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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히로아카

[토도바쿠] 너를 잃다

 

"저, 토도로키 군."

"응?"

"…괜찮아?"

 

잔뜩 굳어져서 본의 아니게 딱딱한 말투로 다정한 말을 건네려 하는 이즈쿠와 상반되게 쇼토는 웃으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러자 이즈쿠는 긴장을 풀었으나 걱정스러운 기색은 지우지 않고 쇼토를 가만히 응시했다. 괜찮은 척 하는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진짜 괜찮은 듯한 게 이즈쿠는 마음이 불편했다.

 

「No.2 히어로 엔데버의 아들, 빌런의 습격 받아 개성을 잃어」

 

이 따위의 기사를 봤는데 어떻게 괜찮다고 믿을 수가 있어.

쇼토에게 직접 말을 건 것은 이즈쿠 뿐이었지만 모두 쇼토가 오기 전부터 아무 말 없이 그의 걱정에 잠겨 있었다. 에이지로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그 기사 내용을 곱씹다 조금 울기까지 했다. 에이지로가 황급히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고 츠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쇼토쨩 무지 대단한 개성이었지. 속상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사실 속상함 그 이상의 절망이 쇼토를 휩싸고 있을 거라 츠유는 생각했다. 그래서 쇼토가 뒷문을 드륵 열고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더 이상 그 쪽을 쳐다보지 못했다. 언제나 강했던 친구의 무너짐을 보기 두려웠다. 하지만 쇼토는 웃고 있었다. 평소처럼, 아니 평소보다 조금 더 행복한 듯이.

 

이즈쿠가 자리로 돌아가고 쇼토는 공책을 한 장 찢어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조용한 교실을 볼펜이 직직 그어지는 소리로 채웠다. 선생님이 와도 쇼토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도 쇼토에게 별다른 시선이나 말을 건네지 않았다. 쇼토는 입가에 잔잔히 미소를 걸치고 어느새 반 넘게 빼곡히 글씨로 장식된 종이를 더 채워 나갔다.

고개도 안 들고 그 행위에 열중하던 쇼토는 선생님이 교실 밖으로 나가고 잠시 뒤 천천히 일어섰다. 의자가 드륵거리는 소리, 종이가 사락 접히는 소리. 그리고 쇼토는 교실을 빠져나갔다.

꼿꼿이 앉아 그에게 절대 시선을 주지 않고 있던 카츠키가 그 순간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덜컹이는 소리가 시끄럽게 반 아이들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카츠키는 씨발 씨발 중얼거리며 쇼토의 자취를 따랐다. [엔데버의 아들 토도로키 쇼토는 웅영고 급우 바쿠고 카츠키와 함께였는데…] 같이 있었음에도 지키지 못했음에 대한 죄책감인지 어쩐지 이즈쿠는 그와 비슷한 마음 때문에 카츠키가 쇼토를 따라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말려야 하나 했지만 그냥 두었다. 두 사람, 예전부터 이상하게 통하는 구석이 많았으니까.

 

"야."

"카츠키."

"어디 가냐."

 

교실에서부터 쿵쾅쿵쾅 발소리를 내며 쇼토를 따라가던 카츠키가 교무실 근처에 다다르자 툭 말을 걸었다. 그쪽에는 교무실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만 딱히 대화의 물꼬를 틀 말이 없었다. 쇼토는 기다렸다는 듯 뒤를 돌며 빙그레 웃었다. 눈이 휘어지는 게 참 예뻐서 카츠키는 그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시선을 내리깔았다. 쇼토가 카츠키에게 다가가 뺨을 살살 어루만졌다.

 

"왜 나 안 봐."

 

다시 쇼토를 향한 카츠키의 눈이 어떻게 예전이랑 똑같이 나를 대할 수 있냐고 말했다. 쇼토는 그 말 없는 질문을 못 전해받은 척 손바닥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쥐었다. 울었어? 눈물을 훔친 것이 키리시마 뿐이 아니었는지 충혈된 눈, 티는 안 나지만 여전히 살짝 발간 코끝에 쇼토가 울상을 지었다.

정작 울고 싶은 건 자신이면서 괜찮은 척 남이 우는 거나 신경 쓰고 말야, 진짜 바보인건가. 카츠키는 다시금 코가 시큰거려 입술을 잘근거리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것조차 귀여워 보이는 게 참 중증이라 생각하면서 쇼토는 희미하게 웃으며 소근소근 물었다.

 

"뽀뽀해도 돼?"

"아니."

"그래."

 

카츠키의 뺨을 가볍게 누른 손이 떨어졌다. 카츠키가 그 손이 더 멀어지기 전에 황급히 붙잡았다. 쇼토가 자연스레 깍지를 꼈다. 카츠키가 입술을 달싹이며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렸다. 미안. 니가 왜 미안해. 그런 말 하지 말랬지? 바로 따라오는 짐짓 화난 척 하는 목소리에 카츠키의 고개가 더 숙여졌다.

 

데이트랍시고 무료한 주말 나란히 시내를 걷다 둘은 시민 둘을 인질로 잡고 있던 빌런을 마주쳤다. 그것을 죽이겠답시고 날뛰는 카츠키에게 푹 꺼진 두 눈이 향하기 전에 쇼토는 그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카츠키 대신 그것의 눈빛을 오롯이 받아낸 순간 히어로들이 들이닥쳤다.

뻔했다. 아무것도 없이 빌런을 막겠다고 설친 것이 아님을 알았을 텐데 차분함을 잃지 않고 시선만 건넨 것에서 알 수 있었다. 그 녀석 이레이저 헤드와 같은 개성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마주친 순간 손끝에 느껴진 전율에서 알았다. 이레이저 헤드와는 조금 달랐다. 일부러 개성을 없애 버렸음을 알려 공포에 사로잡히게 했다. 녀석은 그렇게 쇼토의 개성을 없애버리고 히어로들을 피해 사라져 버렸다.

 

'뭐야, 이 시간에.'

 

그 날 새벽, 자고 있던 카츠키는 쇼토의 전화에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집 앞으로 나왔다. 대문 옆에 가만히 기대어 있던 쇼토는 카츠키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양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카츠키. 뭐. 나 개성이 나오지 않아.

 

'…어?'

'개성이 안 나와.'

'왜, 왜? 그럴 리가… 아.'

'그러게. 왜일까.'

 

양 손을 내려다보며 쇼토는 서글프게 웃었다.

 

"울지마."

 

어느 순간 다시 울기 시작했는지 쇼토가 카츠키의 눈가에 입을 맞추었다. 축축한 눈물이 입술에 스몄다. 카츠키가 쇼토의 손을 꽈악 쥐었다. 쇼토가 한 걸음 더 다가가 카츠키의 어깨에 턱을 대었다.

 

"카츠키."

"으, 응."

"나 그만 둘 거야."

 

학교든, 히어로든. 카츠키가 두 걸음 멀어졌다. 쇼토가 몸을 바로 세웠다. 카츠키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야, 안 돼. 방법이 있을 거야. 쇼토가 고개를 저었다. 그 때 빌런은 죽었다. 인질들을 집어 던지고 도망치던 것이 마지막 모습. 쇼토는 이후 기사를 보고 그가 아무것도 보지 않고 달리다 트럭에 치여 즉사했음을 알았다. 일단 방법은 없는 것 같다고, 히어로들도 의사들도 그랬으니까. 그 기사를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따위 말을 듣고 하루종일 눈물을 쏟은 주제에 쇼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하게 말했다.

카츠키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물조차 멎어버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쇼토가 힘이 풀린 손에서 제 손을 조심스레 빼고,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해진 종이를 꺼내 카츠키의 바지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제 바지 주머니 위를 손바닥으로 덮은 카츠키가 시선을 떼지 못하는 제 손을 등 뒤에 숨기고 언제나처럼 웃었다.

 

"종종 연락해 줄 거지?"

"야,"

"그럴 거지?"

 

그의 얼굴이나 목소리나 다정하기 그지 없었으나 단호한 말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카츠키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기쁜 듯 활짝 웃은 쇼토가 뒤를 돌았다. 씩씩하지만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카츠키는 그를 따라가지 못하고 멍하니,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