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샤를] 내기
bgm : 월간순정 노자키군 op - 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 친친세대, 친세대 형제 설정
“양심이 있다면 한 번 손을 얹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떠냐.”
“양심 있는 게 네 꼴이라면 없는 게 낫지.”
“나처럼 될 수 있는 건 무지 행운이라고? 넌 영원히 불가능할 테지만.”
“다행이네. 너처럼 될 가능성이 있었다면 난 자살했을 거야.”
리무스 루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한숨을 푹푹 내쉬며, 그들이 한심해 돌아가실 지경이라는 상태를 여실히 드러내면서도 깃펜을 바삐 놀리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제 친우를 시리우스 블랙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제임스 포터는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든 채 바라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저 대화 주인공들에 돌렸다. 이 둘이 잠시 리무스에게 시선을 준 사이에도 이 한심한 두 형님들은 다툼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들이 앉아 있는 소파 뒤에서, 그 등받이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 시리우스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화의 흐름을 끊었다.
“그게 뭐가 중요해. 그냥 살아.”
그야 시리우스 너는 잘생겼으니까 상관 없겠지. 툴툴거리는 샤를루스 포터의 대답에 시리우스는 눈을 슬쩍 감고 고개를 대강 끄덕이며 수긍했다. 어쩔 수 없는 거야, 그건. 직접 말하지는 않았으나 금방이라도 그렇게 말할 것 같은 재수 없는 은회색 눈동자에 샤를루스는 괜히 칭찬했다며 이를 바드득 갈았다. 제임스가 한심한 제 형의 어깨를 탁탁 치며 낄낄 웃었다. 그치만 멍멍이 자식 잘생긴 건 부정할 수 없잖습니까, 형님. 갑자기 제 동생을 칭찬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그리핀도르 학우들에게 슬리데린 이방인은 눈을 부라리며 애꿎은 화살을 시리우스에게 돌렸다.ㅡ그저 이야기에 끼고 싶었던 걸 수도.
“시리우스 넌 블랙 가의 차남인 주제에 이 장남을 어시스트하지 않고 뭐하는 거냐.”
“그딴 블랙 뒤져 버려.”
지나치게 시리우스다운 대답. 동시에 웃음이 터진 포터 형제를 향해 고개를 홱 돌리고 사납게 눈을 부라린 오리온 블랙이, 팔짱을 턱 끼고 시리우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단단히 삐진 티가 잔뜩 묻어나는 말투로 말했다.
“역시 그리핀도르는 상종할 게 못 돼.”
“고귀하신 순수혈통께서는 제발 여기서 꺼져줘. 오염된다구.”
그 때 리무스가 테이블 밑에서 두꺼운 양피지 뭉텅이를 하나 더 꺼내며 상냥한 어투로, 오리온 대신 시리우스에게 대꾸했다. 여기서 나 말고 순수혈통이 아닌 건 누구야? 시리우스는 오리온 뒤에 나른하게 서 있던 몸을 일으켜 재빠르게 리무스에게 다가가 헤드락을 걸었다. 그런 뜻이 아니잖아, 무니! 장난스러운 어조로 위협하듯 으르렁거리자 리무스가 과장되게 켁켁거리며 ‘자꾸 그러시면 보름달에 늑대한테 혼날지도 모른다고, 블랙 군?’하며 제 목을 조이고 있는 시리우스의 팔을 손바닥으로 아프지 않게 탁탁 쳤다.
“보름달? 늑대? 니네 이상한 짓 하지.”
“내가 형인 줄 알아? 신경 꺼.”
“은혜도 모르는 자식.”
여기서 한 마디 더 했다간 저 쫌생이 같은 형이 완전히 토라질 것 같으니 시리우스는 그만 개기기로 하고, 리무스를 포박했던 팔을 풀고 얌전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외모만 보았을 때는, 다들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시리우스 형이니만큼 잘생기기도 무지하게 잘생겼으며 사소한 것은 신경 쓰지 않고 그 누구보다 마이웨이 정신을 잘 실천할 것 같은 이 형님. 사실 자그마한 것 하나하나 마음속에 담아두고 뒤끝도 장난 아니게 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리무스 역시 잠시 내려놓았던 깃펜을 꼭 쥐고 그를 외면했다.
어쨌든 이제 와서 밝힐 것은 아니지만, 시리우스와 리무스에게 이미 삐질 대로 삐진 오리온과 그런 오리온을 향해 혀를 쯧쯧 차고 있는 샤를루스가 아까부터 싸우고 있던 이유는 그것이었다.
“속이 그렇게 좁으니까 얼굴도 못나지는 거야.”
“너한테 들을 말은 아냐. 넌 인격 장애잖아.”
“얼굴은 인격을 반영한다고 했어. 그렇게 치면 인격 장애는 너야.”
도대체 누가 더 잘생겼는가?
갑작스레 나타난 이 한 쟁점을 가지고 자칭 그리핀도르 대표 샤를루스와 역시 자칭 슬리데린 대표 오리온은 한 시간이 넘도록 싸우고 있던 것이었다. 그 한 시간 동안 리무스는 마법약 숙제의 분량을 양피지로 12장 초과했는데 말이다.
정말 형님들 교양이라고는. 제임스가 한숨을 푹 내쉬며, 제 형 옆에서 시리우스에게로 몸을 피했다. 제임스는 휴게실의 모두에게 들릴 만한 목소리로, 시리우스의 귀에 입을 바싹 들이대고 속삭였다. 저 옆에 계속 있으면 멍청멍청 바이러스에 감염될 게 분명해. 시리우스는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네가 할 말은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은 동의해줄게, 프롱스. 뭬야?! 보시다시피 그 동생들도 별 다를 것은 없다.
샤를루스가 제임스를 향해 몸을 확 틀고 ‘죽고 싶지?’로 밖에 해석할 수 없는 눈빛을 마구 쏘아 대었다. 그 눈빛의 포용 범위에는 당연히 시리우스도 들어가 있었다. 그 옆에서 오리온은, 아까의 복수라도 되는 것 마냥 신나게 웃어대고 있었다. 오리온은 몰랐다. ‘저 옆’이라는 것은 ‘오리온과 샤를루스의 옆’을 칭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았다간 오리온은 이 짧은 시간 동안 세 명에게나 삐진 어른스러운 육학년 학생이 되는 것이니 그냥 모르게 두도록 하자.
샤를루스는 다시 몸을 바로 하고 팔짱을 턱 꼈다. 저 어린 녀석들과 놀아주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남아 있으니까 말야. 샤를루스는 정말 피곤해 죽겠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내가 더 잘생겼다는 걸 납득할 거야?
“네가 다시 태어나면.”
즉각 떨어지는 대답에 샤를루스는 반쯤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벌떡 일어나 오리온을 노려보았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얼굴에 오리온은 약간 기가 찬 듯 웃어 보이고는 덩달아 일어나 샤를루스를 마주했다. 마주한 시선 사이에 스파크가 보이는 듯 했다. 샤를루스는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가 잘생겼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심지어는 입 밖으로 그 생각을 내보낼 것 같아서 불만스럽게 다물고 있던 입술을 열어 ‘샤를루스 포터가 더 잘생긴 이유’ 102번째를 내뱉었다.
“난.”
“뭐.”
“남자도 홀릴 수 있다!”
“웃기시네.”
“진짜거든?! 나 남자한테 고백 무지무지 많이 받아봤거든!”
“그게 자랑이냐!! 그렇지만 나도다!!”
남자한테 고백 받았다는 사실, 썩 유쾌하진 않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었지만 오리온은 샤를루스에게만큼은 지고 싶지 않아 잘 덮어 두었던 비밀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오리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양탄자 위로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시끄럽게 웃어대는 동생들을 무시하고 둘은 생각했다.
‘제법인데….’
이제 시리우스와 제임스는 호흡곤란까지 일으킬 기세였다. 그에 반해 세상 누구보다 더 엄숙한 표정을 한 그들의 형님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이는 결판을 짓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처사라고,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다독였다.
“그렇다면 누가 먼저 반하는지 내기다!!”
“좋아!!”
샤를루스는 ‘미친 새끼야!!’ 제게 날아들 욕설과 구타에 대비한 변명을 머릿속에 200가지 정도 만들어 놓았지만, 오리온은 그 못지않게 흥분해 있었기 때문에 앞뒤 가릴 것 없이 승낙해 버렸다. 시리우스와 제임스의 웃음소리는 호그와트의 꼭대기 층 천장을 뚫을 만큼 커졌다. 시리우스는 헐떡이며 복통을 호소했고, 제임스는 빠질 것 같은 턱관절을 부여잡고 울면서 웃었다. 그렇지만 형님들은 세상 그 누구보다 진지했다. 마치 어둠의 마왕과 살아남은 소년이 대립한다면 저런 표정을 지을까 싶을 정도로. 샤를루스의 제안에 오리온이 구체적으로 덧붙였다.
“반한 순간 숨기지 않고 말하기로.”
“당연하지. 사나이의 인생을 걸겠다.”
이 계약이 성립되었다는 증표로, 오리온 블랙과 샤를루스 포터는 손을 한 쪽씩 내밀어 악수했다. 시리우스랑 제임스는 웃다 지쳐 죽었는지 양탄자에 엎드려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제임스가 조금씩 움찔거리며 살아 있다는 것만 보여주고 있었다.
“그럼 그 기념으로 데려다 주지.”
“혼자 갈 수 있어.”
“하지만 난 네가 나한테 반하도록 최선을 다할 거야. 가자.”
샤를루스는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멋진 표정을 지어 보이며 휴게실 입구에 서 손을 내밀었다. 오리온은 그 손을 못 본 척 그 옆으로 스르륵 지나갔다. 샤를루스는 구멍을 빠져 나가는 오리온의 엉덩이를 머쓱하게 쳐다보다가, 사각사각 기분 좋은 깃펜 소리를 휴게실에 꼭꼭 채우고 있는 리무스의 질문에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선배, 그런데요.
“도대체 뭘 건 내기예요?”
“사나이의 자존심이지!”
“…으음.”
당연하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어 보이는 샤를루스에게 리무스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진짜 한심한 족속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