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하이큐

[야마야치] 세상에 어울리지 않음은 없다는 것을

pdom1nt 2016. 3. 25. 00:33

  

그러니까, 나는 너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고. 저에게는 거의 기정사실화된 생각을 전하는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위기에 놓인 팀을 위해 공을 들고 코트에 섰던 그 때와는 다른 떨림이었다.

야마구치는 언제나 어디서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난다고 생각했던 이 어여쁜 소녀가 제 말에 긍정을 표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말을 이었다. 소녀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야마구치는 그것조차 무서웠다. 저 마음속에는 얼마나 많은 폭언이 부글부글 끓고 있을까.

 

“난, 그리고, 너무 보잘 것 없어.”

“…….”

“배구도 못하고 잘 생기지도 않았어.”

“야마구치 군.”

 

소녀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야마구치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 야마구치는 그 고운 목소리를 통해 들려오는 제 이름을 듣자마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입술을 꼭 깨물었다. 예쁜 두 눈은 따뜻하게 웃고 있었지만 야마구치에게는 냉기가 스쳤다. 그래서 야마구치는 더욱 세게 입술을 짓씹었음에도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소녀의 얼굴에 약간 당황한 기색이 어렸으나 금세 미소가 그것을 뒤덮었다. 그것은 참으로, 햇살 같은.

 

“아냐.”

“난, 니가, 나는, 아니, 니 옆에는, 응, 츳키가 옆에 있으니까, 날, 좋아할 리 없다는, 거, 알아.”

“아냐.”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는 야마구치에게 소녀가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야마구치는 생각했다. 이 착해 빠진 소녀가 자신이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졌나 보다. 야마구치는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눈물을 참지 못한 제 나약함을 한탄했다. 나는 도대체 언제쯤 강해질 수 있는 걸까.

쪽. 그 때 낯설고 생경한 소리가 야마구치의 귀에 스몄다. 입술에 말랑한 무언가가 가볍게 닿았다 떨어졌고 그것이 소녀의 입술이라는 것을 자각하자 더욱 쏟아지는 눈물에 야마구치는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잔뜩 일그러진 채 히끅거리며 울음을 토해내고 있는 야마구치의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보던 소녀가 발꿈치를 들어 그 입술에 다시 한 번 입을 맞추었다.

소녀의 어깨를 팍 밀치며 야마구치가 버럭 소리쳤다.

 

“장난 칠 생각이면 그만 둬!”

 

가엾은 소년은,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이 가엾은 소년은 단 한 순간도 자신이 사랑하는 이 소녀가 자신과 같은 마음을 자신에게 품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한 적 없었고 할 수도 없었다. 소년을 옆에서 지켜보아 그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아는 소녀는 약간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들이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너도 너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소녀는 그 마음을 담아 소년의 이름을 다시금 불렀다.

 

“야마구치 군.”

 

울음에 막혀 대답하지 못하지만 너는 분명 듣고 있으니

 

“나는”

 

내 마음을

 

“너를”

 

너에게.

 

“좋아해.”

 

싱긋 웃는 소녀의 얼굴은 샛노란 꽃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 야마구치는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행복감에 젖은 울음소리가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 그 앞에 선 소녀는 허리를 굽히고 손을 뻗어 소년의 머리를 가만히 쓸었다. 울지 마.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작고 차분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소년은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이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이 환각 같은 상황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