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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백첸] 그리고 남은 것은

너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백현아, 난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해? 질문이 끝났을 때 너는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고 그렇다 하여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네게서 그 어떤 말도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어 잠시 뜸을 들였다, 고개를 천천히 돌려 너를 바라 보았다. 내 시야에 네가 들어온 순간 나는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럴 줄 알았기 때문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고, 그럼에도 그러길 바라지 않았음도 그 이유가 될 수 있었다. 너는 아무 말 없이 아무 소리 없이 조용히 조용히 울고 있었다. 네가 울기를 바라서 물은 것은 아니지만, 마음 한 켠에서 네가 아파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도 같다. 아니, 정정. 그랬다. 네가 아파하기를 바랐다.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추락하고 외면 당하고 너 아니면 안 될 그런 외톨이가 되어 버렸으니, 너도 똑같이 아파야 한다고 생각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혼자가 됐는데, 왜 네 주변에는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많이 남아 있는 거야? 우리 아버지는 나더러 나가 뒤지라고 했는데, 왜 너희 어머니는 울면서 너를 꼬옥 안아주신 거야? 너랑 나는 똑같잖아. 너랑 나는 똑같은 게이 새끼잖아. 더러운 호모 자식이잖아. 그런데 왜 너는 기댈 사람이 있어? 난 왜, 기댈 사람이라고는 약해 빠져서 차마 기댈 용기를 가질 수 없는 너 뿐인 거야?
그렇지만 머릿속을 뱅뱅 맴도는 생각은 생각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엾어서 나를 동정하며 죄스러움에 눈물 흘리는 너에게 저렇게 말할 만큼 나는 못되지 못했다. 그러니까, 울고 있는 나의 사랑에게 욕짓거리를 내뱉을 위인이 못 되었다고.

 

어쨌든 나는 너를 미치도록 사랑했고 그만큼 너를 증오했다. 문득 네 생각이 나서 거울을 봤는데 널 꼭 닮은 내가 있어서, 나는 그게 너무 싫어서 거울을 깨 버릴 만큼 널 사랑하지만 널 증오했다. 다치는 것 아픈 것이 싫은 만큼 네가 증오스러워서,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주먹을 내질렀고 그것에 상처 입은 것을 후회할 때는 네가 옆에 있었다. 다정히도 붕대를 둘둘 말아주고 있는 네가.

 

"어쩌다 다쳤어."
"……."
"말 하기 싫어?"

 

그럼 말 안 해도 돼. 여전히 너는 내가 이렇게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는데도 너는 그렇게 햇살처럼 웃을 수 있구나. 나는 지금 너무 좆같은데, 너는 그렇게 햇살처럼 웃을 수 있구나. 나는 네 얼굴에서 눈을 떼고 네 두 손 위에 얌전히 올려진 내 오른손에 시선을 박았다. 정갈하게 감겨진 하얀 붕대가 위태롭게 잔뜩 어질러진 내 마음 속과는 너무나도 상반되어 되려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어둠을 마주했다. 순간 놀랄 만큼 편해졌다. 그래서 천천히,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네게는 들릴 수 있을 만큼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문득 네 생각이 나서."
"응."
"거울을 봤는데."
"응."
"거기에 널 꼭 닮은 내가 있었어."

 

나는 입을 닫았다. 너도 입을 닫았다. 네 고운 검지 손가락이 붕대 위를 가볍게 쓸었다. 난 네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딱히 필요는 없었다. 나는 네 손가락을 타고 전해 들어오는 네 위로, 네 절망, 네 사랑 모두 읽어 내었다. 그 뒤에 이어지지 않은 내 목소리가 도대체 어떤 말을 하려 했는지 너는 짐작하였음을, 그리하여 슬퍼하고 있음을, 나는 알게 되었고 그것을 즐겼다. 네가 절망을 느끼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한 마디 덧붙였다. 이것이 너를 나와 같이 나락으로, 네 전부는 아니더라도 네 마음만은 이 순간만은 나락으로 끌어 들일 수 있기를 바랐다.

 

난 나쁘지 않아.
그냥, 그냥 네가 나처럼 외롭길 바랄 뿐이야.

 

"사랑,"
"……."
"증오."
"종대야."
"결국 뭐가 남을까."

 

네 마음 속과 내 마음 속에
대체 뭐가 남을까?

 

내 손을 잠시 쥐었다가, 다친 것을 자신이 방금 치료했다는 사실을 붕대의 감촉으로 자각했는지 황급히 손을 뗀다. 그리고 다시 부드러운 손가락이 손등을 문지른다. 정작 닿는 것은 네가 아니라 붕대임에도 너는 직접 나를 만지는 것처럼 소중하고 신중하게 붕대 위에 손가락으로 마른 그림을 그려 나갔다. 나는 여전히 그 무엇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어둠과 손을 잡고 나는 어둠 속에서 어둠 같은 춤을 추었다. 그 동안 너는 나를 그리워 하겠지. 그 예전의 나를, 두 눈에 너만 담을 줄 아는 나를.
그런데 말야, 그 앤 이미 죽었어. 남은 건 나 뿐이야. 널 사랑할 줄도 알지만 증오할 줄도 아는 나 뿐이야. 네가 바라는, 너를 사랑하기만 하는 바보 같은 김종대는 죽었어. 저기, 있지. 그래서 말인데.

 

백현아
우리 마음 속에 남은 게
서로 다르다면
재밌겠다, 그치?

 

 

정말 재밋갯내 내 글은 노잼인대 히하하ㅣㅓ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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