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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히로아카

[데쿠캇] 낙엽은 지지 않는다


사랑한다고 했다. 다 거짓말이다.

기다린다고 했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낙엽은 이미 져 버렸기 때문에 낙엽인데.


[데쿠캇] 낙엽은 지지 않는다

* 오메가버스 무개성 학원물


오메가는 더럽다. 하잖다. 얻어맞고 강간 당해도 할 말이 없다. 있어도 해서는 안 된다. 죽는다. 그 누구도 구원해주지 않고 그 누구도 가엾이 여기지 않는 세상에서 죽임을 당해 그 쓸모없는 인생조차 이어나가지 못하게 된다. 오메가는 죽을 만큼 싫지만 그래도 죽이지는 않는다. 나는 죽음이 무섭다. 나는 나를 죽일 수 없다.


"아, 안녕 캇쨩!"


나는 알파도 싫다. 다 꺼졌으면 좋겠어. 옆에만 지나가면 오메가 레이더라도 있는 마냥 고개를 휙휙 돌리고, 내 몸에서 무슨 냄새라도 나는 듯 콧구멍을 벌름이는 그런 짐승같은 새끼들은 죄다 뒤져야 해.


"오늘, 오늘도 예뻐. 이따 찾아갈게!"


너도 그렇지 않은 척 상냥하게 웃으면서 다가오지 말고 옥상에서 원찬스 다이빙이나 해라.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얼굴이었다. 실실 웃고 있는 주제에 속은 새카맣지. 차라리 따먹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을 터였다. 구역질이 났다.


"캇쨩!"

"……."

"스마일! 웃는 게 예쁘니까."


제 입술 끝을 쭉 잡아 늘리며 헛소리를 하는 녀석을 무시하는 귀찮은 일이 세 달이 넘게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죽어 버리라고 꺼지라고 그렇게 지랄을 했는데, 녀석은 풀이 죽은 채 사라지더니 금방 돌아와 뒷문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무언가 내가 좋아하는 게 든 까만 비닐봉지를 흔들며 생글생글 웃는 얼굴은, 진심으로,


"토할 것 같아."


짜증난다.

짜증났고, 짜증나. 「나 계속 캇, 아니. 바쿠고 군을 지켜봤어.」 부끄러운 척 몸을 배배 꼬며 다가와 건넨 첫 마디부터 「카, 캇쨩이라고 불러도 될까?」 그 역겨운 애칭 「캇쨩, 알아줬으면 좋겠어. 나, 캇쨩을 좋아하고 있어.」 처음 울면서 꺼지라고 했을 때 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로 했던 쓰레기 같은 고백까지.

꽤 공을 들이고 있다 싶었다. 때만 되면 엎어뜨릴 줄 알았는데 녀석이 졸졸 따라와 둘만 있던 좁은 골목에서도 등신 같이 웃으면서 꼬리만 살랑살랑. 아닌 척 했지만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는데 집 앞에서 그럼 나 갈게 캇쨩, 하고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힘이 탁 풀려 쓰러지듯 넘어져버렸다. 그게 삼 개월 동안 반복되고, 사실 마음을 조금 놓았다간 믿어 버리게 될 것 같아서 싫다. 나는 아무도, 죽을 때까지 믿지 않을 거야.


***


쿵쿵쿵쿵, 시끄러운 소리. 안 그래도 머리는 지끈거리고 눈앞은 팽팽 돌고. 거기에 소음까지 얹으면 대체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입술을 꾹 깨물고 움직이지 않았다. 몸에 칭칭 두르고 있던 이불을 더 세게 쥐고 목끝까지 꼼꼼히 여미었다. 덜덜 떨리는 손이 이불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나갈 수 없었을 뿐더러 나가서도 안 됐다. 어떤 알파가 냄새를 맡고 온 걸 수도 있다. 아니, 아마 그럴 거야.


"아, 씨발…."


숨에서 훅훅 끼쳐오는 열기에 죽을 것 같았다. 온 공기가 더웠다. 창문을 전부 열어젖히고 싶었다. 하지만 일층인걸, 집 안으로 뭐가 들어올지 몰라. 열이 홧홧하게 오르는 눈을 꾸욱 감았다 떴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010-0715-0420]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하지만 익숙했다. 누군지 알아. 화면이 켜져서 확인한 시각, 그 새끼가 같이 학교 가자고 찾아오는 시각. 순간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알파.

알파잖아, 쟤. 알파잖아.

알파잖아, 알파. 알파야. 알파잖아. 응? 알파잖아.


무서워. 무서워. 이가 딱딱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숨이 거칠어졌다. 그리고 우습게도 내 손은 전화를 받아버렸다. 알파라서 받았다. 알파라는 생각에 받았다. 무서워서 그래서 죽고 싶은데 천박한 오메가는 그 생각에 흥분해버렸다. 빈 속에 억제제를 들이부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캇쨩?]


놀란 목소리였다. 처음으로 듣는 수화기 너머 네 목소리였다. 눈물이 났다. 네 목소리를 통해 나오는 내 이름을 듣자마자 발기했다. 죽고 싶었다. 죽이고 싶었다. 나를, 나를, 나를. 그렇지만 할 수 없는 게 가장 수치스러웠다. 훌쩍이는 소리를 들었는지 네 목소리가 조금 걱정스러운 기색을 띄었다.


[캇쨩, 아파?]

"내, 생일."

[응?]

"비밀번호…."


그리고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바닥에 처박아 아마 깨졌을 거야.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죽을 거야. 죽을 거야.

망할 오메가년한테 히트싸이클은 피할 수 없는 나락이었다. 스스로의 위치를 실감하고 좆같은 절제력에 허덕이며 효과도 없는 약을 씹어대는. 이래서 주변에 알파를 두면 안 됐다. 두고 싶어서 둔 것도 아니지만, 괜한 후회가 밀려왔다. 편해지고 싶어. 힘들기 싫어.


뱃속이 불타는 느낌에 새벽같이 일어나 기다시피 해서 남아있는 약을 털어넣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다만 조금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 느낌. 언제나 그것만을 위해 약을 먹고 있다. 오래, 그렇지만 훅 끼쳐오지 않는 발정. 그거면 됐다. 집밖을 뛰쳐나가 알파의 다리에 뺨을 부비며 침을 줄줄 흘려대지만 않으면 됐다. 그랬다. 그랬지만, 정말 그거면 됐지만


"캇쨩!"


오늘은 나 정말 최악이야.


"아, 캇쨩."


비밀번호를 치는 소리, 후닥닥 집 안으로 들어오는 다급한 발소리, 그리고 우뚝 멈춰 선 너. 나는 대답도 않고 미동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눈물이 자꾸 뺨을 적시고 입술 안으로 스몄다. 짰다. 코를 훌쩍이자 다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네 표정이, 평소와 다를 네 표정이 보기 싫었다. 아마 욕정에 찌들었을.


"이제 됐어… 다 필요없어. 좋겠네. 기회를 내가 줬어. 발정난 오메가를 쑤실 기회를 알파한테 줘버렸어. 야아, 다 끝났어. 이제 다시 혼자, 귀찮은 거 사라지고 좋네…"


녀석이 소파 위 내 옆에 앉는 게 느껴졌다. 이불이 녀석에게 깔려 당겨졌다.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끌어당겼다. 너는 내가 중얼거리는 것을 전부 듣고 있었다. 너는 살짝 밭은 숨을 내뱉고 있었다. 아니, 난가? 모두 내 소리인가? 너는? 너는 어떻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상태가 평소보다 안 좋은 것 같다. 이상한 생각만 하고 있어. 방금 전 집 안을 가득 메운 알파향 때문인 것 같다. 잘 몰랐는데 진하고, 쓴 향기. 콧속에 자꾸 밀려들어와 힘들었다. 숨이 막혀서 입을 더 크게 벌렸다. 내가 듣기에도 기분 나쁜 숨소리.


"캇쨩."


그 숨소리를 뚫고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싫어, 좋아. 싫어, 싫어. 그치만 좋아. 목소리, 향기보다 목소리가 더 힘들었다. 어깨를 움츠렸다. 어딘가로 파묻히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나 혼자. 하지만 다시 혼자가 되는 건 싫은걸, 나약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듣고 싶지 않았다.


"힘들었지."

"……."

"아팠지, 내 사랑."


웃겼다. 너는 이불을 걷어내고 옷을 벗기지 않았다. 흘러내린 이불을 다시 끌러주고 땀으로 축축할 머리카락을 쓸었다. 애달픈 목소리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사랑? 사랑? 웃기고 앉아있네. 그렇지만 눈물이 났다. 몸이 뜨거워서가 아니었다. 어지러워서가 아니었다. 그냥 눈물이 났다. 히트싸이클이라서 눈물샘도 이상해진 거야.


"이러고 있으면 조금 괜찮을까?"


그리고 제일 이상한 건 너다.


"놔라."

"어때?"

"…그러고 있어."

"응."


아냐, 어쩌면 나일지도. 그렇게 녀석의 목소리에 녀석의 향기에 녀석의 존재에 허덕이고 있었으면서 그 팔이 이불 위로 나를 끌어안았음을 느끼자마자 놀랍도록 모든 게 편해졌다. 기분 나빠. 기분 좋아. 눈물은 멎지 않았다. 이유는 나도 몰랐다. 네가 웃는 소리까지도, 열기로 찝찝하고 숨 막히는 집 안에서 그 웃음 소리만큼은 상쾌했다.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짜증나. 싫어. 그치만 좋아.


"저어, 캇쨩."


너는 무언가를 잔뜩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툭 건드리면 펑 터질 것 같은.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너는. 발정난 오메가를 앞에 두고 너는 참고 있었다. 진짜 웃기는 녀석이야. 알파답지 않은 알파, 정말로. 녀석은 조금 망설이더니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낙엽은 지지 않아. 알고 있어?"

"…그럼 낙엽이 아니잖아, 등신아."

"그러네."


너는 내가 대답을 해서 기쁜 건지 아니면 대답이 웃겼던지 소리내어 웃었다. 아까는 몰랐는데 웃음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척 고개를 들어 네 어깨에 뺨을 기댔다. 


"낙엽은."

"응."

"이미 져 버렸기 때문에 낙엽이야."

"안 졌어, 캇쨩."

"…그래."


저건 모르겠지만 딱 하나 인정하자면, 기분은 확실히 나아졌다.



낙엽의 꽃말, 기다림.

나는 너를 계속 기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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