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D/하이큐

[다이스가] 코우시가 구질구질

 

다이치. 나야, 스가와라.

 

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가 전화를 받아 주었다는 자체만으로 기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미 눈물이 났다. 수화기에 입을 바짝 대고 반응 없는 상대를 향해, 수화기에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정말 미안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네가 싫어할 거 아는데, 근데 너무 힘들어서 전화했어.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작게 웅얼거리는 목소리에는 울음이 가득 차 있었고 그마저도 온전히 내지 못하여 뚝뚝 끊겼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눈에 힘을 주고 입술을 꼭 깨물었지만 결국 그 다물린 입술 새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울기까지 하면 다이치가 정말 싫어할 거야. 소리는 내지 않으려 이를 악 물었다. 엄마에게 혼나는 와중에, 울면 더 혼날까봐 울지 않는 척 하는 일곱 살 꼬마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울음이 입 안에서 뱅뱅 맴돌았다.

얼마 못 가 안간힘을 쓰며 꼭꼭 막았던 입을 그냥, 살짝 벌렸다. 숨을 크게 들이쉬자 눅눅한 공기가 폐 안 가득 스몄다. 말을 해야 했다.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전화가 끊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 머릿속으로 정리해 놓았던, 마음을 전할 기회가 생긴다면 해야 할 말들은 죄다 잊어버렸지만 뭐라도 말해야 했다. 그래서 가장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다이치, 나 부탁이 있어.

나랑 한 번만 만나주면 안 될까?

 

그 의미는 전달되었겠지만 듣기 싫게 미끄러지는 목소리 그리고 뭉그러지는 발음, 자신의 귀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은 얼굴은 엉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나란 애는 도대체가. 항상 그랬지만, 다이치에게 자꾸 안 좋은 모습만 보인다. 이제 충분하잖아.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나도 예쁜 목소리로 말하고 싶단 말이야. 울고 있는 목소리는 하나도 아름답지 않다.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 무릎에 걸친 반바지 자락을 세게 움켰다. 손톱에 허벅지가 쓸려 따가웠지만 주제에 아픔을 느낀다는 것도 싫었다. 다이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전화를 끊어버릴 것 같아서 무서웠다. 공포가 엄습해서 그냥 아무렇게나 지껄였다. ‘싫어’라는 답이 돌아오지 못하게끔, 착한 다이치가 날 거절할 수 없게끔 가장 불쌍하고 가장 처량한 목소리로 쉼 없이 말했다. 다이치가 대꾸할 틈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무서웠다.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보구 마음 접을게. 아니, 그러진 못하겠지만, 그치만 노력할게. 나 너 안 보니까 죽을 것 같단 말이야. 다이치, 너가 없으니까 못 살겠어. 나 마음이 너무 아파. 넌 잘 살고 있는데 자꾸 이래서 미안한데, 진짜 미안한데, 한 번만 내 생각 해 주면 안 돼? 부탁이야, 한 번만 얼굴 보여주라…

 

말끝을 흐렸다. 손에 땀이 나 휴대폰이 미끄러져 곤두박질쳤다. 그것을 잡고 있다거나 잽싸게 받아낼, 혹은 허리를 굽혀 주울 기력이 없어 그냥 멍하니 그것을 바라봤다. 수직으로 바닥과 충돌한 휴대폰은 그 화면이 천장을 향하게끔 되어 있었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휴대폰 화면은 새까맸다. 애초에 다이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새까맣고 새까만 화면에 대고 새까맣고 새까맣게 타들어 버린 마음이 중얼거렸던 진심은 그에게 닿기조차 못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스르륵 주저앉았다. 누구를 향해 무엇을 위해.

 

이는 스가와라가 다이치와 헤어진 지 꼬박 사 일 째 되는 날이었다. 스가와라가 잠에 들지 못한 지 꼬박 사 일 째 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