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D/히로아카

[데쿠캇] 금요일의 아침 인사

* 무개성 학원물

* 후배 X 선배

 

 

안녕이라는 말을 연습해보고, 머리손질도 확실히 OK.

금요일엔 힘내야만 해, 왜냐면 이틀이나 만나지 못하니까. ¹

 

앞으로 향하는 뻣뻣한 발걸음 뒤에는 두 명의 응원이 따라붙는다. 데쿠 군, 힘내! 미도리야 군, 자네는 할 수 있다. 속삭임과 같은 음성이었고 소란스러운 등굣길에 서 있음에도, 제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까지 그 목소리들이 닿을까 전전긍긍해 하는 표정으로 뒤를 휙 돌아본 이가 입술에 검지 손가락 댄다. , 쉬잇. 그의 뒤를 멀리서 종종 따라오던 두 사람이 동시에 헙, 하고 입을 막는다. 그제야 안심해서 둘을 향했던 시선은 다시 앞으로 돌아간다.

걸음이 생각보다 느린 그 남자와의 거리는 이제 1m 남짓. 미도리야의 걸음에 속도가 붙는다. 빨간 운동화가 터벅거리는 소리도 내지 않고(발꿈치를 잔뜩 들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뒤를 쫓던 남자에게 다가간다. 한 마디만 하면 되는 거야. 안녕하세요. 중얼거리면서 남자를 부르기 전에 미리 연습해보려 왼쪽 팔을 드는데 모양새가 직각이다. 편하게 하라니까. 미도리야의 뒤에 있던 여학생이 안타까운 투로 중얼거렸다. 미도리야의 뒤에 있던 남학생은 저 자세가 왜 여학생에게 걱정을 받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안녕하세요, 하면 돼. 안녕하세요. , 히익!”

 

습관처럼 땅에 처박은 눈길을 슬쩍 위로 올렸을 때 남자와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걷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백스텝을 두 번 정도 밟은 미도리야가 숨을 고르고, 드디어 인사라는 걸 해보려고 입을 열었을 때.

 

…….”

…….”

 

고개를 반쯤 틀어 제 쪽을 바라본 남자 덕에 용기를 전부 잃어버린 미도리야는 결국 어제처럼, 그리고 그제처럼, 또 그 전날처럼 질주해 남자를 앞지르고 만다.

 

 

 

금요일의 아침 인사

 

데쿠 군, 바보야?”

, , 아니, 그건 아닌데.”

 

미도리야가 그 남자를 앞지른 순간 후다닥 달려가 똑같이 남자를 추월하고는, 교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그 초록 머리를 한참이나 노려보던 우라라카가 미도리야의 책상을 팡 내리쳤다. 가방을 책상 걸이에 걸던 미도리야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황급히 저어댔지만 우라라카의 표정은 풀릴 기색 없이 오히려 더 구겨진다. 일주일도 넘게 훈련했건만 며칠 동안 성과를 하나도 보이지 않는 미도리야에 그의 (나름) 스승인 우라라카는 속이 터질 지경인 거다. 옆에 서 있던 이이다도 팔짱을 턱 끼고는 안경을 치켜 올렸다. 미도리야 군, 한심한 모습을 보이는 건 사나이답지 않다! 미도리야의 어깨가 축 처진다. 누구보다 속상할 사람은 미도리야임을 알기에 우라라카는 날을 세웠던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미도리야의 어깨를 토닥인다.

 

괜찮아, 데쿠 군.”

우라라카 양.”

의외로 그 선배가 멍청하고 쑥맥인 후배 취향일지 어떻게 알아? 용기를 가져.”

 

파이팅! 주먹까지 꽉 쥐어 보이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우라라카에, 미도리야가 초점 없는 눈으로 허허 웃으며 고개를 힘없이 주억거렸다. 난 정말 가망이 없나 보네.

 

미도리야 이즈쿠가 아침마다 꼬불거리는 머리를 눌러대면서 차분해지라고 주문을 외게 된 것은 정확히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이것은 무려 한 달 동안이나 뒤에서 꼼지락거리는 것 말고 미도리야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음을 알려주는 말이기도 했다.

물론 노력은 많이 했다. 우라라카와 이이다를 붙잡고 처음 말 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강의를 해달라고 울고불고 매달린 끝에 인사하는 법을 처음부터 배웠고, 피부라도 더 뽀송해져야 첫인상도 좋아질 것 같아서 엄마에게 쭈뼛거리면서 부탁해 일주일에 세 번 팩을 하기도 했다. 미도리야의 엄마는 미도리야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냐고 물으며 눈물을 훔쳤지만 미도리야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니, 엄마. 길 가다가 마주친 남자 선배를 짝사랑하게 됐어요. 그 말을 했다간 엄마는 다 이해한다며 얼마나 힘들었냐고 두 배로 많은 눈물을 흘릴 게 분명하기 때문에 미도리야는 얌전히 팩을 붙이고 누워만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결실을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도리야뿐만 아니라 그를 도와주려고 열심히 바람도 잡아보고 그 선배에 대한 정보를 캐내 온 친구들에게도 안타까움을 한껏 안겨주었다. 선배의 이름을 불러보라면서 바쿠고라고 그 선배의 친구가 부르는 목소리를 엿듣고 온 카미나리는 미도리야가 인사를 건네지 못했음을 알고 자기가 이름을 불러주겠다고 발을 굴러댔다. 차를 타고 가다 우연히 바쿠고의 집을 알게 된(“토도로키, 정말 우연인 거냐?” 카미나리는 믿지 못하는 얼굴을 했다) 토도로키는 미도리야에게 그 앞에서 이벤트라도 하라고 제 카드를 꺼내 쥐여 줄 기세로 말했지만 미도리야가 고개를 마구마구 저어대 아쉽다는 표정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알아낸 정보를 미도리야는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거다. 스토커는 아니지만 하여튼 그랬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미도리야에게 남은 것은 선배 안녕하세요 미도리야 이즈쿠입니다 하고 우렁차게 인사해서 그 바쿠고라는 선배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었다. 아마 그 이후 친해지는 것도 우라라카의 말대로 쑥맥인 미도리야에게는 고비였겠지만 그것은 일단 지금 가장 큰 관문인 인사를 통과하고 나서 생각할 문제였다. 매일 아침 미도리야는 바쿠고의 등굣길을 졸졸 쫓아다녔다. 절대 스토커는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등교 시간도 알아버린 미도리야는 일부러 그 시간에 맞춰 등교를 했다. 그 모습이 궁금하다고 며칠 동안 미도리야와 같은 시간대에 등교한 카미나리는, 저 선배가 미도리야를 스토킹으로 신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용하다고 혀를 찼었다. 어서 인사하지 않으면 정말 신고 당할지도 모른다고 카미나리가 엉덩이를 뻥뻥 차도 미도리야는 바쿠고와 일정 거리를 유지했고 늘 인사에 실패했다. 그리고 교실에 와서 눈물을 찔끔거렸다. 난 왜 이렇게 멍청한 거야.

미도리야가 다른 날보다 오늘 더 절망하는 이유는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데 있었다. 이제 주말 내내 캇쨩 선배(혼자만의 애칭이었다)를 보지 못할 텐데 오늘까지 인사를 못하다니. 난 바보 멍청이야. 바보. 바보. 바보! 미도리야는 대뜸 숟가락을 내던지고 제 머리를 죽어라 쥐어뜯었고 옆에서 밥을 먹던 그 누구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뭐 때문에 저러는지도 알았으며 저런 습관성 자학은 놔두는 게 낫다고 저들끼리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오늘 선배 반에 가서 인사하면 되잖아.”

, , , 그걸 어떻게 해애!”

내가 그 선배의 반을 알아오겠다, 미도리야 군을 위해서!”

그건 이미 알고 있어, 이이다 군!”

 

그럴 줄 알았다고 둘 모두 다시 급식판에 시선을 돌린다. 미도리야는 바쿠고의 반에 가서 바쿠고 선배 안녕하십니까 하고 큰 소리로 인사하는 제 모습을 떠올리고 시뻘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이건 진짜 안 돼. 이건 진짜 말도 안 돼. 내가 어떻게 감히 선배의 반에! 미도리야 군, 밥이나 먹어. . 미도리야는 단호한 우라라카의 말에 평정을 되찾고 급식을 마저 먹었다.

 

하지만 그 때뿐이었다. 미도리야가 평온한 마음으로 존재할 수 있던 것은 말이다.

하교 시간이 다가올수록 미도리야는 물을 잔뜩 끼얹은 김처럼 축 처졌다. 선배를 48시간 넘게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미도리야는 점점 삶의 이유를 잃는 듯했다. 급우들은 친절하게도 미도리야가 창문을 흘끔거릴 때면 그의 사지를 결박했다. 뛰어내리면 안 돼, 미도리야! 눈물을 글썽이던 카미나리의 외침에 미도리야는 영혼 없이 웃었다. 뛰어내릴 마음 하나도 없어, 카미나리 군. 그 기운 없는 목소리가 전하는 말에는 신빙성이 없어 모두가 마음으로 울었다.

수업 종이 쳐 다들 미도리야를 주시하면서 제 자리로 돌아갈 때, 미도리야는 그 부담스러운 시선들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기력이 없어 책상에 흐느적거리며 엎어졌다. 하교 시간에 선배를 만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기다렸다가 따라가면 진짜 진짜로 스토커 같겠지? 하교하고 나서의 평화로운 선배의 일상에 나 같은 게 끼어들면 안 되겠지? 미도리야는 점점 땅굴을 팠고 막 눈물을 짜내려던 찰나에 선생님이 들어왔다. 미도리야가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그래도 수업은 들어야지. 프린팅 된 글자들이 안 보일 정도로 캇쨩 선배를 잔뜩 써둔 제 교과서를 펴내며 미도리야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미도리야 군, 기운을 내도록 해.”

그래, 데쿠 쿤. 오늘만이 날인 건 아니잖아?”

주말.”

…….”

…….”

 

결국 찾아와 버린 하교 시간의 미도리야는 한숨으로 땅을 꺼뜨리는 대신 제가 땅 속으로 스며들 것처럼 흐물거렸다. 아침에 잠시 뒤통수를 쳐다보고 하루의 반 정도 한 건물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뻤는데 주말에는, 무려 이틀 동안이나 그런 소소한 행복마저 누리지 못한다는 게 미도리야에게는 너무 가혹했다. 선배 사진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금요일 하교할 때마다 보이는 모습이지만 오늘은 그게 좀 더 심했다. 아마도 열심히 준비한 것의 성과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인 듯했다.

미도리야는 생각했다. 선배를 오늘 한 번만 더 볼 수 있으면 나 진짜 다할 수 있는데. 달려가서 인사도 할 수 있는데. 그리고 누군가 미도리야의 등을 세게 갈겼다. 화들짝 놀란 미도리야가 소리도 못 내고 따가운 등을 감싸 쥐고 싶어 팔을 뒤틀어 댈 때, 미도리야의 등을 아프게 갈겨버린 장본인 카미나리는 흥분 가득한 얼굴로 그의 어깨를 붙잡아 학교 건물 쪽을 향하게 했다.

 

카미나리 군, 뭐하는!”

봤지? 봤지?”

 

카미나리에게 억울함 섞인 목소리로 타박하려던 미도리야의 입이 꾹 다물렸다. 입술이 달달 떨리기 시작한다. 카미나리가 미도리야의 등을 밀었다. 후끈거리기 시작한 등이 느껴지지도 않아 미도리야는 멍한 눈으로, 이제 막 학교 건물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바쿠고를 한참 쳐다봤다. 미도리야는 교문에, 바쿠고는 운동장 끝에. 그렇게 작게 보이는 바쿠고를 용케도 찾아내서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것도 못하고 서 있다. 애들은 바쿠고를 찾아내지도 못해서 몇 분 동안 허우적거리다 그가 운동장 반 넘게 걸어왔을 때서야 찾아내고는 호들갑스럽게 미도리야의 어깨를 팡팡 때렸다. 미도리야가 그걸 느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데쿠 군, 기회야. 기회야. 빨리! 오늘 마지막 기회란 말이야.”

그으, , 그건 나도 알지만!”

 

분명 바쿠고를 오늘 안에 본다면 달려가서 인사할 거라고 중얼거렸으면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다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건지. 바쿠고와 미도리야의 차이는 앞으로 네 걸음. 미도리야는 다리까지 후들거려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세 걸음. 미도리야는 눈을 꾹 감았다. 두 걸음. 보다 못한 우라라카가 미도리야를 확 밀었다. 한 걸음. 바쿠고의 눈썹이 치켜 올라간다.

 

할 말 있냐?”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미도리야는 갑자기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그냥 사과도 아니고 존나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 주제에 길을 막아서 죄송합니다! 저는, 저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부 흘끗 쳐다볼 만큼 빽빽거리는데도 바쿠고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주머니에 손을 밀어 넣은 채 삐딱하게 미도리야의 꾸불대는 머리카락을 내려다본다. 돌아오는 대답이나 주먹질(미도리야는 바쿠고의 폭력적인 면모에 대해서도 잘 들어 알고 있다)이 없어 미도리야는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그리고 절 내려다보는 날카로운 적안에 흠칫 떨었다가, 결국에는,

 

, , , , 선배, 안녕하십니까! 미도리야 이즈쿠입니다!”

.”

 

머리를 땅에 처박을 기세로 고개를 푹 숙이고는 그토록 연습했던 말을 입 밖으로 꺼낸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대략 0.1초의 길이였기 때문에 미도리야는 자기가 대답을 못 들은 줄 알았다가, 제 옆을 스쳐 지나가는 바쿠고의 신발이 보여 소리를 되짚었다. , 이거 나한테 한 말인가? , 라고 대답해 주신 건가? , , ! 정신이 혼미해져 뒤로 넘어갈 것 같은 미도리야를, 저 멀리서 구경하던 아이들이 달려와 받쳐준다.

 

미도리야 군, 무슨 일 있었나! 안색이 안 좋다!”

데쿠 군, 아무리 좋아도 그렇게 자빠지면 안 돼!”

바쿠고 선배가 뭐라고 그랬어? ? 뭐랬어?”

 

셋의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도 아무런 대답 하지 않고 미도리야는 중얼거렸다. , 선배가 너무너무너무 좋아. 고작 한 마디, 라고도 칭하기 뭐한 한 글자에 숨도 못 쉬고 허덕이는 미도리야에 이이다는 정말 큰일이 있었나 보군!’ 안절부절 못했지만 남은 둘은 바쿠고가 무얼 했든 그건 별 거 아닐 것임을 눈치챘다. ‘별 거를 했다면 미도리야는 아마 지금 펄쩍 뛰어 우주로 날아갔을 테니 말이다. 이것은 겁 많은 소심한 후배의 첫 자기 어필이라는 나름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바쿠고가 그를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¹ HoneyWorks - 금요일의 아침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