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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히로아카

[토도바쿠] 마지막 밤

* 고등학교 유도부 합숙

* 캇른 전력 8회 <합숙>

 

"바쿠고."
"꺼져."
"방금 왔는데."
"그냥 꺼져, 좀."

 

내 쪽에 시선조차 주지 않고, 본인의 발끝만 죽어라 노려보는 네 옆에 앉았다. 꺼지라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척 엉덩이를 들썩여 편안한 자세를 잡았다. 무릎을 세워 팔을 걸치고, 노을이 지는 붉은 하늘에 시선을 주었다. 구름이 몽실몽실 떠가는 하늘, 네가 좋아하는 예쁜 하늘. 지금은 제 발을 구경하는 건지 아니면 모래알을 세고 있는 건지 고개를 숙이고는 미동조차 없는 너지만 나는 하늘을 보며 하늘을 좋아하는 네 생각을 했다. 갑자기 말수가 줄어들어 쳐다보면 가만히 하늘을 훑고있는 네 눈을 생각했다. 너에게 볼 일이 있어 네 옆에 앉은 건 아니라고 우기기 위해 나 역시 너를 바라보고 있지 않지만, 나는 네 생각 중이었다.

 

"꺼져, 너."
"여기 하늘이 제일 예뻐."
"안 예뻐. 꺼져."

 

야속하게도 내 속을 알 리 없는 너는 꺼지라는 말만 계속, 계속. 속이 상했지만 본의 아니게 늘어지는 말에 물기가 어려 있어 이번만큼은 너에게 투정부리지 않기로 했다. 나는 땀에 젖어 축 늘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줄까 잠시 고민했지만 바로 내쳐질 것 같아 그러지 않기로 했다. 네가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무릎을 조금 더 세게 껴안는 것을 보고 나는 울고 싶어졌다. 이유도 모르는 주제에 그냥 사랑하는 네가 슬퍼하는 모습이 내게는 너무 아프게 다가왔단 거다. 뭐가 그렇게 힘든지, 뭐가 그렇게 속상한지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바닷소리에 파묻혀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냔 말이야.
나는 너를 위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섣부르고 서툰 위로는 네 자존심만 건드리고 네 기분만 상하게 할 게 뻔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다. 안 그래도 미움 받고 있는데, 네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아. …뭐, 지금 여기 앉아 있는 것도 충분히 거슬릴 테지만. 그래서 나는 너를 위로하는 대신, 너를 찾아온 이유ㅡ솔직히 말하면 핑계. 내가 자진하여 너를 찾아나선 것은 훈련 내내 표정이 좋지 않았던 너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ㅡ를 대며 일단 너를 모두에게 데려가려고 했다. 시끄러운 녀석들과 함께 있으면 네 기분이 조금 나아질지도 모르니까.

 

"밥 먹으러 오래."
"안 먹어."
"또 쓰러진다."
"좆도 못하는게 쓰러지든 뒤지든."

 

나는 결국 손을 뻗어 네 머리를 쓸었다. 뭐야, 하고 작게 중얼거렸지만 너는 내 손을 쳐내지 않았다. 네 옆에 바싹 붙어앉아 땀에 푹 절어 축축한 머리카락을 두어 번 쓸다가 아예 네 머리를 끌어안다시피 해 내 어깨에 기대게 했다. 네 입술 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너는 가만히 내 어깨에 머리를 붙이고 있었다. 무언가, 마음이 채워진 기분. 네가 나에게 화를 낼 기운이 없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 탓이지만 나는 그래도 잠깐 행복했다. 네가 속상해 하는데 기뻐선 안 되지만 평소의 너와 너무 다르니까, 응… 미안해. 나는 혼자 속으로 횡설수설 자기합리화를 하려다 실패하고 네 머리에 뺨을 기댔다.

 

"나 안 씻었어."
"난 씻었어."
"냄새나. 꺼져."
"나 후각이 안 좋아."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나는 쉬고 있던 손을 들어 다시 네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대체 뭐하는 짓거리냐며 투덜댔지만 사실은 너도, 누군가의 위로가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했던 건지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입술을 꼭꼭 씹기 시작했다. 눈물을 참으려는 것 같았다. 처음의 울먹임 이후 지나치게 멀쩡한 목소리라 잘못 들은건가 싶었는데 역시나. 좆도 못하는게 쓰러지든 뒤지든, 하는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다시 귓가를 울려 나는 코를 훌쩍이는 네 뺨을 엄지 손가락으로 슬며시 쓸었다. 간지러운지 어깨를 바르작거린 네가 내 목에 파고들었다. 네가 한 마디 한 마디 말할 때마다 뜨듯한 숨이 목을 간지럽혔다.

 

"좋겠다."
"……."
"넌 인마, 좋겠다고."
"뭐가."
"…잘하니까."

 

마지막 글자에서 네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고 너도 그것을 느꼈는지 황급히 입술을 꾸욱 다물었고 내 목에 닿은 눈이 꼬옥 감기는 것이 느껴졌다. 손을 내려 네 어깨를 끌어안았다. 너도 천천히 팔을 뻗어 내 허리를 끌어안으려다 어색하게 옷을 붙들었다. 손바닥에 닿은, 여전히 하얀 도복으로 감싸져 있는 네 어깨를 문질렀다.

 

"나 못해."
"지랄."
"진짜로. 네가 훨씬 잘하잖아."
"난, 아, 씨발."

 

제 얘기를 하려니 울컥하는지 내 옷을 붙들었던 손까지 거둬 눈두덩이를 손바닥으로 꾹꾹 누른다. 연신 짙은 숨을 뱉어내며 침을 삼키고, 나는 조용히 네 어깨를 토닥였다.
슬럼프, 그래. 내가 사랑하고 동경하는 너한테 슬럼프가 왔다. 알고 있었다. 티는 안 내려고 했지만 연습에서나 실전에서나 너는 계속 무너졌다. 물론 실전에서는 이기긴 이겼다. 악으로 깡으로 너는 죽어라 매달렸고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너는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코치님도 마찬가지였다. 코치님과 네가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너는 자주 울었다. 다들 집에 가고 난 뒤 너를 기다렸던 나는 알았다. 비척비척 탈의실에 들어가 쓰러져 우는 너를 나는 많이 보았다. 너는 약한 모습 절대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하니까, 그러니까 나는 모르는 척 했다. 가만히 네 목소리가 들리는 옆 방 벽에 기대 너를 혼자 위로했다. 너에게 들리지 않을, 괜찮아 괜찮아 그 말만 반복하면서 나는 너를 너도 몰래 안아주었다. 그래서 네가 왜 이러는지 알고 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지만 네가 왜 이러는지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여태껏 이런 상황이 닥치면 어떤 말을 건네면 좋을지 매일매일 고민했으면서도, 정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나 관두고 싶다."
"미쳤지."
"넌 몰라, 넌 씨발. 넌 천재잖아."
"그게 뭐야."

 

일주일 간의 합숙 내내 너는 정말 힘들어했다. 코치님은 너를 더 혹독하게 훈련시켰고, 너는 중간에 쓰러지기까지 했다. 그런 주제에 깨어나자마자 다시 뛰고, 뛰고, 뛰고. 나는 조금 울었다. 네가 너무 악착같은 게 그것 때문에 괴롭고 힘들 게 뻔해서 울었다. 이번에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울었다. 네 꿈을 알아서 말리지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코치님은 너를 믿는다. 너만 보고 있다. 너도 알 거야, 그치? 그래서 더 이러는 거라는 걸 너도 알아서 너는 더 이를 악 물고 덤벼드는 거잖아. 제 자신의 꿈과 제게 걸려 오는 기대, 전부 너를 짓누르고 있는 걸 알지만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어서 네 자신을 마구 채찍질 하고 있잖아. 그리고 우습게도 코치님은 스스로를 아프게 하고 있는 너를 알면서도 잘못된 방법으로 슬럼프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치는 너를 재촉했다.

 

토도로키만큼만 하란 말이야, 어?
병신이야, 바쿠고? 발전이 없어, 발전이.
타고나질 않으면 노력이라도 해야지. 토도로키 저 새끼는 천재잖아, 넌 아니고. 따라잡히고 싶어? 어?
아니, 이미 따라잡혔지. 미안하다.

 

…나는 정말, 너에게 미움 받을까봐 하루하루 겁이 나.

 

"야."
"어?"
"배고프다."

 

가자, 밥 먹으러. 나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거리며 빌어먹을 기억들을 떠올리고 있는 도중에, 너는 네 어깨에 걸려 있는 내 손을 툭 치고 벌떡 일어나 해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위태로워 보이는 네 걸음을 눈으로 쫓았다. 혼자 맨발로 여기까지 달려와 시뻘개진 발바닥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파? 아파, 바쿠고? 물었다간 내가 너를 무너뜨려 버릴 것 같아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지만 남에게 그런 모습 보이기 싫어 애쓰는 너를 그 노력을 전부 허사로 만들 것 같아서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내 앞에서 만큼은 무너져도 되는데. 아니, 그래줬으면 좋겠는데. 나를 믿어줬으면 좋겠는데. 나한테는 벽 같은 거, 부숴줬으면 좋겠는데.

 

"빨리 안 오냐."
"가."

 

네가 진심으로 웃는 얼굴을 보고 싶은데, 나.
나는 또다시 뛰기 시작한 너를 쫓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나 네 등 뒤에 있는데, 절대 네 앞에 설 생각 없는데, 왜 너는 그리 조급해 할까.

 

너에게나 나에게나 좆같기만 했던 마지막 합숙의 마지막 날이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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