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 욱, 바쿠, 고."
"악, 흐웃, 으,"
바쿠고는 도통 행위에 집중하지 못했다. 키리시마가 그것을 눈치채고 투정부리듯 그의 이름을 부르며 전립선을 콱콱 쳐올려도 입술을 짓씹으며 무언가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쾌락에 절은 키리시마의 얼굴을 보며 가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키리시마가 자신의 안에 정액을 토해내며 제 위에 쓰러질 때까지 그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다. 정신을 붙들고 있지 않았다간 쾌락에 휩쓸려 울며 매달릴 것 같았고 그 얼굴을 보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끔 잠식되어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선 안 된다.
제 귓가에 스미는 낮은 신음소리에 바쿠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오늘은 이 병신같은 새끼와의 병신같은 관계를 끝내야 한다.
***
"바쿠고."
"……."
"바쿠고오."
"…뭐."
여운을 느끼면서도 계속 바쿠고의 눈치를 보던 키리시마가, 진정이 되었을 때 바쿠고의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칭얼거렸다. 두 번째 부름에서야 툭 성의없이 건네진 한 마디에도 좋다고 웃으며 키리시마는 바쿠고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하지 말라는 듯 바쿠고가 팔을 휘적였지만 키리시마는 마른 살갗을 잘근 씹으며 싱글싱글 웃는 얼굴과는 조금 상반되는, 걱정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안 좋은 일 있었어? 바쿠고는 입을 살짝 벌렸다가 꾹 다물고 도리질쳤다. 그 짧은 과정을 지켜본 키리시마의 얼굴이 조금 어두운 빛을 띄었다. 바쿠고는 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음,
그러니까
사실은
죽는다고 했다.
한심해서 웃음도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이 개월도 채 못 살 거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의사를 쳐죽이고 싶었다. 수술을 하겠냐는 물음에 차피 뒈질 거 필요없다 대꾸하고 바쿠고는 병원을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병원 문 앞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잠시 훑어보다, 바쿠고는 시큰거리는 코끝을 손등으로 문지르고 집으로 향했다.
이젠 하등 소용없게 되어버린, 꿈꿔왔던 찬란한 미래를 천천히 곱씹으며 빠르게 돌아가던 도중 바쿠고는 길의 한가운데 우뚝 멈춰섰다. 한숨을 내쉬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을 듯 몸을 수그렸다가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아, 씨바알!! 지금 그 무엇보다 말도 안 되게 짜증나는 건, 그 미래에 원래 없었던 키리시마의 얼굴이 자꾸만 끼어드는 것이었다. 얼마 안 있으면 죽을 새끼가 왜 자꾸 시간 아깝게 쓸데없는 거나 떠올리냐고 머리를 쥐어박아도 그 얄미운 얼굴만 뭉게뭉게 불어날 뿐이었다.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바쿠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죽기 싫다. 그리고, 무거운 발걸음이 다시금 터벅터벅.
둘 모두를 아는 친구 녀석을 끼고 처음 만난 자리에서 눈 맞고 배 맞아 지금까지 약 오개월 하고도 이주. 바쿠고는 그 시간이 나름 즐거웠고 이 바보같은 녀석에게 정도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많이, 많이 좋아하고 있어. 그래서 더욱 바쿠고는 말해야 했다.
며칠 동안 고민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솔직히 말하면 동정하길 바라는 것 같잖아. 이 마음 착한 녀석이 외면할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아무 설명 없이 쫑내자고 할까. 그게 제일 좋으려나.
오늘 키리시마에게 [섹스하자] 문자를 보내면서도, 만나기로 한 호텔 앞에서 멍하니 그를 기다리면서도 바쿠고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어떡하면 좋지. 마음 한 켠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애는 널 조금도 신경쓰지 않아. 그저 맛 좋은 구멍 정도? 바쿠고는 그 목소리에게 신경질을 냈다. 알아, 시팔아.
바쿠고는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그냥 말하자. 섹스 그만하자 한 마디면 되잖아. 다른 사람 구하면 될 테니까, 알겠다고 할 거고. 그렇게 결심을 했음에도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바쿠고는 자기가 너무 한심해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아니, 곧 죽지만서도.
저 병신머리가 그렇게 좋냐? 응, 좋아. 바로 따라붙는 대답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은 바쿠고가 바쿠고에게 대꾸했다. 그럼 빨리 말해야 해. 그래서 바쿠고는 억지로, 입술 새로 목소리를 끄집어 냈다.
"야, 병신머리."
"으응."
그래. 어차피 좋아하는 쪽은 나고, 너는 그냥 섹스가 좋아서 내 비위 맞춰주고 있는 거니까. 괜찮지? 조금 더 이 관계를 끌어봤자 곧 죽을 새끼한테 시간만 낭비했다고 나중에 지랄할 테니 지금 끝내는 게 나은 거야. 맞아.
"그만두자, 이런 거."
말했다. 결국 말했다. 바쿠고는 심장이 쿵쾅쿵쾅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잠시 기다려도 아무 말 아무 기척 없는 키리시마에 바쿠고는 역시, 하고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너 표정 구려."
"내가,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제 말은 들은 체도 안 하고, 그러면서도 그 말이 신호탄이라도 된 마냥 튀어 오르듯 상체를 벌떡 일으키더니 다급하게 물어오는 키리시마에 바쿠고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섹스를 좀 잘했나 보지? 이런 식으로 나오게.
꿋꿋이 제 허리는 놓지 않고 어정쩡한 자세로 일어나 앉은 키리시마의 손을 탁 쳐내며 바쿠고는 몸을 돌려 등을 보이고 누웠다.
"바쿠고, 나 봐."
어깨에 닿는 키리시마의 손을 짜증스럽게 치워내고 바쿠고는 눈을 감았다. 섹스 파트너로 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섹스 파트너로 여겨지고 있었다니 화가 훅 치밀었다. 그래도 그냥 파트너가 아니라 죽여주는 파트너로 생각해줘서 고맙네. 바쿠고는 키리시마 몰래 씨근거리며 시트를 꽉 쥐었다. 싫다. 존나 싫어.
"떨어져라."
"제발."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에 바쿠고는 숨을 흡 들이쉬었다. 잘못 들은 것 같았지만, 멋대로 그렇게 들어버린 것 같았지만 가슴이 답답했다. 키리시마는 바쿠고의 등에 바싹 붙어 어깨에 이마를 대었다. 조금 불안하고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키리시마가 웅얼거렸다. 오늘 나 못했어? 그래서 그래? 연습해 올게, 응? 나 잘할게, 앞으로. 끝 하지마, 싫어. 바쿠고는 '대체 어디서 누구랑 연습한다는 거냐!!' 벌컥 화를 낼 뻔했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미동없이 누워만 있었다.
아이처럼 계속 종알종알 싫어, 바쿠고. 하며 키리시마는 바쿠고의 목덜미에 코를 부볐다.
"말해줘. 뭐가 마음에 안 들어? 알려주면 나 다 고칠게."
"니가."
"응."
"니가 마음에 안 든다고."
바쿠고의 허리를 꼭 끌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지마… 이번엔 착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확실하게 물기가 잔뜩 어린 목소리를 듣고 바쿠고는 혀를 쯧 찼다. 그리고 필터링 안 된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이런 말, 구질구질 더러워서 안 하려고 했는데 바쿠고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야."
"응, 응."
"왜 그래?"
"뭐가."
내 몸이 그렇게 좋냐? 섹스 토이, 포기를 못하겠어?
빈정거리는 어투에 키리시마는 곧 울 것 같은 목소리로ㅡ아니 이미 울고 있었는지도ㅡ 바쿠고, 하고 괜히 낯설게 느껴지는 이름을 불렀다. 바쿠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상처주기 위해 한 말이었는데 그가 수긍해 버리면 되려 자신이 상처입을 것 같아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괜히 말했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바쿠고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어차피 내일부터 안 볼 사인데 뭐 어때.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냐."
안 볼 사인데.
"네 몸이 좋은 것도 맞고, 포기 못하겠는 것도 맞는데."
바쿠고의 어깨에 축축하게 눈물이 스몄다. 키리시마가 고개를 들어 바쿠고의 귓가에 입술을 바싹 가져다 대었다. 꼭 들어줬으면 해서, 별 거 없는 진심이라도 꼭 들어줬으면 해서 키리시마는 미세하게 벌어진 입술 틈 새로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건."
"……."
"너지, 장난감이 아냐."
"내가 장난감,"
"아냐."
처음으로 제 말을 끊은 키리시마에 바쿠고가 흠칫했다. 그 작은 떨림이 제 팔을 타고 전해지자 키리시마는 눈물이나 질질 흘리고 있는 주제에 피식 웃었다. 나쁜 말만 하는 주제에, 귀엽기나 하고. 키리시마는 코를 훌쩍이고 말을 이었다. 난 너랑 섹스만 하고 싶은 거 아냐. 아무 이유 없이 전화도, 문자도 하고 싶어. 섹스 안 하고도 밤새 같이 있고 싶어. 놀이공원 가서 바보같아 보여도 커플 머리띠 쓰고 싶어. 평범한 연인들처럼.
키리시마가 고개를 살짝 들어 바쿠고의 뺨에 입술을 꾸욱 눌렀다. 키리시마의 얼굴을 축축히 적신 눈물이 바쿠고의 뺨에 와 닿았다. 바쿠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키리시마의 눈물이 바쿠고의 뺨을 타고 흘러 입술에 닿았다. 짠 맛이 났다. 한참 말을 잇지 못하던 키리시마가 결국 흐느낌을 토해내며 손을 들어 바쿠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그 울음을 뚫고 마구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왜냐하면 나, 나,
"좋아, 하니까."
"…미쳤지."
"내가, 널, 흐윽, 좋, 아해."
"병신새끼."
바쿠고는 결국 몸을 틀 수밖에 없었다. 그치만 얼굴을 볼 자신은 없었다. 형편없이 무너졌을 그 얼굴을 바쿠고는 마주하기가 조금 두려웠다. 그랬다간 좋아하는 마음이 펑 터져서, 그래서 죽기 싫다고 울면서 매달려 버릴까봐. 꼴사납잖아, 그거. 그래서 바쿠고는 눈을 내리깔고 그를 향해 누워 그 허리를 끌어안았다. 몸 전체가 바들바들 떨리는 게 마주 안고 나니 더 심하게 느껴져 바쿠고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야."
"응, 으응."
"나 죽는다는데."
"그럼, 같이, 죽, 어 줄게에…."
"얼씨구."
혹시 몰라 툭 뱉은 말에 저런 예상치 못한 대꾸, 바쿠고는 웃었다. 어이 없다는 식의 기운 빠지는 웃음이었지만 어쨌든. 바쿠고는 키리시마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착한 새끼, 멍청한 새끼, 조오온나 등신새끼. 키리시마가 뜨거워서 그런지 자꾸만 눈에 열이 몰리는 것 같아 바쿠고는 키리시마를 더욱 힘껏 껴안았다.
두 연인의 밤이, 깊어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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