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임버스
타카미네 미도리는 모리사와 치아키가 싫다. 항상 웃기만 하는 그 뻔뻔한 낯짝이라던가 당연하다는 듯 집 한 구석을 차지하고 신나서 떠들어대는 태도라던가. 운명이고 나발이고 알 바 없으니 제발 좀 귀찮게 하지 말고 꺼지라고 성을 냈을 때 다 안다는 표정으로 손을 잡아오질 않나, 정말 짜증나고 제멋대로인 사람.
타카미네는 잠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떠오르는 그 망나니 같은 얼굴에 진저리 치며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구리게 하루를 시작하는 일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못마땅한 기색을 팍팍 드러내며 타카미네는, 얼른 씻고 그가 쳐들어오기 전 집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며 바닥에 발을 딛었다. 그리고 팔을 뻗어 문고리를 잡아 돌린 순간,
"잘 잤는가, 타카미네!"
타카미네는 이마를 짚었다.
주말이었음에도 모리사와에게 시달리느라, 평일 모리사와 때문에 생긴 피로를 제대로 풀지 못한 타카미네는 졸린 눈을 하고서 집을 나섰다. 벌써 월요일이라니, 죽을까. 여느 학생들과 다름 없는 생각을 하고서 현관문을 밀었을 때, 역시나 익숙한 얼굴이.
"여, 타카미네."
"하아...."
무시당하는 게 일상이라 속상할 것도 없어 모리사와는 제 옆을 스쳐 지나가는 타카미네를 졸졸 따라간다. 타카미네, 간 밤에 좋은 꿈 꾸었는가! 언제나처럼 활기찬 목소리로 모리사와는 안부를 건넸고 타카미네는 귀찮아 죽겠다는 티를 숨기지 않으며 고개를 대충 저었다. 모리사와는 타카미네가 보지 않더라도 늘 웃고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하교할 때도 다를 것은 없었다. 모리사와가 교문 앞에 서 있었고 잠겨 있는 뒷문에 담을 넘을 깡은 없던 타카미네는 결국 오늘도 모리사와와 하교를 같이 한다. 사실은 담을 넘으면 밤새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릴 모리사와에 그러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저번에 한 번 모리사와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싫어 한참을 교실에 숨어 있던 적이 있었다. 한두 시간을 멍하니 앉아 있다 이제는 갔겠지, 싶어 창문 밖을 내다보니 운동장을 돌고 있는 형체 하나. 타카미네는 몇 분 간 또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입술 새로 터지는 한숨.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타카미네는 발을 떼었다. 가방을 메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오, 타카미네! 늦었구나. 주번 일이라도?'
말했으면 도와줬을 거라며 어깨를 팡팡 치는 모리사와의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뭐, 대략 이런 이유로 하교를 함께 하는 일을 피할 수는 없다고. 등교는 몇 시에 나가도 집 앞에 서 있길래 단념한 상태. 타카미네는 그 때 일을 잠시 회상하고는 모리사와를 흘끔 바라보았다. 그 잠깐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모리사와는 웃음을 함뿍 담은 얼굴로 물었다. 무슨 볼 일이라도? 타카미네는 고개를 휙 돌렸다. 잠시 더 느껴지던 눈빛은 곧 거두어진다. 타카미네는 얼른 이 사람 곁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며 걷는 것에 속도를 더했다.
"저기요!"
빨리, 빨리. 얼른 집에 들어서야 이 사람도.
"저어, 잠시만요!"
타카미네는 팔을 억세게 잡아채는 것에 우뚝 멈춘다. 화들짝 놀라 동시에 잡힌 팔을 바라본다. 팔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새까만 머리의 조그만 여학생. 타카미네는 얼굴 한 가득 물음표를 띄운다. 여학생은 숨을 잠시 고르더니 몸을 곧게 펴고, 제가 타카미네를 잡고 있다는 사실에 되려 놀라 후다닥 손을 뗀다. 죄송하다며 연신 허리를 숙이는 이에 타카미네는 손사래 치며 괜찮다는 의사를 전했다. 여학생이 그를 한껏 올려다보며 방글 웃었다. 타카미네가 얼굴을 붉혔다. 그 반응에 그녀는 용기를 얻었는지 눈을 꼭 감고 휴대폰을 내민다.
"버, 번호! 주, 세요."
"에...?"
작아지는 목소리에 타카미네는 눈을 깜빡이며 멍하니 서 있기만 하다 순식간에 귀와 목까지 붉히며 발을 동동 구른다. 나, 나? 저 말임까? 여학생은 눈을 뜨지 않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고 타카미네는 정말 기쁜 듯 환히 웃으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모리사와 쪽이 더 빨랐다.
"...무슨 짓이예여."
"아가씨, 미안한데."
모리사와의 목소리에 여학생은 눈을 떴다. 타카미네가 가져갔을 줄 알았던 휴대폰이 안중에도 없던 이의 손에 들려있자 그녀는 조금 당황한 기색을 띠었다. 노 네임드인가? 대뜸 던져진 질문에 여학생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타카미네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노 네임드인가? 모리사와는 재차 물었다. 여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문이 사라지지 않은 듯 그녀는 조그만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
"다들, 노 네임드 아닌가요?"
모리사와는 묵묵히 팔을 걷었다.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이어지는, 필기체의 영어. 흔치 않은 네임드라 살짝 놀란 눈치. 여학생이 천천히 글자를 읽었다. 타카미네 미도리.
모리사와는 가만히 서 있는 타카미네의, 귀 뒤 머리카락을 걷었다. 그에 가려져 있던 조그만 이름 하나. 키 차이 때문에 여학생이 읽지 못하자 모리사와는 직접 친절하게 목소리를 낸다.
"모리사와 치아키."
"그, 두 분 다 네임드... 시네요."
"내 이름이다. 모리사와."
여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둘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뒤로 주춤주춤 물러난다. 잠시만요! 타카미네의 목소리가 떨어지자마자 여학생은 뒤돌아 달리기 시작한다. 실례했습니다! 그 사과가 거리에 울려 퍼지고 타카미네는 풀썩 주저 앉는다.
어깨에 손이 닿아오자 타카미네는 그것을 빠르게 쳐 내고 다시금 벌떡 일어난다. 모리사와를 똑바로 향한 눈이 경멸과 혐오를 담고 있다. 모리사와는 무시라던가 한심해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그 눈에는 아직도 면역이 되지 못해 입술을 깨물고서 저도 모르게 뒤로 한 발짝 물러난다.
"당신은 왜 그럼까?"
"미안하다."
"처음이었다구여, 이런 거. 나도 여자 아이를 사귀고 싶었어."
언제까지 당신은 날 따라다닐 검까! 운명이란 게 존재하는 세상이란 거, 있을 리 없잖아. 격앙되었던 목소리가 작아지고 타카미네는 톡 건들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모리사와를 쏘아 보았다. 모리사와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시선을 깔고 자그맣게 대꾸했다.
"그, 그렇지만 저 아이가 불쌍하지 않은가. 이러나 저러나 우리는 운명이고."
"운명이란 건 없다고 했잖아여."
떨리는 목소리가 말을 끊는다. 정말 속상한지 물기가 잔뜩이다. 모리사와가 자신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한다는 생각에 서러웠던 건지, 아니면 정말 그 아이가 마음에 들었던 건지. 귀찮으니 알아서 해, 하는 최근의 반응과 상이한 타카미네의 모습에 모리사와 역시 당황했다. 울고 싶은 쪽은 자신이었다. 이렇게나 나는 열심인데 너는 나 따위 안중에도 없구나.
모리사와는 코를 훌쩍이고는 손을 뻗어 타카미네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이번에는 내쳐지지 않았다.
"미안하다."
"......."
"네 말대로 운명이라는 게 없을지도 몰라. 어쩌면 운명이라 생각하는 그 틀에 얽혀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건."
눈물이 터질 것 같아 돌렸던 시선은 다시 모리사와의 눈으로 향한다.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한 적 없으니. 모리사와는 되려 눈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더니 한 마디 덧붙인다.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착각일지 모르겠군. 타카미네는 입술을 살짝 벌렸다 다문다. 모리사와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고,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무언가를 선언하는 듯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하지만 타카미네.
"...네."
"함께하고 싶다."
"......."
"함께하고 싶어, 타카미네. 그것만은 확실해."
그리고 모리사와는 손을 뻗었다. 타카미네의 뺨에 모리사와의 손이 닿았다. 모리사와는 타카미네의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을 닦아내었다. 타카미네는 그제야 자기가 울고 있음을 알았다. 고개를 숙였다.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모리사와가 물었다. 왜 우는 거야. 타카미네는 대답했다. 몰라여.
"집에 갈까."
타카미네는 조용한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손은 놓지 않은 채였다. 요즘 들어 함께 있으면 화끈거리던, 그리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인 그 이름에 타카미네는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와 있다는 사실은 평소보다 나쁘지 않아서, 타카미네는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모르는 척 했다.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두 사람의 마음에서, 무언가 시작되려는 찰나.
타카미네 미도리는 모리사와 치아키가 싫다. 항상 웃기만 하는 그 뻔뻔한 낯짝이라던가 당연하다는 듯 집 한 구석을 차지하고 신나서 떠들어대는 태도라던가. 운명이고 나발이고 알 바 없으니 제발 좀 귀찮게 하지 말고 꺼지라고 성을 냈을 때 다 안다는 표정으로 손을 잡아오질 않나, 정말 짜증나고 제멋대로인 사람.
타카미네는 잠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떠오르는 그 망나니 같은 얼굴에 진저리 치며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구리게 하루를 시작하는 일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못마땅한 기색을 팍팍 드러내며 타카미네는, 얼른 씻고 그가 쳐들어오기 전 집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며 바닥에 발을 딛었다. 그리고 팔을 뻗어 문고리를 잡아 돌린 순간,
"잘 잤는가, 타카미네!"
타카미네는 이마를 짚었다.
주말이었음에도 모리사와에게 시달리느라, 평일 모리사와 때문에 생긴 피로를 제대로 풀지 못한 타카미네는 졸린 눈을 하고서 집을 나섰다. 벌써 월요일이라니, 죽을까. 여느 학생들과 다름 없는 생각을 하고서 현관문을 밀었을 때, 역시나 익숙한 얼굴이.
"여, 타카미네."
"하아...."
무시당하는 게 일상이라 속상할 것도 없어 모리사와는 제 옆을 스쳐 지나가는 타카미네를 졸졸 따라간다. 타카미네, 간 밤에 좋은 꿈 꾸었는가! 언제나처럼 활기찬 목소리로 모리사와는 안부를 건넸고 타카미네는 귀찮아 죽겠다는 티를 숨기지 않으며 고개를 대충 저었다. 모리사와는 타카미네가 보지 않더라도 늘 웃고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하교할 때도 다를 것은 없었다. 모리사와가 교문 앞에 서 있었고 잠겨 있는 뒷문에 담을 넘을 깡은 없던 타카미네는 결국 오늘도 모리사와와 하교를 같이 한다. 사실은 담을 넘으면 밤새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릴 모리사와에 그러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저번에 한 번 모리사와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싫어 한참을 교실에 숨어 있던 적이 있었다. 한두 시간을 멍하니 앉아 있다 이제는 갔겠지, 싶어 창문 밖을 내다보니 운동장을 돌고 있는 형체 하나. 타카미네는 몇 분 간 또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입술 새로 터지는 한숨.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타카미네는 발을 떼었다. 가방을 메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오, 타카미네! 늦었구나. 주번 일이라도?'
말했으면 도와줬을 거라며 어깨를 팡팡 치는 모리사와의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뭐, 대략 이런 이유로 하교를 함께 하는 일을 피할 수는 없다고. 등교는 몇 시에 나가도 집 앞에 서 있길래 단념한 상태. 타카미네는 그 때 일을 잠시 회상하고는 모리사와를 흘끔 바라보았다. 그 잠깐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모리사와는 웃음을 함뿍 담은 얼굴로 물었다. 무슨 볼 일이라도? 타카미네는 고개를 휙 돌렸다. 잠시 더 느껴지던 눈빛은 곧 거두어진다. 타카미네는 얼른 이 사람 곁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며 걷는 것에 속도를 더했다.
"저기요!"
빨리, 빨리. 얼른 집에 들어서야 이 사람도.
"저어, 잠시만요!"
타카미네는 팔을 억세게 잡아채는 것에 우뚝 멈춘다. 화들짝 놀라 동시에 잡힌 팔을 바라본다. 팔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새까만 머리의 조그만 여학생. 타카미네는 얼굴 한 가득 물음표를 띄운다. 여학생은 숨을 잠시 고르더니 몸을 곧게 펴고, 제가 타카미네를 잡고 있다는 사실에 되려 놀라 후다닥 손을 뗀다. 죄송하다며 연신 허리를 숙이는 이에 타카미네는 손사래 치며 괜찮다는 의사를 전했다. 여학생이 그를 한껏 올려다보며 방글 웃었다. 타카미네가 얼굴을 붉혔다. 그 반응에 그녀는 용기를 얻었는지 눈을 꼭 감고 휴대폰을 내민다.
"버, 번호! 주, 세요."
"에...?"
작아지는 목소리에 타카미네는 눈을 깜빡이며 멍하니 서 있기만 하다 순식간에 귀와 목까지 붉히며 발을 동동 구른다. 나, 나? 저 말임까? 여학생은 눈을 뜨지 않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고 타카미네는 정말 기쁜 듯 환히 웃으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모리사와 쪽이 더 빨랐다.
"...무슨 짓이예여."
"아가씨, 미안한데."
모리사와의 목소리에 여학생은 눈을 떴다. 타카미네가 가져갔을 줄 알았던 휴대폰이 안중에도 없던 이의 손에 들려있자 그녀는 조금 당황한 기색을 띠었다. 노 네임드인가? 대뜸 던져진 질문에 여학생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타카미네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노 네임드인가? 모리사와는 재차 물었다. 여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문이 사라지지 않은 듯 그녀는 조그만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
"다들, 노 네임드 아닌가요?"
모리사와는 묵묵히 팔을 걷었다.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이어지는, 필기체의 영어. 흔치 않은 네임드라 살짝 놀란 눈치. 여학생이 천천히 글자를 읽었다. 타카미네 미도리.
모리사와는 가만히 서 있는 타카미네의, 귀 뒤 머리카락을 걷었다. 그에 가려져 있던 조그만 이름 하나. 키 차이 때문에 여학생이 읽지 못하자 모리사와는 직접 친절하게 목소리를 낸다.
"모리사와 치아키."
"그, 두 분 다 네임드... 시네요."
"내 이름이다. 모리사와."
여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둘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뒤로 주춤주춤 물러난다. 잠시만요! 타카미네의 목소리가 떨어지자마자 여학생은 뒤돌아 달리기 시작한다. 실례했습니다! 그 사과가 거리에 울려 퍼지고 타카미네는 풀썩 주저 앉는다.
어깨에 손이 닿아오자 타카미네는 그것을 빠르게 쳐 내고 다시금 벌떡 일어난다. 모리사와를 똑바로 향한 눈이 경멸과 혐오를 담고 있다. 모리사와는 무시라던가 한심해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그 눈에는 아직도 면역이 되지 못해 입술을 깨물고서 저도 모르게 뒤로 한 발짝 물러난다.
"당신은 왜 그럼까?"
"미안하다."
"처음이었다구여, 이런 거. 나도 여자 아이를 사귀고 싶었어."
언제까지 당신은 날 따라다닐 검까! 운명이란 게 존재하는 세상이란 거, 있을 리 없잖아. 격앙되었던 목소리가 작아지고 타카미네는 톡 건들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모리사와를 쏘아 보았다. 모리사와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시선을 깔고 자그맣게 대꾸했다.
"그, 그렇지만 저 아이가 불쌍하지 않은가. 이러나 저러나 우리는 운명이고."
"운명이란 건 없다고 했잖아여."
떨리는 목소리가 말을 끊는다. 정말 속상한지 물기가 잔뜩이다. 모리사와가 자신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한다는 생각에 서러웠던 건지, 아니면 정말 그 아이가 마음에 들었던 건지. 귀찮으니 알아서 해, 하는 최근의 반응과 상이한 타카미네의 모습에 모리사와 역시 당황했다. 울고 싶은 쪽은 자신이었다. 이렇게나 나는 열심인데 너는 나 따위 안중에도 없구나.
모리사와는 코를 훌쩍이고는 손을 뻗어 타카미네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이번에는 내쳐지지 않았다.
"미안하다."
"......."
"네 말대로 운명이라는 게 없을지도 몰라. 어쩌면 운명이라 생각하는 그 틀에 얽혀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건."
눈물이 터질 것 같아 돌렸던 시선은 다시 모리사와의 눈으로 향한다.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한 적 없으니. 모리사와는 되려 눈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더니 한 마디 덧붙인다.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착각일지 모르겠군. 타카미네는 입술을 살짝 벌렸다 다문다. 모리사와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고,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무언가를 선언하는 듯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하지만 타카미네.
"...네."
"함께하고 싶다."
"......."
"함께하고 싶어, 타카미네. 그것만은 확실해."
그리고 모리사와는 손을 뻗었다. 타카미네의 뺨에 모리사와의 손이 닿았다. 모리사와는 타카미네의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을 닦아내었다. 타카미네는 그제야 자기가 울고 있음을 알았다. 고개를 숙였다.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모리사와가 물었다. 왜 우는 거야. 타카미네는 대답했다. 몰라여.
"집에 갈까."
타카미네는 조용한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손은 놓지 않은 채였다. 요즘 들어 함께 있으면 화끈거리던, 그리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인 그 이름에 타카미네는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와 있다는 사실은 평소보다 나쁘지 않아서, 타카미네는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모르는 척 했다.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두 사람의 마음에서, 무언가 시작되려는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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