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장애가 있다고 하기도 뭐하고 없다고 하기도 뭐한, 일반적이기는커녕 세상에 이런 사람이 존재하기는 하나 싶겠지만 미도리야 이즈쿠는 그랬다. 다른 소리는 전부 들렸다. 차가 빵빵대며 클락션을 울리는 소리, 옆을 지나가는 여자의 구두가 또각이는 소리, 옆집 개가 킹킹 짖는 소리까지 전부. 단 하나, 사람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소리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이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짝사랑했던 예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생생히 기억나는 걸 보니 그 이후에 어쩌다보니 이렇게 된 것 같은데. 그 '어쩌다보니'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 이즈쿠는 종종 궁금했다. 무슨 이유가 있던 걸까? 물론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생명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즈쿠는 현재 나이 스물 두살까지 그냥저냥 살고 있었다. 귀머거리 취급을 받으며 왕따를 당한 것도 아니었다. 입 모양, 표정 등을 살피며 적당한 반응을 보여주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기 때문에 이즈쿠의 주변에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시끄러운 친구들이 많았다.
친구들은 이즈쿠를 가끔 무언가에 몰두하면 아무 소리도 못 듣는 녀석, 쯤으로 생각했지 그 정확한 상태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러나 이즈쿠의 증상을 전부 아는 친척들은 이즈쿠의 엄마에게 저 아이를 병원에 보내보라고 만날 때마다 권유했다. 사실 강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녀라고 해서 이즈쿠를 병원에 보낸 적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의 목소리를 제외한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즈쿠를 의사는 치료하지 못했다. 병이지만 병이 아닌. 의사는 이것이 마음의 병에서 초래된 게 분명하다 말하며 정신과에 가보기를 추천했다.
병원에서 나오며 이즈쿠의 엄마가 걱정스러운 눈동자를 이즈쿠의 올곧은 시선에 맞추었을 때, 이즈쿠는 싱긋 웃었다. 엄마를 안심키기 위한 의도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거짓된 미소는 아니었다. 이즈쿠 저 자신 역시 정말로 괜찮았다.
'이즈쿠,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한 번 가 보는 게….'
집에 돌아와서 마주앉아 밥을 먹다가 식탁을 톡톡 치는 엄마의 손가락에 고개를 들어 그녀의 입모양을 읽고, 이즈쿠는 고개를 저었다. 난 괜찮아요. 이즈쿠가 입술을 벙긋거리며 제 의사를 전했다. 엄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가를 손가락으로 대충 훔치고 대답했다.
'그래, 이즈쿠. 네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릴게.'
그녀는 제 아들이 많이 아프고 슬프고 외롭지만 자신을 정신이상자 취급하며 정신병원에 떠미는 것이 불쾌한 것이며, 그 자신이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 그곳을 스스로 찾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로 정말로 괜찮다 못해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즈쿠는, 이미 밥그릇으로 시선을 돌린 뒤라 엄마의 메세지를 전해듣지 못했다.
그게 사 년 전 여름이었다.
다시 사 년을 거슬러 올라와 현재. 이즈쿠는 여느 스물 둘 청년들처럼 대학교를 다닌다거나 알바를 한다거나 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지는 않았다. 대신 이즈쿠는 글을 썼다. 말로는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했지 모든 생각을 표현할 수 없어 예전부터 그 대신 글을 선택했었는데, 그것이 이즈쿠가 작가의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었다. 하얀 종이에, 하얀 컴퓨터 화면에 까만 글씨가 빼곡히 채워지면 이즈쿠는 제 마음도 같이 가득 차는 것 같았다. 사랑 이야기도 시답잖은 헛소리도 손이 가는대로 썼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에 맞춰 타닥타닥. 이즈쿠는 글을 쓸 때면 행복했다. 제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털어놓아도 전부 받아주는 착한 친구 같았다.
하지만 작가라는 게 그렇게만 해서 되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이즈쿠는 잠깐의 여가 이후에는 머리를 짜내며 원고를 작성해야 했다. 카페에서 인상을 잔뜩 쓰고 글이 나오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괴로워도 좋아서 이즈쿠는 평생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글로도 충분한데 왜 말을 해야하는 거지? 이즈쿠는 종종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생각하고 있었다. 이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씨발아, 좀."
마지막 순간이었다.
분명 들었다. 들어 버렸다. 들어서는 안 되는데, 듣지 못하는 게 맞는데, 들어 버렸어. 이즈쿠의 모든 사고회로가 멈췄다. 나른하게 뜨고 있던 눈이 커졌다. 갑자기 심장소리가 마구마구 크게 들렸다. 호흡이 빨라졌다. 이즈쿠는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제 숨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기 때문이다. 이즈쿠의 머리가 핑글핑글 돌았다. 뭐지? 뭐지?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이즈쿠의 눈이 바쁘게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이게, 이게…
"언제 오냐고, 그래서."
이즈쿠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가 너무 예뻐서 그게 너무 놀라워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사람 목소리라는 거, 원래 이렇게 예쁜 거였어? 분명, 분명 기억하는 목소리 이 정도까지는 아니잖아. 이즈쿠의 시선이 꽂힌 자리에는, 한쪽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통화를 하며 짝다리를 짚은 남자가 서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예쁜 소리를 낼 수 있지? 이즈쿠는 그 얼굴이 너무, 너무, 너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뭐라도 했다간 쳐다보고 있음을 들킬 것 같아 이즈쿠는 숨죽이고 그를 몰래 훔쳐보고만 있었다.
"아아아악, 죽어버려!"
"……."
"간다, 내가. 내가 간다고."
계산대 앞에서 서성이던 남자는 버럭 화를 내며 전화를 끊고 성큼성큼 카페를 벗어났다. 아, 아, 안 돼. 이즈쿠가 허둥지둥 짐을 챙겼다. 아아, 저장해야 돼. 다급한 클릭 소리가 이즈쿠를 거슬리게 했다. 이런 소리가 아냐. 저 사람을 따라가야 해. 빨리, 다시 들어야 해. 평소처럼 가방을 가볍게 하고 왔는데 어째서 이렇게 챙길 게 많은지, 이즈쿠는 그 남자를 놓칠까봐 덜컥 겁이 났다.
차분히 앉아 가방을 멜 시간 따위 없어 이즈쿠는 빠른 걸음으로 카페 문으로 향하며 가방을 대충 어깨에 걸쳤다.
"저, 저기요."
"……."
"저, 아니, 이봐요!"
이즈쿠가 열심히 타자를 칠 때부터 흘끔거리던 어떤 여자가, 이즈쿠가 카페를 뜨려고 하니 다급하게 다가와 번호를 물으려는지 휴대폰을 들이밀었지만 그 목소리가 들릴 리도 없었고 그녀가 시야에 들어올 리도 없었다.
"…없, 네."
짐을 챙기느라 시간이 지체되긴 했지만 그래도 바로 뒤따라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한적한 거리 얼마 없는 사람들 중 그 남자의 삐죽삐죽한 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이즈쿠는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을 떨구지 않으려 했다. 얼마만에 듣는 목소린데, 그렇게 예쁜 목소리였는데 놓쳐 버렸어. 바로 잡았어야 했는데, 바보. 바보. 어떡하지? 어디로 갔을까.
"아, 그 새끼 정말."
이즈쿠는 순간 귓가에 확 꽂힌 목소리에 고개를 휙 돌렸다. 그 남자가 옆 건물 편의점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즈쿠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려가 그 남자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이즈쿠는 그를 놓친 게 아니라는 기쁨에 저도 모르게 남자를 향해 활짝 웃었다. 하지만 남자를 본 순간 그 목소리를 다시 들은 순간 울음이 터져서 일그러진 웃음이었다. 남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괴상한 얼굴로 울고 있는 이즈쿠를 바라보며 자신을 붙든 손을 치워내려고 했다. 하지만 악력이 왜 이렇게 센 건지 떨쳐낼 수가 없었다.
"왜 이래, 미쳤어?!"
어이없음과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조차 예뻐서 이즈쿠는 머릿속이 핑글핑글 도는 것 같았다. 아, 아냐. 이럴 때가 아니고, 상황 설명을 해야지. 이즈쿠는 코를 훌쩍이며 무어라 말해야 가장 이 남자를 쉽게 납득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다 입술을 열었다.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뭐?"
울음 때문에 뚝뚝 끊기는 목소리, 그리고 상황 설명에도 실패. 남자는 이제 이즈쿠를 미친 사람으로 간주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제 입으로 인정한 상기된 곱씹게 된 결론에 이즈쿠는 울컥울컥 차오르는 눈물 벅차는 가슴에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즈쿠는 그 남자에게 닿지 않은 손으로 주먹을 꽈악 쥐었다.
스물 두 살이 되어야 만나게 된 미도리야 이즈쿠의, 첫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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