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겁페

[마나토도] 세상에 어울리지 않음은 없다는 것을

pdom1nt 2016. 3. 25. 00:35

 

 

“선배가 나랑 헤어져 줬으면 좋겠어요.”

“마나미.”

“나는 선배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냐.”

 

그러니까 우리 여기서 안녕해요. 씩씩하게 어깨를 쭉 펴고 씩씩한 목소리로 제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아이의 눈가가 발갛게 짓물러 있다. 토도는 그런 아이가 안쓰러워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아이의 뺨을 문질렀다.

어어. 그 다정한 손길을 피해 두어 발짝 물러난 아이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우리 헤어졌으니까, 그거 안 돼요. 그러나 헤어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그 목소리가 종내에는 울음기를 담아 버려서 토도는 그만 웃고 말았다. 슬픈 웃음이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맥 빠진 제 선배의 웃음소리에 아이는 웃고 있던 얼굴을 그만 무너뜨렸다. 평소처럼 그 바보 같은 얼굴, 무슨 일이 있어도 실실 웃기만 하던 그 얼굴만을 끝까지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만 아이는 울어 버렸다. 일그러져 버린 얼굴 위로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투둑 투둑 떨어지더니 얼굴 전체를 뒤덮어 버렸다.

 

“아, 안 되는데.”

 

부들부들 떨리는 입 꼬리를 억지로 올려 미소 같은 것을 지어 보이려 애쓰며 아이는 손바닥으로 눈가를 마구 비볐다. 그리고 제 손등에 닿는 익숙한 온기에 아이는 더 이상 그러한 시도마저 하지 못했다. 제 손을 감싸 쥐고 끌어당겨 꼭 안아오는 사랑스러운 제 선배에 아이는 결국 괜찮은 ‘척’, 아프지 않은 ‘척’,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품에 파고들었다.

제 어깨에 턱을 대고 입을 크게 벌리고 정말 아이처럼 엉엉 울어대는 제 어린 연인의 등을 천천히 토닥이며 토도는 자그맣게,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괜찮아.”

 

다정한 음색은 커다란 울음소리에 파묻혔지만 아이의 귓가에는 똑바로 박혀 들어왔다.

 

“네가 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아.”

 

하지만 당신 옆에는 당신과 어울리는 멋진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걸요. 나는 당신을 방해하고 있어. 당신은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더 빛나요.

아이는 토도의 말에 대꾸하고 싶었으나 목구멍에 돌이라도 박힌 듯 단단히 막혀 버려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무언가 말하려는 시도는 그저 끅끅거리는 울음소리로 바뀌어 버릴 뿐이었다. 손을 들어 부슬부슬한 머리카락을 찬찬히 쓸어주며 토도는 덧붙였다.

 

“내가 너에게 맞춰갈게.”

 

찬란한 왕관을 내려놓고 반짝이는 장신구 모두 벗어 던지고 화려한 옷 대신 네 사랑을 입을게. 너만큼 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나 너를 닮아갈게.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누군가 두 손으로 제 목을 조르고 있는 것처럼 숨이 막혀 왔다. 하지만 그것은 죄악감이 아닌 환희와 열락으로 인한 무언가. 그래서 눈물은 멎지 않았다. 너무 기뻐서 아이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사실 저 모든 말은 아이를 위함이 아니라, 토도 자신을 위함이었다고. 꽁꽁 묵혀 두었던 소중한 마음을 사랑하는 제 연인에게 전하고자 했던 토도 자신의 바람이었을 뿐이라고.

그러나 그것이 아이의 닫혀가던 마음을 두드려 자신을 다시금 받아들이게 했다는 것을 아이에게서 그 어떤 말을 듣지 않았어도 토도는 알았고 그 마음속 깊고 깊은 방에 꼭꼭 숨어 버리려던, 하지만 결국에는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펑 터져버려 방에서 밀려 나와 버린, 죄라면 제 연인을 너무나도 사랑한 죄밖에 없는 너무나도 착한 죄밖에 없는 아이도 그것을 알았다.

 

아이는 그렇게 굳게 세워 진 성 밖으로 쫓겨나 그 주위를 배회하던 토도 진파치를 만났다. 아이는 제게 내밀어진 토도 진파치의 손을 마주 잡았다.

아이는 사실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국엔, 이렇게 될 거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