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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문스독

[후쿠란] 애(爱)로 인한 애(哀)

* 조직원 X 고등학생

 

사랑 애, 슬플 애.

 

 

나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저 자학을 위한 말이 아니다. 치기 어린 말로 치부하기에는 나이를 무시할 수도 없지 않은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정상이 아냐, 나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아니라 선뜻 말할 수 없을 뿐더러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아저씨가 의사야?'

'그건 아니다만.'

'그럼 모르는 일이지이.'

 

그 어린 녀석은 당돌하게도 부정했다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샐쭉 웃는 얼굴을 사랑스러워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는커녕, 어떤 감정을 느끼는 척 해야 할지 나는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다.

감정이라는 것을 정의로 배우고 감정이라는 것을 느낄 줄 몰라 했다. 한참을 살아오며 할 줄 알게 된 것은 진심으로 무언가를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닌, 척. 기쁜 '척', 행복한 '척', 상대를 이해하며 복종하는 '척'. 인연을 쌓고자 깊숙하게 다가왔던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치 채고 떠났지만, 소중한 사람들은 아니었기에 미련은 없었다. 굳이 덧붙이자면 소중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아저씨, 나쁜 일 하는 사람이야?'

'왜 궁금해 하는 거지?'

'난 아저씨랑 친해지고 싶으니까!'

 

친해지고 싶다, 는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생각하며 나는 아이의 뺨을 쓰다듬었다.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었다. 내 이름은 란포고, 나를 보면 이렇게 토닥토닥 해주면 돼. 조잘거리며 내 손을 끌어 제 뺨에 가져다 대었던 소년이.

소년은, 그러니까ㅡ 란포는 나에게 감정을 가르쳐 주겠다 호언장담 했지만 인간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는 란포를 알게 된 뒤에도 직장 생활을 계속했다. 란포가 언급하였듯 나쁜 일, 그러니까 남의 목숨을 종이 조각처럼 휘두르는. 그런 일을 하면 못 쓴다고 란포를 만날 때마다 훈계를 들었지만 죄책감 하나 느끼지 못하여 나는 란포와 헤어진 뒤 대체로 세 명쯤을 더 죽였다.

 

'나 보고 싶었어?'

'다쳤군.'

'넘어졌어.'

'…조심해라.'

 

서로를 알게 된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 란포는 이곳저곳 다쳐 오기 시작했다. 방실 웃으며 오늘은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소매를 끄는 아이에게 나는 모르는 척 넘어가 주었지만 알고 있었다. 무(無)의 상태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병기와도 같은 부하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의도로 접근하는 기분 나쁜 꼬맹이, 상관들은 란포를 싫어했다. 그러니 보스가 시킨 일임은 곧바로 눈치 챘다. 란포에게 내가 무슨 영향을 받고 있는지는 그들에게 중요치 않았나 보다. 애석하게도 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는데.

나는 보스에게 말하지 않았다. 란포를 더 이상 만나지 않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래야 하지?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죽어가고 있다. 굳이 하나의 목숨을 살리려 귀찮은 걸음을 해야 하는 걸까. 끈덕지게 붙어 오는 고집 센 꼬맹이를 저지할 생각도 없었다. 가만히 놔 두는 게 편했으니.

 

그러나 보스의 방에서 란포를 봤을 때는 그것을 조금 후회했던 것도 같다.

 

"너의 아저씨에게 인사 해야지, 소년."

"안녕, 아저씨."

 

아니, 후회가 무엇인지. 다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한 마디였다. 나는 지금 후회를 하고 있어. 그것을 느끼고 있는 건지, 이 상황에서 그것을 느껴야 하기 때문에 떠올린 문장인지도 모른 채 란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란포는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마냥 웃고 있었다. 내가 저를 구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럴 수 있는 걸까.

나는 시선을 거두었다. 보스와 눈빛을 얽었다. 보스는 물었다. 소년을 도울 것인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보스는 다정하고 소름 끼치는 얼굴을 했다. 그 역한 것을 견디기 힘들어 나는 다시 란포를 보았다. 여전히 웃고 있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그렇다면 내 부하 주위를 맴도는 벌레 같은 친구를 처리해도 괜찮겠지."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란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대꾸했다. 아이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은 채였다. 묻고 싶었다. 네 웃음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아이를 잡아두고 있던 이가 그의 목덜미에 단도를 들이민다. 낮은 신음 소리, 그를 만나고서 한 번도 듣지 못한 낯선 음성. 그 소리가 귀에 닿았다. 그리고 나는 울었다. 운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찰나였다. 뺨을 타고 간지럽게 흐르는 것, 그리고 카페트에 생기는 얼룩. 모두 나의 눈물이라는 것에 나는 조금 놀랐다. 내가 놀랐다는 사실에마저 놀랐다. 그리고 평소처럼 네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저씨, 그거 사랑이야."

 

기쁨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소년 역시 아픔은 느낄 수 있는지 말끝을 조금 떨었다. 칼날은 살갗을 파고들었고 소년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피가 몽글몽글 솟아 은빛 날을 적신다. 소년은 우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웃는 것도 같았다. 눈물에 시야가 흐려져 무엇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소년의 목소리를 나는 듣는다. 아저씨가 우는 거, 슬픈 거.

 

"날 사랑해서 그런 거야."

"…그런가."

"응!"

 

소년의 말로 우리의 시답지 않은 대화는 끝났고, 웃는 얼굴은 곧 핏빛으로 물들 것이니 나는 눈을 감았다. 더 이상 숨소리도 존재하지 않는 적막한 공간. 나는 아이의 마지막 말을 믿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나는 슬프지 않아, 란포.

 

"후쿠자와 군."

"예."

"웃어보지 그래."

 

명령을 거역할 생각은 없다. 그래서 나는 웃었다. 벌어진 입술 새로 눈물이 스몄다. 보스는 이 상황에 만족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최선이지 않을까. 서글픈 웃음에, 저물어 가는 세상. 아이는 결국 나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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