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겁페

[아라토도] 발목 上

pdom1nt 2016. 3. 13. 16:37

(부제 : 절대적 신카이 불쌍한 시점)
아라키타 야스토모 X 토도 진파치 ts


아라키타는 유독 토도의 발목을 좋아했다. 토도는 발목 위까지 오는 긴 치마를 자주 입는데, 그럴 때마다 나만 보여주기로 했으면서 왜 발목을 훤히 드러내놓고 다니냐며 성질을 냈지만 실상은 꼴사납게도 히죽히죽 웃으며 주저앉아 그 발목을 한 손에 쥐고 쓸어내리는 것이었다. 토도는 그에 익숙해져서 아라키타의 등을 짚고 다른 손으로는 그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찬찬히 쓸어주며 그의 이상한 의식이 끝나기를 기다려주었다. 하지만 토도도 길거리에서 대뜸 발목에 입을 맞추려는 행위는 용납하지 못했다. 저번에 한 번 시도했다가 구두 앞코에 뺨을 걷어차인 아라키타는 한동안 멀찍이서 손만 뻗어 발목을 문지르곤 했다.

그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나는 생각했다. 마르고, 선이 고운 예쁜 발목인 것은 인정하나 그렇게 죽고 못 살 정도인가 싶었다. 그래서 그 발목에 계속 시선을 주었더니 토도에게 발목에 발정하는 변태새끼라는 말을 들었다. 그건 아라키타잖아. 했더니 반박은 못 하고 익익거리더니 등을 한 대 때렸다. 왜 때리냐고 묻자 한 대 더 때렸다. 아무 말도 안 했더니 왜 말이 없냐고 때렸다. 무슨 말을 해야 되냐고 묻자 그걸 나한테 왜 묻냐고 또 때렸다. 집에 가서 씻으려고 옷을 벗었을 때 왜 등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냐며 어머니께서 사색이 되셨다.
한 번은 아라키타에게 내 생각 그대로 물어봤더니 ‘니가 뭔데 내 발목을 쳐다봐, 시발.’이라면서 눈을 부라렸다. 질문의 쟁점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너 아니고 토도 발목인데. 조금 무서워서 소심하게 대꾸하자 그럼 그게 내 거지, 누구 거야!! 하고 길길이 날뛰길래 옆에서 초코 우유를 쪽쪽 빨고 있던 토도 뒤에 숨었다.

‘신카이, 네가 내 뒤에 숨는다고 숨겨질 것 같아?’
‘그치만 저 얼굴을 봐!’
‘야, 지금 누구 어깨를 잡아? 어? 나와 인마! 한 판 뜨자!’
‘아라키타, 나대지 마.’

어쨌든 아라키타 야스토모는 토도 진파치의 발목 매니아였다고. 그걸 아는 애들은 토도를 가엾이 보거나 자신의 발목에도 꽂힐까봐 아라키타만 보면 종종종 도망가거나 아니면 봐달라고 발목을 쭉쭉 내밀었다. 첫째도 아니요 둘째도 아닌 ‘둘 다 꺼졌으면’ 파인 나는 처음 부류를 제외한 그 외의 것들을 한심하게 보았다. 사실 처음 녀석들도 쓸데없는 감정낭비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둘이 좋아서 쿵짝쿵짝 잘만 노는 커퀴일 뿐인데 뭣 하러 동정을 해.
아무튼 그 애들은 자기 발목이 아무리 예뻐도 다 소용 없는 짓거리인 걸 알아야만 했다. 아라키타가 관심 있는 것은 늘씬하고 선이 잘 뻗은 발목이 아니라 늘씬하고 선이 잘 뻗은 토도의 발목이니까. 아, 정정한다. 관심 있는 걸 넘어서 환장하지, 아주. 하지만 토도 진파치의 발목이라는 게 제일 중요하다.
아라키타의 발목 페티쉬를 아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 사실을 잘 캐치 못하고는 하는데, 토도도 그 중 하나였다. 나는 진작 알고 있었다. 아라키타는 AV를 볼 때 가슴을 보지 발목을 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토도는 땡땡이의 달인이다. 그 방법으로는 주로 담 넘기. 운동 신경이 워낙 좋아 높기로 소문난 하코네 학원의 담도 능숙하게 넘었다.
아라키타는 땡땡이치는 것도 싫어했고 담 넘는 건 더 싫어했다. 예뻐해 마지않는 토도의 발목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댈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말했다가 자기는 그렇게 무겁지 않다고 토도에게 열 세대 맞았다. 확실히 토도는 무용하는 녀석이라 마르긴 엄청나게 말랐지만 제일 마르고 연약한 그 발목이 항상 걱정된다… 고 나에게 말한 적 있다. 그걸 나한테 왜 말하냐고 순수한 궁금증을 담아 물었더니 친구의 고민도 못 들어 주냐며 뺨을 때리려 들길래 도망쳤다.

그 날 토도는 어김없이 땡땡이를 쳤다. 착실한 학생인 나는 토도를 말리려다 말려들어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담을 넘고 막 담을 넘으려는 토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치마도 짧은 게 담 위에 아슬아슬 서 있다가ㅡ나는 절대 핫핑크 색 땡땡이를 보지 못했다ㅡ 바닥으로 폴짝 뛰어내렸는데,

‘악!’
‘헐, 야. 괜찮냐?’
‘괜찮아 보이냐, 병신 새끼야!’

담 밑에 풀썩 주저앉은 토도에게 황급히 다가갔다. 그새 눈물이 그득 고인 눈으로 올려다보는 녀석과 눈높이를 맞추려 쭈그려 앉았다. 토도의 발목은 새빨갛게 부어 있었고 조금이라도 손이 닿으면 빽빽 악을 쓰며 내 어깨를 마구 때렸다. 아파서 울려고 하는 애한테 말은 못 했지만 그거 존나 아팠다.
이걸 업어줘야 하나 하는 착잡한 마음으로 보기만 해도 내가 다 아픈 그 발목을 쳐다만 보고 있자, 토도가 내 옷깃을 꼭 잡아오며 울음이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라키타한테 혼날 거야.’

그리고 나는 생략된 말을 읽어내고 토도에게 등을 내밀었다 : 나랑 같이 있었던 데다가 그런 주제에 다치게 둔 너는 존나게 맞을 거야. 그래서 연약한 나는 온 힘을 다해 토도를 병원까지 이송하고 사망했다.

‘뼈에 금이 갔네요.’
‘아… 너 무용은 어떡하냐.’
‘몰라!! 아파 죽겠는데 그게 뭔 상관이야!!’
‘하하, 둘이 참 귀엽네. 며칠 됐어요?’
‘네?’
‘사귄 지 며칠 됐냐고. 사귀는 거 아니야, 둘이?’
‘에엑?!’
‘에엑?!’
‘야, 니가 뭔데 기분 나빠해!!’

나를 자신의 남자친구로 착각한 병원에 실컷 욕을 하는 토도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해방되어 자유를 즐긴 그 다음날 아침 토도에게 전화가 왔다. 나 아파 죽으니까 같이 가아.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건지 진짜 아픈 건지 다 죽어가는 목소리길래 하는 수 없이 토도의 집을 거쳐 함께 가 줬다.
내 팔을 두 손으로 붙들고 절뚝절뚝 걷는 토도 탓에 둘이 사이좋게 지각해 버렸다. 너 때문에 지각이잖아. 나 지금 아픈데…. 말끝을 흐리며 눈을 내리까는 게 빌어먹게도 예뻐 보여서 나는 내 뺨을 한 대 쳤다. 토도가 정신 빠졌니, 하고 물어보았다. 그 얼굴이 평소와 같아 보여서 안심했다. 존나 얄미워.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교문에 도착한 우리는

‘뭐야, 니네.’
‘안녕, 아라키타.’
‘…….’
‘왜 같이 와. 넌 뭔데 나한테 인사 해.’
‘인사해줘도 지랄이야…’
‘뭐라고?’
‘아하하. 아니, 아니.’

지각생을 잡기 위해 서 있던 선도부장 아라키타 야스토모와 만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