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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온첸] 릴리스

이병재는 김하온이 릴리스의 떨어져나간 영혼 쪼가리에 잡아먹힌 새끼라고 말했다. 릴리스는 아담을 떠났으니 너도 나를 떠날 거지, 몸을 반쯤 일으키면 둥근 어깨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이불을 끌어올리며 이병재가 농을 걸었다. 김하온은 전라의 연인을 이불로 감싸며 너털웃음을 짓고 만다.

 

 

릴리스

 

관장하는 클럽에서 이병재를 만난 게 김하온 인생에 득인지 실인지 따질 겨를 없이 감겼다. 시선이 관통하고, 속내가 까발려지고, 이병재는 김하온을 홀라당 잡아먹었다. 육체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김하온은 자아를 잃었다. 감겼다니 말이 필요 없지. 안쪽에 죄다 이병재만 묻어나 김하온은 숨넘어가는 사람 앞에서도 지 남자친구 생각하면서 귀 빨개질 때까지 빠개기만 했다. 니는 요 새끼 뒈지는 앞에서 왜 글케 웃냐? , 그르게요. 김하온은 가볍게 대꾸했다. 그거 물어본 놈 좆나 알 바 아니고요. 말 걸고 툭툭 치고 약 빨러 가자 꼬시는 애들 무시 깐 김하온은 아이 깨끗해 두 번 짜서 손 씻은 다음에 이병재 만나러 갔다. 처음에는 잘 보이고 싶어서 왁스 듬뿍 발라서 머리 싹 넘겨도 봤는데 지금은 안 그런다. 이병재가 넌 북실북실한 게 개새끼 같고 맘에 든다고 해서 바로 머리 세면대에 처박았다.

김하온이 조폭 나부랭이라는 걸 안 이병재가 물었다. 넌 왜 머리 빡빡 안 깎아? 김하온이 이병재 어깨를 물었다. 개새끼 하고 이병재가 부르면 짖으면서 달려올 준비가 돼 있는 놈이라 그런지 자주 개처럼 굴었다. 병재가 이 머리 좋다며. 이병재가 김하온 머리를 손바닥으로 꾸욱 눌러 밀었다. 내가 그랬나? , 그랬어. 이병재 허리를 껴안고서 김하온이 목에 얼굴을 부볐다. 병재야, 예뻐해 줘. 빨아달라는 소리였다. 씨발놈아, 또 세우지 마. 걔네 병재는 욕도 참 잘했다. 김하온한테 배웠다. 김하온이 사람 죽이는 자리에 이병재를 데려갔다.

 

야아, 넌 무조건 지옥 가겠다. 구석에 있는 높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달랑거린다. 이병재 혼자 동화 속에 있는 마냥 천진한 목소리다. 뺨에 튄 피 손가락으로 문질러 닦으면서 김하온이 웃었다. 이병재 옆에 있으면 김하온의 세계도 동화였다. 난 너랑 천국 갈래, 병재야.

잘못을 인지하지 못 하는 새끼는 지옥에도 가지 않는다는 소리가 있다. 열다섯의 김하온 데리고 왔던 똘마니 아저씨가 말했다. 그니까 사람 죽이면서 양심이란 것도 죽여야 해. 지옥 가면 좆나게 아프잖어. 김하온은 말 잘 듣는 어린애였다. 여전히 김하온은 자기 뇌가 일부분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양심의 자리다.

 

근데.

.

넌 진짜 지옥 갈 것 같애.

?

허리 아파.

 

이병재가 손끝으로 김하온의 얼굴을 눌렀다. 이마, , , 윗입술, 그리고 아랫입술에 멈춘 검지가 입술을 눌렀다. 입이 벌어진다. 그 새로 병재야, 하는 부름 들려온다. 김하온은 말하는 인형처럼 이병재랑 있을 때면 그 말만 반복했다.

칠대 죄악 있지. ‘으응.’ 너는 색욕으로 쪄죽을 거야. 죽고 나서 또 죽고 또 죽고 또 죽을 거야. ‘?’ 너 전갈 닮았어. 그냥 힘들었다고 말하면 되는데 자존심 세우느라 이병재는 밑도 끝도 없이 저주만 퍼붓고 김하온은 그래도 좋단다. 열기가 덜 가셔 발그레한 볼 제 두 손으로 덮어 식혀주면서 김하온이 대답했다. 그런 다음에는 네가 있는 천국으로 갈 수 있어? 이병재는 픽픽 새는 웃음 내버려두고서 눈을 감았다. 난 천국 안 가.

 

김하온은 잠든 이병재 옆에서 휴대폰을 했다. 자기 것도 있는데 꼭 이병재 걸로 했다. 비밀번호는 이병재가 처음 가오리를 본 날이라고 했다. 병재는 다시 태어나면 가오리가 되고 싶을까? 이병재는 동화 속 인물이니까 동화가 끝난 뒤는 생각하지 않는다. 삶의 종결 이후의 이병재는 없다. 암흑이다. 김하온은 그 말을 들으면 운다. 엉엉 운다. 그리고 까먹는다. 이병재는 그래서 김하온한테 그 얘기를 더 하지 않는다. 김하온은 바보니까 그래야 했다.

인터넷 창을 열었다. 키패드 두드리는 손놀림이 서툴다. 김하온은 이병재한테 전화하는 걸 좋아했다. 이병재를 기다리게 하기 싫다는 게 하나, 목소리가 매번 듣고 싶다는 게 둘. 문자 보내는 게 어려웠다. 처음에는 전갈을 봤다. 그리고 거울을 봤다. 휴대폰 화면과 거울을 번갈아 보면서 내가 좀 닮았나 생각했다. 김하온은 자기가 좀 더 낫다고 결론 내리고는 한 번 더 검색했다. 릴리스, 하고 쳤다. 촘촘하게 박힌 휴대폰 상의 글씨를 읽었다. 끝까지 읽어 내린 눈이 웃는다. 만족이었다. 김하온이 읽은 릴리스는 이병재였다. 이병재는 언제든 저를 쥔 김하온 손목을 끊어버리고 달아날 수 있었다. 김하온의 몸뚱어리는 나무뿌리가 된 된 이병재에게 감겨 있는데.

 

휴대폰 화면 끄지도 않고 대충 내버려둔 다음에 이병재를 이불 채로 끌어안았다. 항상 그런다고 이병재한테 혼나지만 김하온은 매번 그런다. 뇌가 녹아내린 탓이라고 항변하면 이병재가 잔소리를 멈춰서 고칠 생각 안 했다.

팔에 힘주어 단단히 품에 가두고 김하온은 중얼댔다. 어떡해, 병재야. 병재 너 큰일 났다. 잠자는 이병재 듣지도 못 하는데 한참 놀려먹다가 기분 좋게 웃는다. 다행이다, 병재랑 나는 같은 지옥에 간다. 이병재는 김하온을 색욕의 상징으로만 표면적으로 지칭했으나 김하온이 본 릴리스는 종속되지 않은 자유의 존재였다. 이병재 손 찾아 꾸물대다 손가락을 얽었다. 너는 네 릴리스의 릴리스야. 새벽 감긴 눈꺼풀 뒤에서 김하온이 쓴 이병재 동화의 엔딩은 결국 지옥에서마저 키스하는 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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