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쿠사사죠/쿠사죠] 동거생

pdom1nt 2016. 5. 27. 16:09

* 동급생 영화 뒷이야기 날조

* 쿠사카베 히카루 X 사죠 리히토

 

 

나는 교토대학에 합격했다. 쿠사카베가 아무리 할 수 있다고 격려와 응원을 퍼부어 주어도 마음 속으로는 이번에도 그 때처럼 떨어질 거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는데, 어쨌든 붙어 버렸다. 아니, 붙었다. 쿠사카베가 옆에 있었기 때문인가 싶었다.

합격자 발표가 났을 때 쿠사카베는 울었다. 네가 왜 울어. 조금 타박을 주어도 그냥 그냥 눈물이 나, 하고 엉엉 울었다. 커다란 남고생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아이처럼 우는 모습은 생판 남이 보면 거의 공포스러울 지경이었겠지만 나는 그 모습이 오히려 사랑스러워서, 그래서 같이 울었다. 딱히 붙은 게 기뻐서 운 게 아니라 쿠사카베가 우니까. 하여튼.

쿠사카베는 이후로 두 번 더 울었다. 한 번은 내가 자취방을 구했다고 했을 때, 또 한 번은 내가 신칸센에 오를 때. 잘 가라고 했다가 가지 말라고 했다가 끝내는 훌쩍훌쩍 눈물을 터뜨리는 쿠사카베 탓에 기차를 놓칠 뻔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뒤로 하고 신칸센에 올랐다. 어쩔 수 없잖아, 일단은.

 

'나 없으면 기차 못 타잖아아아!!'

'신칸센은 괜찮아.'

'미워!! 나 두고 잘 가라지!?'

 

빽빽 소리치다 코를 팽 푸는 소리가 조금씩 희미해졌고 잠시 뒤 나는 그곳을 떠났다. 쿠사카베와 시작한, 사랑한, 쿠사카베가 있는 나의 집.

 

***

 

"역시 무리."

 

뻐근한 어깨를 휙휙 돌리며 아직도 한참은 더 정리해야 할 짐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쳐다보면 스스로 정리될 것도 아닌데 말야.

첫날에는 기차만 탔는데도 너무 힘들어서 도착하자마자 뻗었고, 다음날 아침 전날에 미처 보지 못했던 짐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경악하며 정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어떻게 반도 안 끝나냐고…."

 

나는 마침내 항복 선언을 하고 말았다. 하루 정리한 끝에 생겨난 빈 공간에 털퍼덕 드러눕고 반짝반짝 빛나는 형광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자 문득 생각난 얼굴이, 바보처럼 웃는 얼굴이,

 

"보고싶네."

 

쿠사카베, 보고싶어. 그 이름을 입 안으로 되뇌이자 긴 한숨이 입술 새로 흘러 나왔다. 삼 일 동안 연락 하나 없고, 너무한 거 아닌가.

물론 나 역시 연락을 하고 있지 않았다. 쿠사카베의 연락이 없어 오기가 생기기도 했으나, 지나친 피곤함도 그 이유가 되었다. 근 2년을 끊임없이 연락해왔고 사, 사, 사귀는 사이니까 괜찮겠지만 뭔가 삼 일 지나니 연락하기 머쓱하기도.

나의 첫 자취방은 방음이 안 좋은지 타닥타닥 복도를 뛰어가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것을 배경음악 삼아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며 눈을 멍하니 깜빡이다, 배경음악에 갑자기 추가된 초인종 소리에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내 손님인가? 다시 한 번 들려온 벨소리, 내 손님이다.

 

누구세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은 채로 목소리만 높여 물었다. 무언가에 억눌린 듯 혹은 무언가를 입에 물고 있는 듯 부자연스러운 목소리가 작게 대꾸했다. 택배입니다.

 

"잠시만요."

 

아직 짐이 덜 왔던가. 무거운 다리를 직직 끌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짐들을 헤쳐가며 현관으로 기어갔다. 하지만 문을 열기 위해서는 결국 일어나야 했다. 흡, 숨을 들이키며 한 번에 벌떡 일어섰더니 몸을 지탱하는 걸 잠시 쉬고 있던 다리가 휘청였다. 그 새를 못 참고 다시 띵동띵동, 시끄럽게 벨을 울려대는 택배 기사에 짜증스러운 표정이 나도 모르게 떠올랐다. 평소라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너무 피곤해서 이러는 거라며 자기합리화를 하고, 억지로 표정을 피려고 노력하며 손을 뻗어 잠금 장치를 해제했다. 그리고

 

"……."

 

갑자기 들이닥쳐온 무언가에 놀라 소리도 못 지르고 그에 밀려 뒤로 넘어졌다. 내 위로 덮쳐 온 그것은 다짜고짜 등을 세게 껴안았고, 입을 벌리고 눈을 크게 뜨고 어버버하며 정신을 못 차리던 나도 곧 그를 마주안았다.

나는 좋은 듯 아닌 듯한 괴상한 표정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 웃음소리를 들은 침입자도 덩달아 작게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웃음 섞인 목소리로 나는 그의 어깨에 턱을 대고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알고 왔어."

"난 사죠에 대해 모르는 게 없어."

"우리 서로 아무것도 모른다더니."

"시끄러."

 

사죠는 바보야. 이럴 때는 가만히 키스해주는 거라고.

툴툴거리며 몸을 뗀 쿠사카베가, 지금 여기에 있을 리가 없었던 쿠사카베가 어울리지도 않는 빨간 리본을 머리에 단 괴상한 차림으로 눈을 감고 입술을 쭉 내밀었다. 빨리. 왜 여기에 있느냐 물을 새도 주지 않고 칭얼칭얼.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 노려보다 싶이 하자 칭얼거림은 더 커졌다. 애도 아니고, 저게.

그래서 결국 사정 같은 건 나중에 듣자 싶어 그의 등에 머물러 있던 손을 올려 뒤통수를 당겼다. 그리고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자기가 해 달라고 했으면서 다시금 와락 달려드는 쿠사카베의 입술에 입을 맞추니 쿠사카베가 실실 웃는 것이 느껴진다.

금세 혀가 밀고 들어올 줄 알았건만 평소와는 달리 그저 입술만 가만히 맞대고 있는 쿠사카베에, 그 맞닿은 입술 새로 물었다. 왜 여기에 있어. 간질간질한 느낌에 키득키득 웃으며 쿠사카베 역시 입술을 붙인 채로 대꾸했다.

 

"사죠."

"응."

"사죠랑."

"응."

"같이 살려고."

 

어?

순간적으로 얼굴을 잔뜩 구기자, 곧 내가 자신을 밀어내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말하라고 닦달할 것임을 눈치챘는지 쿠사카베는 말을 마치자마자 다물려 있던 입술 새로 제 혀를 꾹 밀어넣었다. 입 안으로 급작스럽게 들어차는 혀에 말을 잇지 못하게 되어 버렸고, 혀를 감싸 올리는 감각에 할 말을 전부 잊어버릴 것 같았다.

그러기 전에 어깨를 툭 치며 비키라는 모션을 취하자 입술을 떼고 '집중, 사죠?'하고서는 뺨을 붙들고 다시 입을 맞춰오는 쿠사카베에, 아무래도 좋겠다 싶어 눈을 감아 버렸다. 어쨌든 말야, 네가 옆에 있으니까 괜찮을 것도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