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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히로아카

[데쿠캇] 당신에게 내일을

* 호위무사 X 세자



"하지마, 응? 제발, 이즈쿠. 응?"

"……."

"드, 들었지? 카츠키가 한 말, 들었지? 빨리 카, 칼 치…"


그러나, 차마 다가오지는 못하고 몇 발짝 떨어져 울먹이며 발을 구르는 제 주군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양 칼을 든 이는 망설임이 없었다. 치졸한 그의 형이 전부 지껄일 때까지 기다려줄 만큼 이즈쿠는 착하지도, 인내심을 가지지도 못했다.

이즈쿠!! 카츠키의 비명과 함께 남자의 머리가 툭 떨어졌다. 말을 채 끝내지 못해 벌어진 입 커다랗게 뜨여진 눈, 추악한 얼굴이 카츠키의 발치로 데구르르 굴러갔다. 카츠키가 소리도 못 지르고 덜덜 떨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아직도 죽음에 익숙해지지 못한ㅡ물론 그가 보는 앞에서 사람을 죽인 것은 처음이지만ㅡ 어린 주군을 안쓰럽게, 하지만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며 이즈쿠가 그에게 다가갔다. 이즈쿠의 손에 들린 길고 날카로운 칼에서 시뻘건 핏물이 뚝뚝 떨어져 그의 길을 따라 자취를 만들었다.


카츠키는 제 오랜 친구이자 아빠이자 형 그 밖에도 모든 역할을 그 평생 충실히 수행해 주었던 제 부하에게서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가오는 그에게 평소처럼 와락 안기지도 못하고 얼어 있었다. 눈을 시퍼렇게 뜨고 카츠키를 올려다 보는 머리를 발로 툭 차 더 이상 그의 시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이즈쿠는 두려움에 잠식된 소년의 눈 위에 제 손을 살며시 얹었다. 스르르 감긴 눈 사이로 그제야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나빠. 이즈쿠 나빠."

"……."

"우리, 우리 혀엉, 형인데."


흐느낌이 잔뜩 섞인 목소리가 저를 책망해도 이즈쿠는 사과하지 않았다. 가엾은 세자님. 이즈쿠가 칼을 바닥에 대충 던져두고, 피가 튄 손등을 바지에 대충 닦고 그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쭈그려 앉았다. 눈을 가렸던 손을 떼자 울음에 가득 찬 눈이 원망스레 자신을 향하게 되었다. 다시 덮어버릴까, 잠시 생각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왜 우세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따뜻한 목소리, 말투에 카츠키는 설움이 북받치는지 대답을 하려고 벌렸던 입술 새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울음이 자꾸 차올랐다. 그게 답답해서 조그만 손이 가슴께를 꼬옥 틀어쥐었다. 이즈쿠의 손이 그 위를 덮었다. 괜찮아요. 제가 죽여놓고 지나치게 담담한 그 목소리에 카츠키는 이즈쿠의 손을 뿌리쳤다. 화도 내고 싶었지만 그럴 기운이 없는지 희미한 목소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도대체 왜, 왜 그런 거야."


그 서러운 음성에 이즈쿠는 슬쩍 웃었다. 조금 슬퍼 보이는 웃음이었다.


이즈쿠는 손을 뻗어 부슬부슬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카츠키도 내치지 않았다. 그를 진정시키고자 하는 이즈쿠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몇 분 지나지 않아 투둑투둑 떨어지던 눈물이 멎었다. 원래 이러면 눈물 잘 그쳤으니까, 세자님. 훌쩍이며 충혈된 눈으로 절 내려다보는 사랑스러운 소년에게, 이즈쿠는 한참 전 질문에 이제서야 대꾸했다.


"그게 제 일이니까요."


전부 끝내게 되면, 당신 곁에 있을 수 없게 되는ㅡ이라는 말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다섯 살 세자님을 처음 만난 열세 살 그 날부터 이즈쿠가 할 일은, 아니 그것을 넘어서 그가 살아가는 이유는 카츠키의 왕위 계승에 조금이라도 해가 될 만한 인물을 없애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즈쿠는 그 이후로부터 카츠키의 곁을 단 한 순간도 떠나지 않고 그를 지켰다. 하나 예외. 그가 누군가를 죽여야만 할 때.


카츠키를 만난지 약 두 달만에 이즈쿠가 처음으로 죽인 것은 제 아버지였다. 카츠키를 재우고 한 시간 뒤 이즈쿠는 제 집으로 숨어들어 자고 있는 아버지의 가슴에 칼을 박았다. 왕을 제외하고는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는 그를 이즈쿠는 가장 먼저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시체 앞에서 이즈쿠는 구역질했다. 점심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아 위액만 자꾸 게워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첫 살인, 아버지. 이삼십 분 쯤 그러고 있다가, 오래 어린 세자의 옆을 비울 수는 없어 대충 진정시키고서 세자의 처소에 돌아왔을 때


'혀엉아.'

'깨셨어요?'

'무서어써…'


자다 깨서 뭉그러진 발음으로 칭얼거리며 제게 안겨오는 카츠키에 이즈쿠는 그만 웃고 말았다. 아버지를 죽인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이즈쿠는 손을 내려 카츠키의 등을 당겨 안았다. 구 년이 지난 지금 훌쩍 큰 마른 몸이 이즈쿠의 품 안에 폭 안겼다. 제게 힘 없이 기댄 카츠키의 귀에 이즈쿠가 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절 원망하세요."

"…."

"그로써 당신이 편해질 수 있다면."


어쩜 그의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저만을 위한 것일까. 카츠키는 결국 울음을 다시 터뜨리며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사랑해요."

"…."

"그러니까 괜찮아요."


많이, 사랑하니까.

누군가 들었다간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게 될 수도 있지만 이즈쿠는 계속 속삭였다. 사랑해요. 많이 사랑해요. 신분도 이렇고, 게다가 남자니까 이건 독백과도 같을 지라도 과분한 짓. 하지만 그의 곁에 그를 위협할 만한 세력이 하나도 없게 되는 순간 더 이상 다정한 말을 건넬 수도 잠투정이 심한 이 소년을 달래줄 수도 이렇게 안아줄 수도 없게 될 테니까, 말이라도. 내가 사랑하는 만큼 되돌려 받는 거 바라지도 않으니까 말이라도 할 수 있게, 이 순간만 나에게 당신이 허락되어지길.

이즈쿠의 흉터 가득한 손이 사랑하는 제 주군을 그득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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