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로] 사고 좀 그만 쳐!
천사 같은 악마 X 악마 같은 천사
"헤이, 안녕."
"…누구세요?"
"난 천사야. 네 울음소리를 듣고 천국에서 슝 날아왔어."
순간 아이의 얼굴에 번진 미소에 저를 천사라고 소개한 남자는 저도 덩달아 빙그레 웃어 보였다. 강아지가 기분이 좋을 때면 꼬리를 마구 흔드는 것처럼, 남자의 날개뼈에서 솟아 나온 하이얀 깃털로 마구 장식된 날개가 살짝 팔락였다. 그 작은 날갯짓에 아이는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문이 꼭꼭 닫혀 있는 그 집 안에 몰래 숨어 들어 온 수상한 사람, 하지만 아이는 조금도 경계하지 않는 듯 했다. 어느 새 눈물을 뚝 그친 아이가 코를 훌쩍이며 남자에게 손을 뻗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손 안에 담긴 목이 덜렁거리는 로봇을 내민 것이었다. 남자는 고개를 갸웃하고 허리를 조금 숙여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새로 누가 봐도 인간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흔들림 없고, 곧은 음색.
"뭘 원하는 거야?"
정말 모르겠다는 목소리에 아이는 당황하는가 싶더니, 로봇을 들지 않은 주먹을 꼭 쥐고 최대한 똑똑한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전했다.
"로봇이가 뚝 부러졌어요. 고쳐 주세요."
"내가 왜?"
"천사님이잖아요."
천사는 팔짱을 턱 끼고서, 그것이 부탁을 들어주어야 할 이유가 되는지 인상을 살짝 구기고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곧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천사의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자 살짝 긴장했던 아이도 활짝 웃었다. 팔이 아팠지만 티내지 않고 아이는 천사의 손에 조심조심 제 친구를 들려 주었다. 아이에게서 로봇을 건네 받은 천사는 간신히 이어져 있는 로봇의 머리와 몸통 그 사이에 고개를 들이밀고 관찰했다. 그리고,
뚝.
"……."
"어이쿠."
아아, 그는 좋은 로봇이었습니다.
천사는 난처한 표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며ㅡ그 안에는 즐거워 죽겠다는 마음이 숨어 있었는데ㅡ 왼손에는 로봇의 머리를, 오른손에는 몸통을 들고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안, 죽어 버렸어.
너무 놀라 그 어떤 표정도 짓지 못하고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했던 아이는 친절한 천사의 부연설명에 정신을 차렸다. 동그랗게 떠진 눈과 동그랗게 벌어진 입술, 그리고 동그란 콧방울은 이내 일그러졌고 천사는 양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바닥으로 툭 떨어트린 뒤 귀를 막았다.
"으, 으아아앙!"
"아아, 시끄러워라."
그 집 안을 가득 채웠던 아이의 울음소리는, 시끄러워 시끄러워 투덜거리다 결국 자신이 한 장난같지 않은 장난을 회상하다 터져 버린 천사의 웃음소리에 묻혀 버렸다. 느하하하하! 결국 그 동네는 천사의 웃음소리에 잠식되어 버렸고…
"야, 인마!"
"어, 악마님~"
그 웃음소리는 화난 듯한 새로운 침입자의 목소리에 뚝 끊어졌다. 하얗고 까만 머리에 조그만 뿔이 두 개 돋아난 또 다른 남자, 아이는 처음 천사를 만난 그 순간처럼 울음을 뚝 그쳤다. 갑자기 눈 앞에 뿅 나타난 이 남자는 어느 순간부터인지 천사를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소음이 사라지자 두 귀에서 손을 뗀 천사가 두 손을 팔랑이며 악마에게 반가움을 전했지만 그것을 슬쩍 째려 본 악마는 바로 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울어쪄? 본인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악마는 손을 뻗어 발갛게 짓무른 눈가를 살살 문질렀다. 손에 끼워 진 가죽 장갑의 찬 감촉에 아이가 어깨를 움찔했다. 그제야 제가 항시 끼고 다니는 가죽 장갑의 존재를 알아 챈 악마는 놀라 손을 뗐다.
"미안, 미안."
처음 보는 사람이라는 데서 오는 두려움은 존재할 여지도 없었다. 아이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젓자, 악마는 아이에게 살짝 웃어 보이고는 몸을 반 바퀴 돌렸다. 금세 분노가 담긴 악마의 두 눈에는 딴청을 피우며 되도 않는 휘파람을 불려고 헛바람만 휘휘 뱉어 내고 있는 천사가 담겼다.
"야."
"……."
"야."
"…흐응?"
천사가 만면에 어색한 미소를 띠고 악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몸짓은 기계적이어서 삐걱삐걱 소리가 날 것 같았다. 천사의 웃는 얼굴을 향해 어퍼컷을 날려 주고 싶다고 생각한 악마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아이가 옆에 있기 때문에 최대한 화를 억누른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이를 악 물고 있어 별로 소용은 없었지만 말이다.
"애 왜 울렸어."
"쿠로오 씨가 울리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구라치지 말고."
"에, 진짠데."
저를 전혀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눈에 뻔히 보여 어깨를 과장되게 축 늘어뜨린 천사가 아이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눈높이가 딱 맞았고, 그 아름다운 하늘빛 눈동자가 아이와 시선을 맞추었다. 아이는 그것이 악마의 핏빛 눈동자보다 훨씬 무섭고 훨씬 사악하다고 생각했다. 천사는 제 귓가에 흘러 들어온 아이의 생각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천사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너, 내가 울렸니? 그 각도는 조금 괴기한 듯 싶어 아이는 흠칫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것을 포착한 천사의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사악하기가 동화책에서 본 악마의 것과 비슷한 것 같아 아이는 다시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천사의 얼굴은 악마의 얼굴이었고, 악마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이었다. 아이는 제가 읽은 동화책은 전부 잘못된 것이라고 엄마한테 꼭 말해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을 읽은 천사는 킬킬 웃더니, 그 자세를 하고는 아이에게 또 다시 물었다.
"내가, 울렸냐고."
"아니, 아니이."
"거 봐, 애가 아니래잖아."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짠. 천사에게 설렁설렁 대꾸하며 악마가 아이에게 건넨 것은
"우와아."
"형아 멋지지?"
"응!"
아이는 악마가 건넨, 목이 온전히 붙은 제 친구를 양 손에 꼭 쥐고 고개를 거세게 끄덕였다. 체, 아이와 악마 몰라 혀를 찬 천사가 갑자기 사라졌다. 로봇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제 시야에 잡혔던 두 쌍의 신발 중 한 쌍이 사라지자 아이는 놀라 고개를 팍 쳐들었다. 눈을 크게 뜬 아이가, 악마에게 그가 어디에 가 버렸느냐고 묻는 것 같아 악마는 허리를 숙이고 아이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형아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어."
자기가 친 장난을 내가 수습해 버리니까 완전 삐져서 말이지. 벌써부터 천사를 풀어줄 생각을 하니 골이 당기는 것 같아 악마는 다른 쪽 손으로 몰래 뒷목을 주물렀다. 그 전에 몇 대만 때려주고. 아냐, 부족해. 다리 한 쪽만 뽑자. 악마는 생각했다. 이 애가 내 생각을 읽지 못해서 다행이야. 아이는 악마의 몸을 뒤덮은 짜증을 인식하지 못하고, 로봇이 고쳐졌다는 사실 하나에 기쁨이 최고조로 달한 상태라 아까 그 천사의 만행을 까맣게 잊어 버리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천사 형아 빠이빠이 해줘."
"오야, 전해줄게."
"형아두 빠이빠이야?"
"응, 형아도 빠이빠이."
빠이빠이, 하며 제게 손을 흔드는 아이에게 끝까지 웃는 얼굴로 마주 손을 흔들어 주며 마지막 인사를 전한 악마가 스르륵 사라졌다. 아이는 로봇을 꼭 끌어안고 악마가 사라진 그 텅 빈 곳에 계속해서 인사했다. 이별의 아쉬움에 대한 아이만의 표현이었달까. 어느 새 아이의 눈가의 눈물은 바싹 말라 있었다. 아이는 로봇을 두 손으로 높이높이 들고 크게크게 소리쳤다. 악마 형아, 세상에서 제일 좋아!
그 때, 천상계로 돌아온 악마는 새까맣고 새빨간 지옥의 한 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었다. 간혹 순간이동 중 팔이라던가 발가락을 두고 오는 경우가 있어 제 신체 부위가 전부 다 돌아왔는지 확인한 악마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발걸음을 하나 둘 옮길 때마다 날개뼈에 자그맣게 돋아나 있었던 박쥐의 것과도 같은 새까만 날개가 점점 커졌고, 사람 하나를 온전히 덮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가 되자 악마는 공중으로 둥실 날아 올랐다.
"가만히 안 있으면 죽어."
[헤에, 무서워라. 문 잠가 버릴 거지롱?]
작은 중얼거림에 대한 답은 그 주변에 천사가 있지 않았음에도 악마의 귓가에 스며 들어왔다. 그것은 '천지 뒤집기(천국과 지옥, 싸우기만 했던 관계 뒤집기)' 페어는 멀리서도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딱 보기에도 잔뜩 삐진 음성에 악마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원래 주변 페어들을 보면, 장난끼가 많은 악마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고를 치고 그것을 천사가 수습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는 왜 저런 걸 만나서 말야.
'보쿠토 넌 딱히 장난도 안 치니까, 천사랑 둘이 잘 지내겠네.'
'부럽다~ 난 맨날 혼나는데.'
'니가 아무것도 안 하면 되잖아.'
비슷한 직급의 악마들과 비교했을 때 거의 마지막으로 본인의 페어가 발표되기 직전 친구들과 했던 대화를 떠올리며 악마는 다시 한 번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아, 나도 맘 편한 인간이 되고 싶다.
그 때, 갑자기.
"인간이 되고 싶어?"
"엥."
"그럼 되면 되지."
"잠깐만, 어이."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 악마는 머리가, 딱 뿔이 돋아난 그 자리가 간지러워 옴을 느끼고 양 손으로 그 부분을 짚었다. 악마는 제 뿔을 꼭 쥐었는데, 그 뿔은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악마는 눈을 크게 뜨고 팔을 허우적거리며 '왜 이래! 뭐야, 이거!' 이 말만을 반복했다. 그 웅장한 목소리는 깔깔깔 웃음소리를 뱉어 냈다. 그리고 순간 악마는 공중에서 떨어졌다. 서, 설마. 악마는 팔을 뒤로 하여 날개뼈 부근을 훑었고, 그 자리에 나 있던 날개가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되자 몽실몽실한 보라색 구름으로 이루어진 바닥을 마구 내리치며 소리 없이 몸부림쳤다. 대왕니이이이이이임!
"에, 난 거 알았어?"
"그럼 이런 짓 할 사람이 또 누가 있는데!"
"응, 잘 가~"
갑자기 대화를 끊어버린 대왕,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악마 밑의 구름이 옆으로 사사삭 사라지는가 싶더니 악마의 밑에는 그 무엇도 없게 되었다.
"야! 나 날개! 나 죽는다!"
"안 죽어, 안 죽어."
"제발, 좀!!"
"니 친구도 같이 보내줄게."
으아아아악! 악마의, 아니 이제는 인간이 되어 버린 보쿠토 코타로의 처절한 음색이 지옥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그 똑같은 비명 소리가 천국에서도 울려 퍼졌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보쿠토 코타로와 쿠로오 테츠로의 인간 생활 적응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빠밤.
그러나 이번 편이 끝이라구! 깔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