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쿠캇] 내 거야! 8
(부제 : 이 새끼 원래 안 이랬잖아요)
* 원포올 완전 습득 후 히어로가 된 이즈쿠가 이전의 찌질미를 버리고 와악! 하는 성격의 미친 팔불출이 됐다는 미래날조
* 동거 중인 히어로 데쿠캇의 커퀴 일화 모음입니다
* 키리시마, 토도로키와 만난 상황에서의 과거 털이
8. 고백
이즈쿠가 카츠키를 피한지 팔일 째 아침. 웬일인지 아주 이른 시각 눈이 번쩍 떠져 이즈쿠는 평소보다 한참은 빨리 교실 문을 열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다는 별 거 아닌 생각에, 최근 며칠 중 가장 괜찮은 듯한 기분으로 교실에 머리를 들이밀었는데
"데쿠 너 이 새끼 잘 만났다."
"헉…."
저를 발견하고 손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씨익 웃는 카츠키와 눈이 마주쳤다. 그 웃음은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마치 사탄의 그것과 같아 이즈쿠는 순간 얼어붙었다. 하, 하하, 하하. 안녕, 캇쨩? 그 상태에서 빠르게 벗어난 이즈쿠는 부자연스럽게 웃는 주제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뒷걸음질 치려고 했다. 물론 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그의 관절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았지만.
"안녕 못 한다, 씨발아."
"억."
순간이동을 한 건지 어쩐건지 눈치도 못 챘는데 어느 순간 이즈쿠의 앞에 선 카츠키가 이즈쿠의 멱살을 꽉 쥐어잡았다. 이즈쿠는 제 코 앞에 있는 카츠키의 얼굴에 한 번, 억세게 멱살을 잡은 손에 두 번 놀랐다. 가까이서 보는 건 좋지만, 이 상황은 별로 안 좋은데…
이즈쿠는 울상을 지었다. 얀마, 니가 뭔데 그딴 표정이야?! 그 표정도 마음에 안 들었는지 카츠키가 버럭 소리를 질렀는데, 그러자 치약 냄새가 화악 끼쳐 이즈쿠는 저도 모르게 숨을 훅 들이쉬었다. 그리고 제 행동이 몹시도 변태 같았음을 인정하고 속으로 저를 마구 두들겨 팼다. 점점 이상해지는 이즈쿠의 표정에 카츠키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며 멱살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아, 아파 캇쨩."
"넌 좀 아파도 돼, 새꺄. 너 요새 나 피하더라? 데쿠 주제에?"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가버린 말에 내내 쩔쩔매기만 하던 이즈쿠는 갑자기 표정을 싹 굳혔다. 화가 났다. 캇쨩은 내가 왜 피했는지 알기나 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가 마음 고생한 건 모르지, 캇쨩? 그치? 그냥 너드 주제에 널 무시하는 것 같으니까 기분 나빴던 거지? 자기만 생각하는 카츠키가 밉고, 그런 카츠키를 좋아하는 마음이 불쌍하고, 팔일 간 시름시름 앓던 마음이 곪아 터지는 게 느껴져서 이즈쿠는 저도 모르게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뭐 어때서."
"뭐, 인마?"
"왜 그러는데, 대체. 나한테 신경도 안 썼잖아."
저렇게 대드는 이즈쿠는 오랜만이라 카츠키는 살짝 주춤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더욱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이즈쿠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몰라서 쳐 묻냐? 이즈쿠는 이렇게 화가 나는데도 입술이 닿을 만큼 가까워진 거리에 설렜다는 게 한심해서 기분이 더 내려앉았다.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얼굴을 향해 카츠키가 씹어먹듯 말을 뱉었다.
"왜냐면 새끼야, 내가 널 좋아하니까."
…
언제나 생각보다 말이 앞서는 바쿠고 카츠키,
일 쳤다.
그리고 그보다 느리게 말을 뒤따른 사고가 얼어붙은 카츠키에게 속삭였다.
일찍도 알았네.
씨발.
카츠키는 빠르게 손을 놓고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발에 걸리는 책상을 피해 비틀비틀 뒷걸음질 치던 카츠키는 교탁에 턱 부딪혀 멈춰 세워졌다. 이즈쿠는 화가 났다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은 채 굉장히 멍청해 보이는 표정으로 그 커다란 파급력을 가진 말을 머릿속에서 반복재생 했다.
왜냐면 새끼야, 내가 널 좋아하니까.
내가 널 좋아하니까.
좋아하니까.
좋아…
이즈쿠의 얼굴이 무언가 펑 터진 것처럼 붉게 익어버렸다.
"뭐, 뭐, 뭐, 뭐,"
"씨, 씨벌…"
카츠키는 입을 틀어막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눈가에 열이 올라 빠르게 눈을 깜빡이며 바닥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했다. 사실 고정되었다 할 수 없는 게, 눈앞이 어질어질 시야가 흔들흔들 했다. 손가락 틈 사이로 거칠어진 숨이 색색 새어나왔다. 미쳤다. 미쳤다. 미쳤다. 미쳤다. 제 정신이 아냐. 이건 진짜, 미친 거야. 물론 렉이라도 걸린 마냥 한 글자만 반복해서 말하는 이즈쿠 역시 멀쩡해 보이지는 않았다.
몇 분 가량 두 사람 모두 의식이 혼미한 상태로 있다가 순간 전기 충격이라도 맞은 듯 이즈쿠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마구 흔들리던 초점을,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 얼어붙어 있는 카츠키에게 맞추었다. 그리고 그를 향해 한 발짝 두 발짝 조심히 다가갔다. 누군가 제게 다가오고 있음을 눈치채면 포르르 달아나버리는 고양이에게 향하는 것처럼 이즈쿠는 발소리를 최대한 죽였다.
카츠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뭐, 뭐…'하며 병신같이 버벅대던 목소리 대신 발걸음 소리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그러나 후끈후끈한 교실을 채웠기 때문이다. 왜 오는 거야, 씨파알… 얼떨결에 게이 새끼가 된 마당에 좋은 꼴을 당하진 못할 것을 알지만, 그래서 확 튀어 버릴까 했지만 카츠키는 그것을 실행에 옮길 만큼 멀쩡하지 못했다. 눈을 살짝 떴다 희미하고 열기에 일렁이는 시야 속에 이즈쿠의 신발이 있었다. 카츠키는 눈을 도로 감았다. 될 대로 되라지. 데쿠 주제에 뭘 할 수 있겠어.
"캇쨩."
지나치게 작아서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차리지도 못할 목소리가 왜 이렇게 귀에 또렷이 박히는지. 카츠키는 곧이어 제 뺨을 살짝 건드리는 차가운 손가락에 어깨를 움츠렸다. 그답지 못한 소녀스러운 반응, 저도 모르게 알아채 버린 첫사랑의 열기가 꽤 대단한 모양이었다.
이즈쿠는 카츠키가 입을 막고 있는 손을 꽤나 부드러운 손길로 치워내고, 활활 타오르고 있는 뺨을 손바닥으로 완전히 감싸쥐었다. 여전히 질끈 감겨 있는 카츠키의 눈 위로 입술이 닿았다. 찬 손과 달리 입술은 지나치게 뜨거웠다. 입술이 닿은 곳에서 불이 날 것 같았다. 카츠키는 살짝 떨었다. 뭐지, 이거 뭐지. 잔뜩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카츠키는 그를 밀친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에 이즈쿠도 조금 놀랐다.
이즈쿠가 입술을 떼고 얼굴을 내려 카츠키와 코를 맞대었다. 코끝이 툭, 닿았다. 이즈쿠가 눈을 반쯤 감고는 아까보다 더 낮고, 더 작고, 열기 탓인지 지금 이 상황에 벅차오르는 탓인지 더 잠긴 목소리로
"나도 좋아해."
"……."
"어쩌면, 아주… 많이."
제 마음을 전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이즈쿠가 말할 때마다 숨결이 훅훅 끼쳐와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데, 저 말을 듣고 나니 정말로 정말로 이상해졌다. 그러니까, 나쁜 이상한 게 아니고… 몰라. 카츠키는 눈을 뜰까 고민했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겁이 났다. 어째선지 조금 긴장도 되고. 카츠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목울대가 일렁였다. 이즈쿠는 그것을 듣고 보고 숨이 턱 막혔다. 저 때문에 카츠키가 동요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금 많이 기뻤다.
하나, 둘, 셋 하면 뜨는 거야. 카츠키는 마음 속으로 천천히 수를 세었다. 하나, 둘, 셋. 그러나 눈을 뜨지 않았다. 뜰 수 없었다.
이즈쿠의 입술이 살며시 다가와 카츠키의 입술에 꾹 맞닿았기 때문이다.
이즈쿠의 입술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병신, 하고 속으로 욕했지만 카츠키의 입술도 마구 떨렸다. 카츠키가 좀 더 세게 눈을 감았다. 그러자 보이는 새까만 어둠이 환각처럼 요동쳤다. 맞닿은 입술 새로 열이 풀풀 나는 것 같았…
"지, 지금 신성한 교실에서 무얼 하는 건가!!!"
"…헉, 이이, 이, 이이다 군!"
"아오, 씨벌."
***
으하하하하하하하!!
웃지마, 키리시마 군.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퍽이나 아름답다.
그 이후에 어떻게 됐어?
이이다 군한테 들킨 다음에 말야? 뭐, 한참 잔소리 듣다가…
빡쳐서 키스했다. 노발대발 하더군.
뽀뽀였어, 캇쨩.
닥쳐, 그게 그거지.
어쨌든 적극적인 캇쨩 귀여웠지~
닥치라고.
그럼 너희 사귀는 걸 제일 먼저 안 건 이이다였네.
어쩌다 보니?
아, 김 빠진다. 내가 처음이 아니었다니~
니가 제일 늦었잖아, 병신머리.
눈치가 없어서 그래, 눈치가 없어서.
토도로키 너무해!
솔직히 그렇게 티를 냈는데 바로 못 알아차릴 수가 있어?
내가 뭘 했다고.
너 말고, 미도리야 말이야. 미도리야 장난 아니었지, 눈빛부터가.
저 새끼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그래서 싫어, 캇쨩?
아니, 좋다고.
토도로키, 저 새끼들 키스할 것 같은데… 하네.
별로다.
우와, 혀 보여.
진짜 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