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겁페

[아라토도] 백 송이 장미 (Pro : 한 송이)

pdom1nt 2016. 3. 20. 23:53


"안녕."
"……."
"받아."

소년이 대뜸 다른 소년의 손에 꼭 쥐어 준 것은 새빨간 장미꽃 한 송이였다. 그것을 받아 든 소년이 눈만 껌뻑이며 제 앞의 낯선 이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제 앞에 선 그는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든 아무 말도 하지 않든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눈매가 사나웠지만 눈빛은 그닥 매섭지 않았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머리카락이나 낯설지만 제 몸에도 역시 입혀져 있는 똑같은 교복이 오히려 그를 아이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소년은 갑자기 제 일상에 찾아온 불청객과 마주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것은 또 다른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잠시 고요 속에 눈빛이 흘렀다.
소년은 운을 떼기 위해 입술을 살짝 벌렸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놓칠세라 움켜쥐고 있는, 가시가 매끄럽게 깎여진 꽃에 대해 물으려던 찰나였다. 소년의 입 속에 자신에게 할 말이 담겨 있음을 눈치 챈 소년은 뒤를 홱 돌았다.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다는 몸짓 같아 소년은 혀 끝을 맴돌던 말을 그냥 꿀꺽 삼켜 버렸다.
그렇게 제가 꽃을 전하기 위해 쫓아온 소년이 가던 길과 정 반대의 길을 걸으려던 소년은 한 발짝 멀어지더니 멈춰섰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가 꽃을 든 소년에게 와 닿았다.

"잘 가."

그리고 소년은 마구 달음박질쳤다.
빠르게 멀어지는 뒷모습을 주시하던 소년이 시선을 아래로 돌려 그가 제게 주고 간 꽃을 바라보았다. 꼭꼭 누르면 빨간 물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빨갛고 빨간 꽃이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낯선 이가 사라진 길의 끝에 초점을 맞추었다. 또렷하게 보이는 그곳에서 소년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소년은 그 쪽으로 가지 않았다. 뒤를 돌아 제가 가던 곳으로 다시 향했다. 소년은 소년대로, 소년도 소년대로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있었지만 들고 있는 꽃과 꼭 닮은 소년의 머릿속에서는 시야에 깊게 박힌 붉은 귀가 사라지지 않았다.
한 발 한 발 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소년은 생각했다. 마지막 말을 담은 목소리는 꽤나 다정했어.

장미꽃과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연분홍빛 봄날, 소년은 생전 처음으로 남자에게서 꽃을 받았다.

 

빨간 장미 한 송이 : 첫눈에 반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