으로 짚고 괜한 바닥만 구르고 있었다. 억울함과 분개에 물든, 시뻘개진 얼굴. 결국은 다리에 힘이 풀려 쭈그려 앉은 호쿠토가 두 손으로 무릎을 아프게 쥐었다. 짜증나, 진짜 싫어. 자꾸만 찾아오는 이상한 주황색 머리, 그 녀석 때문에 자꾸만 호쿠토는 생각이 바뀔 것만 같아 화가 났다.
알파든 베타든 오메가든 오메가, 그러니까 자신에게 건네 줄 감정이라는 게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어딘가'는 지금 여기, 손을 뻗으면 닿을 곳? 고개를 젓고 일어섰다. 그것을 믿지 않았고 믿고 싶지 않았고 믿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러길 바라고 있어. 여전히 힘이 들어가지 않는 무릎이 후들후들. 모르는 척 호쿠토는 발걸음을 뗐다.
여기서 둘 다 모르고 있는 사실 하나.
얼어 붙은 새파란 그 빛은, 이미 작은 불꽃과도 같은 타인의 색에 물들어 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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