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D/히로아카

[토도바쿠] 어서 오세요, 바쿠고 하우스에.

* 무개성

* 유령 X 인간

 

 

캇쨩! 캇쨩, 캇쨩!

…….”

왜 나 안 봐줘, 바쿠고.

더럽게 부르지 마.”

 

뾰로통하게 내밀어진 입술을 한 대 치고 싶다. 바쿠고는 이를 가는 것으로 그 욕망을 대신했다. 입술을 우물거리며 옹알이처럼 늘어놓는 말은, 조금도 듣고 싶지 않았지만 귀를 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파고 들더라. 캇쨩이라고 부르면 바쿠고가 꼭 돌아봐 주니까. 시선과 미움을 함께 받고 싶다면 그렇게 하시지. 톡 내뱉고 싶은 그 말을 삼켜내고 바쿠고는 하나도 듣지 못한 척 뒤를 팩 돌았다. 어디 가, 바쿠고. 나갈 거야? 나가지 마. 속사포처럼 다다다 달라붙어 오는 목소리를 바쿠고는 죄 무시했다. 저 놈에게서 벗어나려면 어쩔 수가 없다. 오늘은 집에서 편히 쉬려 했건만. 그러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그리 바랐던 자신을 바쿠고는 미워하기로 했다.

 

진짜 나가?

. 그러니까 꺼져.”

나 두고?

.”

 

더 말이 들려오기 전에 바쿠고는 후다닥 집을 빠져나왔다. 그가 챙길 수 있던 것은 추레한 겉옷과, 불가능하지만서도 언제든 저 녀석을 후려치기 위해 손에 꼭 쥐고 있던 휴대폰. 바쿠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 모든 주머니를 샅샅이 뒤졌으나, 결국은 한숨을 푹 내쉬며 휴대폰의 화면을 밝히는 것이었다.

 

[데쿠]

 

역시나.

신호음이 한참 이어지고 나서야 미도리야가 전화를 받는다. 또야, 캇쨩? 형식적인 여보세요같은 것은 없다. 곧바로 귀찮은 기색이 다분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바쿠고는 벌컥 튀어 나오려던 화를 꾹꾹 참아내었다. 부탁한다. 작은 중얼거림을 어떻게 들었는지 대답으로 돌아오는 한숨. 알았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긴다. 바쿠고는 그 자리에서 씩씩대며 바닥을 발로 차기 시작하더니, 발끝이 얼얼할 때쯤 자리를 벗어난다. 미도리야의 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바쿠고는 오늘도 멀쩡한, 사실은 조금 덜 멀쩡한 집을 두고 미도리야와 함께 거리를 배회한다.

 

 

 

어서 오세요, 바쿠고 하우스에.

(부제 : 짜증과 사랑과 바보가 가득한 곳)

 

 

가장 중요한 사실부터 알리자면 바쿠고는 귀신에 들렸다. 정확히 말하면 바쿠고가 아니라 바쿠고의 집이지만, 하루 종일 바쿠고만 쫓아다니며 귀찮게 구는 녀석이니 저렇게 말해도 되지 않나 싶다.

 

오늘은 또 왜.”

과제 하는데 존나 깔짝대잖아.”

과제할 거 가져왔어?”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젓는 바쿠고에 골이 아픈 것은 오늘도 미도리야다. 그 성격 좋다는 키리시마마저 바쿠고의 부름에 지쳐 큰마음 먹고 스팸 차단을 해 놓은 상태. 키리시마가 자신을 거부하고 있음을 안 순간 바쿠고는 머리끝까지 뻗친 화에 어쩔 줄 모르고 바닥을 쿵쿵 굴러대고서, 곧바로 미도리야에게 문자를 했었다.

 

[!]

[너네 집 갈래]

 

띵동, 요란한 알림과 함께 날아온 예의라고는 진즉 갖다 버린 말투에 미도리야는 어이없는 얼굴로 재빨리 답장을 보냈다.

 

[응으으응응캇쨩 얼른 와!!!!!]

 

바쿠고는 순식간에 찾아온 대답에 자신만만한 얼굴을 했다. 옆에서 귀찮게 치근대는 귀신을 억지로 모르는 척 하며(이때는 무시하는데 도가 트기 전이었다) 재빨리 옷을 챙겨 입은 바쿠고는 미도리야의 집으로 한걸음에 내달렸다. 섹스 할 준비를 마쳐 놓고 있던 미도리야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뛰어 올라가 잠에 들어버린 바쿠고에, 허탈한 얼굴로 쥐었던 좆을 놓았다. 침대에 달려가는 바쿠고의 뒤를 쫓으며 그리도 섹스가 고팠나 싶었는데 이게 무슨 봉변이람. 잠에서 깨어난 바쿠고에게 자초지종을 듣기도 전에 미도리야는 섹스 안 할 거면 우리 집 오지마, 바보야!’하며 잔뜩 화를 냈었다. 성질을 부리는 미도리야를 본 적이 거의 없었던 바쿠고는 벙 찐 얼굴로 있다 안 와, 씨발놈아!’ 괜히 성을 내고 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현관 앞에서 쭈그려 앉아 저를 기다리고 있던 귀신을 마주하고 바쿠고는 다시 미도리야의 집으로 돌아갔다.

 

미안, 섹스하자.’

그래.’

 

언제까지 날 불러낼 셈이야. 방법을 좀 생각해 보라구.”

넌 내가 하루에 백 번 부르면 백 번 나올 거잖냐.”

허어, 어떻게 확신해?”

너는 나 좋아하니까.”

 

말문이 막힌 미도리야, 11. 절대로 다른 마음을 품지 않기로 약속하고 맺은 섹스 파트너 관계이기에 도저히 할 말이 없다. 알면서 받아주지 않는다고 생떼를 부릴 수도 없지. 미도리야가 그럴 성격도 아니지만 말이다. 애꿎은 빨대만 질겅이던 미도리야는 급격히 소심해진 목소리를 혼잣말처럼 내보였다. 99번만 나갈 거야. 바쿠고는 코웃음 치며 빵에 포크를 쑤셨다. 망할 반쪽이 새끼도 이렇게 쑤셔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 바쿠고 카츠키에게 남은 영생(靈生)을 배팅한 것은 그 어떤 귀신도 아닌, 그의 웅영 고등학교 동창 토도로키 쇼토였다.

 

바쿠고, 왔어? 늦었어.

어쩔.”

너의 유치한 모습도 사랑해.

제발 죽어라.”

이미 죽었는걸.

 

죽으라는 말을 뱉어놓고 눈치를 보다가, 속없는 웃음과 따라오는 대답에 한시름 놓는다. 저답지 않았다.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씻을 거니까 따라오지 마. 그치만 오늘 바쿠고가 너무 보고 싶었어. 좀 꺼져! 씻고 나와서 나 많이 놀아줘야 해. 애달픈 목소리에 바쿠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화장실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그 틈으로 바쿠고가 사라져 버리는 모습을, 토도로키는 목소리만큼이나 가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세면대를 붙든 손은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바쿠고는 저 머저리 같은 귀신이 싫었다. 자꾸만 몇 년도 지난 일들을 상기시켜서, 바쿠고는 도저히 그와 함께 있을 수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토도로키 쇼토는 바쿠고 카츠키를 사랑했다. 바쿠고 카츠키는 토도로키 쇼토를 사랑했다. 사 년 전에 모두 끝난 일이었다.

사실은 끝이 났던 건지 본인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뿐일까. 아니면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 잘난 얼굴을 저 편으로 밀어둔 것에 불과한가. 어쨌든, 남자를 사랑하여도 되었지만 남자와 사랑을 할 준비는 되지 않았던 어린 바쿠고는 어린 토도로키의 마음을 무시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척 했다. 토도로키는 제 마음을 온통 흩뿌리고 다녔다. 나 바쿠고를 좋아해, 다른 이와 함께 있어도 잔뜩 티를 내었고. 바쿠고는 그것이 부담스러웠다. 어쩌면 겁이 났는지도 모른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바쿠고 카츠키가 그리 생각했다는 것을 알면 다 같이 놀려대겠지. 아니면 죽을 때가 되었냐며 우는 시늉을 할 터였다. 그렇게 바쿠고는 졸업을 하는 날까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토도로키를 외면했다. 끝까지 바쿠고를 잡아둘 것 마냥 굴던 토도로키는 졸업과 동시에 연락을 끊었다. 토도로키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은지 일주일 되던 날, 바쿠고는 참 많이도 울었다. 눈이 붓고 목소리가 갈라진 채로 히끅대며 토도로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없는 번호라는 달갑지 않은 말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제야 바쿠고에게, 사랑할 용기가 생겼는데 말이다.

 

……죽어?’

.’

반쪽, 아니. 토도로키가?’

.’

 

침울한 소식을 들고 온 침울한 미도리야의 얼굴을 마주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바쿠고는 울지 않았다. 어째선지 놀라지도 않았다. 그럴 것 같았어, 라는 한 마디로 제 감정을 일축시키고 바쿠고는 새하얀 항아리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토도로키의 딱 반 정도만 닮은 깨끗한 항아리였다. 그 안에는, 붉은 마음을 죄 갈아 넣은 뼛가루뿐이겠지. 숨이 턱 막혔고 지체 없이 바쿠고는 납골당을 빠져 나왔다. 장례식장 근처에도 발을 딛지 않은 주제에 몰래 찾아오기나 하고, 멍청하지. 멍청해. 왜 그를 찾아갔는지 저도 모른다. 그래야 할 것 같았어, 라는 한 마디로 제 행동의 이유를 결론지어 버리고 바쿠고는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바쿠고 카츠키는 만났다.

 

안녕, 바쿠고.

……미친.’

오랜만이야, 내 사랑!

 

죽은 제 첫사랑을.

그대로 집 밖으로 내달려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전속력으로 뛰어다닌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여전히 남아 있는 토도로키를 보고 바쿠고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눈을 뜬 순간 쓰러졌던 자리 그곳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토도로키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바쿠고는 인정했다. 내가 헛것을 보는 게 아니군. 차라리 그것이 나았다. 첫사랑은 죽었고, 죽기 직전까지 그가 누구를 사랑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환각을 본다는 것은 너무도 한심한 일이었으니. 창피해서 누구에게 함부로 말도 못한다. 차라리 옛 친구의 귀신이 들러붙었다는 말이 낫지. 물론 토도로키 귀신이 나타난 게 좋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바쿠고는 토도로키가 귀신이라는 이유로 답지 않게 무서워하며 한동안 그를 피해 다니기도 했다. 토도로키는 아랑곳 않고 바쿠고를 졸졸 따라다니며 조잘거렸다.

 

나 왜 여기 왔을까?

내가 어떻게 알아. 나가.’

안 되던데. 나도 해 봤어.

 

졸지에 바쿠고 집에 붙어 버린 토도로키는, 자신의 성불을 도와 달라고 바쿠고를 앉히고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게 문제였을까? 그게 나에게 한이었을까? 바쿠고는 당시 토도로키에게 겁을 냈던 주제에 누구에게라는 부사어가 빠진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퉁명스레 말했다.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부루퉁한 얼굴로.

 

집에 데려와 주리? 사랑한다고 쳐 말하게.’

그럴 필요는 없어.

? 그럼 여기서 눌러 붙어,’

사랑해.

…….’

, 이게 아닌가.

 

졸지에 고백을 당한(심지어는 죽어버린 첫사랑의 유령에게서였다) 바쿠고는 얼빠진 얼굴로 돌 비슷한 것이 되었더라. 어쨌든 토도로키는, 숨겼다기에는 뭐하지만 어쨌든 말로는 표현한 적 없던 마음을 대충 내뱉어서 바쿠고를 충격에 휩싸이게 한 주제에 자신이 성불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였다. 그러더니 바쿠고가 정신을 차릴 무렵, 제 손바닥을 소리 나게 마주치며 눈을 빛내는 것이었다. 알았다!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지만 바쿠고는 역시 토도로키가 알아낸 점을 들어야만 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못 들어서 그런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바쿠고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사랑한다는 말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마음이 있든 없든 한 번 던져주면 될 일. 그러나 그 이후 만일 토도로키가 떠나지 않는다면, 본인에게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라며 차일피일 미루고는 있지만 과연 그것뿐일까. 실은 떠나는 게 무서운 거 아닐까. 귀찮아 죽겠다며 괴로운 척 하지만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바쿠고는, 사고를 끊으려는 의미에서 냅다 소리 지르곤 물을 들어 얼굴에 마구 끼얹기 시작했다. 눈을 꾹 감고 입술을 감쳐 문 채였다. 바쿠고는 절대 눈을 뜨지도 입을 벌리지도 않았다. 무슨 일이냐며, 문밖에서 걱정에 가득 찬 바보 유령의 목소리가 들렸음에도 말이다. 짜증나. 짜증나 죽겠어. 도대체 나타나서 도움이 되는 게 뭐야. 확 사라져 버리라지. 그럼에도 사랑한다는 말은 죽어도 하기 싫으면서, 그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열심히 포장하고 있는 중. 이렇게 솔직하지 못한 인간과 지나치게 솔직한 유령의 하루가 저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