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무] My lovely fooooooool
"좋아해."
그리고 그는 고개를 숙였다. 그것에는 그 한 마디 했다고 벅차 오르는 가슴을 숨기기 위함과 그 고백 상대의 반응을 살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고귀한 블랙 가의 자제 분께서 하찮은 서민 따위에 약한 모습을 보이다니 가문의 수치라고, 제임스가 봤다면 확실히 잔뜩 놀림 받았을 테지만 시리우스에게 지금 그것까지 신경 쓸 정신은 없었다.
보고 있지는 않지만, 리무스가 입술을 두어 번 열었다 닫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가 고민하는 그 찰나의 순간이 시리우스에게는 억겁 이상으로 느껴졌다. 시리우스는 애써 얼굴에 아무 감정도 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잠시 그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어, 음, 미안."
듣고 싶었으나 듣고 싶지 않았던 그 대답이 듣고 싶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 버린 것을 확인하고 무너져 버렸다.
그 한 마디를, 시리우스의 마음을 와르르 무너뜨린 그 한 마디를 던지고 나서 리무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잠자코 기다렸다. 제 대답을 들은, 제 앞의 이 남자가 고개를 들고 절 바라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한참 동안 기다린 결과 리무스는 알아챘다. 제 친우는 스스로 고갤 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울어?"
"……."
"진짜, 진짜 울어?"
울고 있었다. 시리우스가 울고 있다. 가족들에게 그 어떤 냉대를 받아도 주변 이들에게 시샘 섞인 비난을 받아도 그저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그가, 우는 대신 더 잘난 모습 멋진 모습만을 뽐냈던 그가 지금, 운다. 나 때문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망할 제임스 녀석 때문이지. 리무스가 마른 세수를 하며 절망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제임스 개자식…."
시리우스는 이제 울지 않는 척조차 포기했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바닥에 툭 투둑 떨어 뜨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콧대 높은 왕자님은 마지막 자존심을 위해선지 울음 소리만은 어금니 꽉 깨물고 참고자 했다. 그렇기 때문에 리무스가 작게 내뱉은, 이곳에 없는 제 3자에 대한 욕설은 시리우스에게 닿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제 사랑의 손짓 하나에 모든 노력을 무산시키고 새어 나와 버렸다.
"건, 들지 마."
"울지 마."
"제발, 가줘."
"미안해."
더 듣고 싶지 않아. 처음 듣는 흐느낌 섞인, 약한 그의 목소리에 되려 리무스가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시리우스의 어깨를 살며시 쓸던 고운 손가락은 눈물에 흠뻑 젖은 하얀 뺨에 닿았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손길에 울음 소리는 조금 더 커졌고 처량해졌다.
"시리우스."
"……."
"시리우스, 미안해."
"하지, 말, 라고."
시리우스는 제 가엾은 마음을 팽개친 그러나 그럴 자격이 있는 리무스가, 마음이 여리고 착하기가 그 누구와 비할 바 못 되어 다시 한 번 거절에 대한 사과를 건네는 것이라 생각했다. 리무스는 다시 한 번 한숨을 푸욱. 리무스는 손을 뻗어 차분히 가라앉은 시리우스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제임스가,"
"……."
"그 망할 자식이 바로 받아주지 말래서."
"…뭐?"
갑자기 고개를 확 쳐든 시리우스 탓에 리무스가 놀라 한 발짝 물러섰다. 눈두덩이는 발갛게 짓물렀고, 눈시울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고, 코 끝도 붉게 물든 그 물기 가득한 얼굴은 그럼에도 잘생기기가 이루 말할 것 없어 리무스는 순간 할 말을 잊을 뻔 했다. 그러나 설명을 요하는, 금세 처량함에서 날카로움으로 분위기가 반전된 그 진회색 눈동자에 리무스는 말을 끊지 못하고 그것을 더듬더듬 이어냈다. 아니, 바로 받아주면, 음, 네가 나 쉽게 볼지도 모른다고.
시리우스는 입술을 살짝 벌리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눈이라도 깜빡일 법 한데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가만히, 고요히 그렇게 서 있었다. 이번에는 그 시선을 다 감당하지 못한 리무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머리 위에서 그 어떤 말도 들려오지 않고, 들려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리무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리무스의 말에는 자신을 사랑하는,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 남자가 제 마음을 듣기도 전에 훌쩍 떠나갈 것 같은 침묵이라 무서워 조금 급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 그러니까, 그러니까, 한 번 더 고백하면 받아줄게."
"……."
"좋아한다고 한 번만 더 말해주면,"
"좋아해."
"……."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들려온, 울어서 코맹맹이 소리가 나지만 그래도 단호하고 단정한 그 음성에 리무스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본인이 말해달라 했으면서 막상 다시 그 말을 듣게 되니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몰라 눈만 깜빡이다, 내가 어떻게든 대답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입술을 열었다. 그러나 시리우스가 조금 더 빨랐다. 리무스,
"좋아해."
"으응."
"사랑해."
리무스는 그만 웃어 버렸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될까 간절히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 같은 표정, 익숙치 않아서. 리무스는 시리우스에게 한 발 다가갔다. 제 손에 툭툭 닿아오는 그 길쭉길쭉한 손가락을, 두 손가락으로 살며시 붙들었다. 고개를 들지 않고, 시리우스의 발 끝을 내려다 보며 리무스는 대꾸했다.
"음, 나도."
"너도?"
"좋아한다고."
그 목소리는 봄을 닮았고 사랑을 닮았고 고개를 들고 얼굴을 마주하며 웃어주는 그 얼굴도 봄을 닮았고 사랑을 닮아서 시리우스는 자신이 울었다는 사실을 잊고 그를 따라 웃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