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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온첸] 개와 분홍

미친 개새끼요, 양아치 새끼요, 다 받고 씨발새끼까지. 미간 좁힌 채 손가락 하나하나 접어가면서 세어가던 남자는 참으로 이상하다는 듯 그 손 쫙 펴고 뒷머리나 벅벅 긁었다. 근데, 어차피 다 아는 소릴 왜 또 하십니까? 이 동네 김 사장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구석에 숨어 쑥덕거리는 놈들 발견한 이로한이 뒷얘기 동조하는 척 구부정하게 서서 고개 까닥이다가 하는 말이었다. 호박씨 다 깠고 흥미 잃었는지 이로한 세워둔 오토바이 쪽으로 휘적휘적 걸어간다.

김 사장이 어제 뭔 짓거리 했는지 몰라서 그래? 나이 처먹을 만큼 먹어서 동네 대장 노릇 하고 싶어 했다가 김 사장한테 밀려 갖고 찔찔거리는 남정네가 분에 겨운 목소리로 묻는다. 화제의 중심에 자기가 서고 싶은데 고게 안 되니까 서러우신 모양이지. 청룡반점이라고 노란색으로 커다랗게 적힌 적색 오토바이에 다리 하나만 걸치고 고개만 틀어 구시렁대기를, 김 사장님 악명 높은 거 모르는 놈이 이 동네에 있겠습니까. 김 사장 잘못 피했다가 대갈통 날아가기 십상이라는 거 이 동네 짬밥 좆도 안 돼도 알지.

 

김 사장이 어제 울 뒷집 애새끼 뒈질나게 팼담서요.

다음은 그짝이 될지도 모르는데 태평한 소리만 할 거냔 말이지.

그 아저씨 저 못 건드립니다.

 

이로한은 호탕하게 웃었다. 세상에서 제일 인복 없는 새끼라고 스스로 지칭했음에도 지금만큼은 이복형의 존재가 꽤 반가웠다. 꼰대들 면상 구겨지는 꼴이 이로한은 제일 재밌었다. 이 좆만한 동네, 컴퓨터 한 번 쓰려면 이장님 찾아가서 몇 분 아양 떨어야 검색 하나 할 수 있는 썩은 동네에서 이로한이 재미 볼 수 있는 건 딱 두 개였다. 누워 있는 이병재 엉덩이 밟고 지나가기, 그리고,

 

병재야.

, 쫌 꺼지라고.

병재야, 내가 진짜 잘못했다.

 

멍청한 김 사장 구경하기. 분홍다방 새로운 아르바이트생 커피를 기가 막히게 끓인다는 엉덩이 빵빵한 청년의 이복동생 이로한은, 형에게 꽂혀서 안달복달하는 미친개를 퍽 좋아하는 편이었다.

 

형아야, 우리 돈 읎어 갖고 어떻게 사냐?

랩이나 할까.

농담 따먹다가 흙 퍼먹고 사는 수가 있다.

염병할 새끼가.

 

애비가 죽었다. 술 처먹고 휘청대다가 가로등에 대가리 박고 엎어져 있는데 뺑소니 당해서 훅 가셨단다. 그 인간은 알코올이랑 같이 뒈질 줄 알았지. 평온한 형 목소리에 이로한은 낄낄대며 웃었다. 울 형은 인정머리라고는 좆도 없으시네. 이병재는 지가 이 씨인 게 개빡친다고 말했다. 쓸모라고는 비료 푸는 데도 없는 이복동생 말고는 해준 일이라고는 세상에 나오도록 씨를 처뿌렸다는 것밖에 없는 주제에 장례식 따위로 사람 귀찮게 만드는 애비의 성씨 따위를 갖고 살기 싫댔다. 형아야, 형은 결혼해도 성씨 못 바꾼다. 로한은 입 밖으로 내뱉은 단어의 개수만큼 맞았다. 좆도 안 아팠다. 그날의 이병재는 이틀을 내리 굶어서 종잇장처럼 팔랑댔다. 이로한이 이병재 손목을 잡아 쥐었다.

 

뭔 화석이세요? 뼈밖에 없게.

짜장면 사줘.

 

그래서 이로한이 거기서 일을 하는 거다. 이병재가 짜장면을 좋아해서.

결국은 둘이서 장례식을 하기는 했는데 아무도 안 왔다. 이야, 이 아저씨 진정한 왕따가 따로 없네 그려. 상복을 입은 이로한이 이죽거렸고 이병재는 하품을 했다. 애새끼 둘 두고 제 삶 찾아 떠난 여자 두 명 안 올 거 알긴 했는데 올 만한 사람은 또 둘밖에 없었다. 걍 오지 말고 행복하십쇼, 이로한이 생각했다. 둘 다 엄마라는 사람에 대한 생각 별로 없었다. 얘네는 애비가 끔찍하게 싫어서 그 사람들 이해했다. 난 저 인간이 씨 뿌려서 태어난 게 내 인생의 수친데 그 여자들은 또 어떻겠냐? 이병재가 말하면 이로한은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팔자 좋게 동정 따위를 했었다. 암튼 좆나게 파리 날리는 장례식이었다. 접기 직전에 두 명 오긴 했다. 도박판 벌려놓고 훅 갔다고 손가락질 하며 낄낄거리더니 육개장 퍼먹고 갔다. 차라리 파리가 백 마리 오는 게 나을 뻔했다.

이병재랑 이로한은 짐 싸서 서울을 떴다. 돈 없는 애들한테 서울은 사치다. 방 빼고 애비 물건 어떻게 잘 팔아넘기고 하다 보니까 깡 시골에서 방 하나 구할 돈은 손에 잡혔다. 이병재가 이로한 팔에 찰싹 붙어서 말했다. 짜장면 먹고 싶어. 이병재 짜장면 존나 좋아한다. 짜장면 사주면 물같이 마실 것처럼 짜장면 타령을 했다. 둘은 기차를 타고 한참 가서 논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 시골에서 내렸다. 십 분 걸었다. 허름한 버스 정류장이 눈에 보였다. 그 반대편에 짜장면집이 있었다. 청룡반점. 이로한은 한자급수를 7급까지 땄었는데 한자를 하나도 못 읽었고 간판은 이병재가 읽었다.

둘은 거기서 짜장면을 먹었다. 그렇게 맛없는 짜장면은 처음 먹었다. 근데 이병재가 너무 맛있다고 화를 냈다. 이렇게 맛있는 짜장면을 왜 여기서만 처팔고 지랄이야! 이병재가 격하게 화를 내는 사이 이로한은 유리창에 찰싹 붙은 구인 종이를 봤다. 거기서 아르바이트생을 구했다. 너덜거리는 종이 들고 주인장한테 갔다. 얼굴 보자마자 합격 당했다. 이로한은 배달부가 됐다. 아주 작은 흠이 하나 있다면 무면허 라이더라는 거 정도.

 

미친 새끼, 면허도 없는 게.

에휴, 이병재 씨가 짜장면만 덜 좋아했어도.

남 탓 좆까시길.

, .

 

이로한은 좆을 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닥쳤다. 주인장은 면허가 없다는 말에 내가 가르쳐주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불법인디요. 이로한은 굳이 태클을 걸지 않았다. 이병재랑 이로한은 작은 방을 하나 구했는데 서울에 있는 방보다 깨끗했다. 거미가 존나 많은 거 빼고 다 좋았다. 이병재는 벌레 싫어해서 거미 나올 때마다 이로한한테 전화했다. 거미 잡아줘. 그럼 이로한은 거미 잡으러 오토바이 몰고 집으로 갔다. 어차피 주문도 안 들어와서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해 져서 돌아와도 별일 없었을 거다.

여기 자리 잡은 지 사흘 됐을 때 이로한은 모든 동네 사람들과 시시덕거리면서 말을 나눌 정도로 친해졌고 이병재는 이로한한테 거미 잡아달라고 전화하지 않게 됐다. 이병재가 거미에 익숙해졌다거나 거미 잡는 법을 알아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경우의 수는 하나밖에 없다. 거미 잡을 꼬붕이 생겼다는 거였다. 이름 김하온 통칭 김 사장, 분홍다방 한 번 갔다가 인생 말아먹으신 분. 이로한은 김 사장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재밌어했다. 김 사장은 이로한한테 잘 보이려고 가끔 게임기나 이런 걸 갖다 줬다. 게임에 흥미 잘 못 붙여서 뿅뿅거리다가 방구석에 쌓아뒀다. 호의를 맘에 품을게요, 형씨.

 

분홍다방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다방인데 오늘이 이 형제가 내려온 지 삼십칠 일 됐으니까, 거기는 삼십오 일 쯤 된 곳이다. 신장개업하니까 일손 부족해서 길 가던 이병재 캐스팅하셨고 이병재 씨 돈 벌고 싶어서 오케이 했고. 이 동네 주름잡는 김 사장님 새로 생긴 가게 안 가볼 수 없으니 한 번 갔는데 갔다가 응딩이 씰룩이면서 커피 내리는 이병재한테 완전히 코 꿰였고. 얼굴 보고 반할 정돈 아니지 않어? 쫌 보려고 얼굴 가까이 들이 밀었다가 뺨 한 대 맞았다. 나만 맞는 거 아니고 김 사장도 맞으니까 섭섭하거나 그렇지는 않다. 글고 나보다 김 사장이 더 많이 맞는다.

 

형씨.

.

기운이 없어 뵌다.

병재가아, 존나 화가 났다. 그냥도 아니고 존나.

 

그거 김 사장이 이병재 아끼는 동생 줘패서 그렇잖어. 이로한은 답을 알았지만 굳이 알려주진 않았다. 말해봤자 김하온 이해 못 한다. 사람들이 얘를 왜 미친개라고 부르냐면, 미쳤으니까 미친개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 원래는 수틀리면 팼는데 요즘은 이병재 건드리면 팬다. 근까 이병재 건들리면 수틀린다는 소리다. 근데 좀 팰 만도 하다. 이병재 아끼는 동생이 이병재한테 키스했다. 김하온이 이병재 따라다닌 지 삼십 하고도 며칠이 더 됐는데 뽀뽀만 수줍게 조졌다고 하더만, 설왕설래 하는 고 키스를 우리 뒷집 애새끼가 멋대로 먼저 해버렸다는데 열 뻗치지 않을 수가 있나. 이병재도 놀라 갖고 잠깐 가만히 있던 거지 김 사장이 안 봤으면 지가 먼저 뚜들겨 팼을 거다. 김 사장이 지나치게 패서 문제인 거고.

양아치 새끼 김하온이 이병재한테 흑심으로 접근한 애새끼 다리를 부러뜨려 놨다. 하도 다져버려서 엑스레이에 잡힌 형체가 어쩌고 얘기하다가 이병재가 구역질을 했다. 보기와는 다르게 비위가 약한 뭐 그런 체질인가 이렇게 생각을 하던 찰나 옆으로 바퀴벌레가 지나가는 걸 봤다. 이병재는 벌레 빼고 다 잘 버텼다.

 

근데 이병재 씨, 화나서 돌아버릴 일은 아니지 않나요.

그렇지.

그렇지?

놀라서 존나 화냈는데 사실 안 화났으면 이상하니까.

 

이상한 김 사장은 더 이상한 이병재 때문에 맘고생이 심하시다. 축 처진 김 사장 보고 와서 밤에 뒹굴거리는 이병재 발로 툭툭 밀면서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 너무 하찮아서 이로한은 코웃음 쳤다. 형은 김 사장이 좋아하는 와꾸만 아녔어도 이미 저세상 갔겠다. 걘 그냥 내가 좋다는데. 어련하시겠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벨소리가 울렸다. 이병재 폰이었다. 존나 뭐, 날아가는 붕붕인지 꼬마 자동차도 아니고 하여튼 그런 노래였다. 김 사장이 선물한 벨소리라고 했다.

 

. . 싫어. 아니. …… 그래.

 

그리고 이병재는 전화를 끊더니 나갈 채비를 했다. 김 사장? 이병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막 만진다. 뭐 하냐? 오늘 키스할 것 같애. 과자 씹던 이로한 턱이 멈춘다. 씨발, 나는 알고 싶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돌아온 이병재 얼굴은 상기돼 있었고 팔에는 큰 박스가 들려 있었는데 김 사장이 딸기를 존나 많이 사왔다고 했다. 하나만 달라고 손 뻗었더니 손등을 찰싹 맞았다. 키스는 했수? 물어보니 그걸 니가 알아서 뭐 하냐고 화를 냈다. 염병할 이병재. 이로한 잠 잘 자리 딸기 상자한테 빼앗겨서 몸 최대한 웅크려서 잤다. 이로한은 그날 밤 딸기 옷을 입은 김 사장과 이복형이 키스하는 꿈을 꿨다. 이로한은 일어나 토하고 싶어서 화장실에 갔는데 구역질도 안 나왔다. 처음으로 이로한은 김 사장이 이병재 안 좋아하고 그냥 개새끼로 남아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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