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원물
* 문스독 60분 전력 <발렌타인 데이>
“받아라.”
“나 주는 거야?”
나카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맞추지는 않았으나 똑똑히 듣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사랑해 마지않는 목소리를 말이다. 비뚤어진 시선은 다자이의 발치에 꽂혀 있었다. 시야에 흐릿하게 들어오는 신발 한 쌍은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제 손에서 상자를 받아가고서도, 그리하여 용건이 끝났는데도 가만히 멈추어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다자이는, 나카하라가 무어라 더 말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알면서도 나카하라는 침묵했다. 달아빠진 말은 할 줄 모른다. 입을 열어봤자 기분만 상하게 할 것이다. 그것을 나카하라는 겁내고 있었다.
“츄야.”
“…….”
사실은, 대답을 건네는 것조차. 다자이에게 날이 선 말을 내뱉는 것만큼이나 저 자신이 아프게 될 것을 나카하라는 무서워하고 있었다. 왜 부르냐 묻는다면 그 뒤에 따라오는 말에 얼마나 상처 입을지. 그것을 상상하는 것도 나카하라에게는 힘겨웠다. 섣부르게, 가볍게 시작한 마음이 아니란 말이야. 나카하라는 주먹을 살그머니 쥐었다가, 몸을 떨며 폈다. 발을 들인 적이 손에 꼽는 부엌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 쓸 줄도 모르는 가스레인지와 사투를 벌이는 내내 손바닥이 멀쩡했을 리가 없다. 벌겋게 남은 화상 자국이 따끔거렸다. 다자이는 그 손의 움직임을 가만 주시하다 입을 열었다.
“네가 만든 거야?”
“샀, 샀어.”
“손 보여줘.”
일자로 다물린 입술은 그러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인다. 여전히 그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에 다자이의 표정을 알 수 없었지만, 알고 싶지 않았고 알고 싶었다. 나카하라는 손을 등 뒤로 숨긴다. 어린 아이가 빼앗기기 싫은 장난감을 숨기는 것처럼. 다자이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나카하라는 그 손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직접 만들었다는 것을 들키면 안 되었다. 다자이는 아마, 나카하라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동정심에 입을 맞추어줄지 모른다. 그것은 싫었다. 비참한 연애보다 외사랑이 낫다고, 그래서 나카하라는, 제가 다자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꽁꽁 감추려 드는 것이었다.
“싫어, 츄야?”
“응.”
“알았어.”
고마워. 다자이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의상 건네는 말임을 알아도 나카하라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것에도 가슴이 벅찼다. 다자이는 몸을 틀어 천천히 나카하라에게서 멀어진다. 가지 마. 함께 있어주면 안 돼? 입 안을 맴도는 말을 차마 뱉지 못한다. 나카하라는, 그와의 거리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눈물이 차오르는 것 같아서, 고개를 푹 숙였다. 점심시간은 끝나가고 있었고 전해줄 것을 전해주었으니 보내는 게 맞다. 하지만 왜 이리 서러운지. 사실은 바라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다자이도 저와 같은 마음이기를. 숨이 턱 막힌다. 그 순간 다자이의 눈이 다시 나카하라를 향한다. 츄야. 다른 어떤 이도 아닌 그의 목소리가 다시 나카하라를 부른다.
“네가 말하지 않으니까, 내가 말할게.”
나카하라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다자이의 웃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인가, 오랜만인 걸까. 어째선지 그런 기분이 드는 걸. 나카하라는 울음을 억지로 삼켰다. 발간 눈을, 발간 얼굴을, 온통 발갛게 물든 나카하라를 다자이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참 좋아서 나카하라는 저도 모르게 마주 웃고 만다.
“사랑해.”
그 사근사근한 속삭임이 왜 귓가에 파고 드는지. 그토록 듣고 싶던 말이었는데, 현실감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아 나카하라는 눈을 깜빡이기만 했다. 웃음이 조금씩 사라진다.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상황이지만 나카하라는 웃지 못했다. 정말이야? 나한테 하는 말이야? 물을 수도 없다. 아니라고 대답하면 어떡해. 아니라고, 내가 사랑하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나카하라는 생각을 멈추었다. 아니야, 맞아. 다자이는 나한테 사랑한다고 했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숨이 막힌다.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 나카하라는 입술을 살짝 벌렸다. 나카하라의 얼굴을 담은 눈이 곱게 휘어진다. 다정히 미소 짓는 입술 새로 다시금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ㅡ라고 말해주기를 바랐던 건 아니겠지.”
“…아, 응.”
“뭐어, 우리 츄야가 그럴 리가 없지. 이건 우정 초코?”
“그렇, 지, 뭐.”
다들 보는 앞에서 주면 자기들도 달라고, 할까봐. 간신히 트인 말문으로 더듬더듬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는다. 다자이가 안심이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진짜 날 좋아해서 준 거면 더러울 뻔했어. 오해해서 미안. 누군가 가슴에 방망이질을 치고 있는 것 같다. 나카하라는 어색하게 손사래 쳤다. 그럴 리 없잖아. 그치? 맛있게 먹을게. 그리고 다자이다운, 경쾌한 발걸음이 귀에 박힌다. 점점 작아진다. 다자이가 멀어진다. 뒷모습이 작아진다. 두 눈에서 사라진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다.
“하, 하하….”
억지로라도 웃지 않으면 울어 버릴 것 같아 웃음소리를 내어 보았다. 누군가 들었다면 미친 놈 취급을 받을 테지만 견딜 수가 없었다. 괜찮아? 저 자신에게 묻는, 떨리는 목소리에서 물기가 도저히 사라지지 않아 나카하라는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꾹꾹 눌렀다. 울면 안 돼, 울지 않아. 이럴 줄 알았잖아.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카하라는 한 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종이 친다. 종소리에 묻혀 자신에게도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듣는 이 없는 곳에서 의미 없는 인사말을 건넨다. 해피 발렌타인,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랐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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