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하이큐

[보쿠로] 겨울, 눈, 하얗게.

pdom1nt 2016. 3. 10. 17:35

눈이 내린다. 시리도록 새파란 강물에 하이얀 눈송이가 툭툭 떨어졌다. 강물에 스며든 눈송이를 또 다른 눈송이가 따라갔다. 조그만 항아리를 껴안은 내 팔에도 눈이 찾아왔다가, 사라졌다가. 어느 순간부터 나는 우산을 쓰지 않고 있었다. 새까만 코트가 축축하다. 장갑을 탁자 위에 놓고 와 추위에 얼어버린 손가락이 뻣뻣하다. 억지로 손가락을 굽혀 주먹을 쥐자 손 마디가 저릿하다. 손바닥에 닿는 차가움에 어깨가 움츠러든다.

네가 좋아하던 빨간 목도리에 코까지 파묻고 눈만 데굴데굴 굴리다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처음 찬바람이 닿은 턱이 아렸다. 하아, 숨을 작게 내쉬자 하얀 김이 눈 앞에서 흩어졌다. 으, 추워. 그렇게 중얼거리고 다시 목도리 안으로 숨었다.
바람이 세게 불자 뜨고 있던 눈에 냉기가 훅 끼쳤다. 놀라 눈을 꼭 감으니 눈이 아파왔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잠시 눈을 감고 있다 천천히 눈을 떴다. 하도 힘을 주어 감아서 그런지 세상이 잠시 흐릿하게 보이다 점차 자신의 자리를 되찾아 간다. 아까보다 맑게 보이는 것 같아서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 바람이 아프게 이마를 스치자 코를 훌쩍이며 시선을 땅에 꽂았다.

풀잎에 달라붙었다 천천히 녹아 내리는, 아니면 제 친구를 만나 조금씩 쌓여가는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말하고 싶어졌다. 그냥 말이 하고 싶어졌다. 뭘 말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는데, 오늘 눈을 뜨고 나서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도 말하고 싶었다.
입술을 열었다. 말을 하려고 숨을 들이쉬었는데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아 도로 짧게 뱉었다. 열린 입 사이로 목도리가 조금 들어와 털맛이 났다. 푸, 하고 그것을 밀어낸 뒤 목도리 위로 얼굴을 끄집어냈다. 춥다. 이번엔 진짜 말할 작정으로 숨을 훅 들이쉬었다. 찬 공기가 폐를 메웠다. 몇 시간 뿐이지만, 고작 몇 시간 뿐이었지만 그새 낯설어진 내 목소리가 퍼진다.


"어… 보쿠토."

역시 대답은 없었다. 널 위해 여기 서 있으니까, 뭐라도 말해야 한다면 네 이름이 적당할까나. 그치만 적막이 흐르는 이 곳에 살아있는 거라곤 나 혼자, 인 것만 같은. 이곳에 도착한 뒤로 들은 거라곤 쌩쌩 부는 바람이 울어대는 소리. 그리고 방금 내 목소리.

아무도 보고 있지 않지만 괜한 민망함에 몸을 앞뒤로 흔들거리다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았다. 길게 자란 풀들이 엉덩이를 아프게 찔렀지만, 얕게 쌓인 눈이 얇은 바지에 스며들어 몸이 떨렸다. 하지만 일어서지 않았다. 앉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지금 그 무엇도 할 수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기차를 타고 멀리, 아주 멀리 와서 그런지 딱히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도 힘이 들었다. 조금 많이.

아까부터 안고 있던 항아리 뚜껑에 턱을 댔다. 쇼핑백이든, 가방이든, 어디든 넣어 와도 되지만 그냥 이러고 싶었다. 신발장 위에 외로이 놓여 있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하얀 항아리. 너 대신 꼭 끌어안아주고 싶었다.
내내 내 팔 안에 안겨 있어 그런지 윗부분을 제외하고는 따뜻해져 있었다. 언제나 나보다 체온이 살짝 높았던 너 같다. 넌 어떤 모습이든 그냥 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 핏 웃어버렸다. 바보 같아.
꽝꽝 얼어버린 손을 꿈질꿈질 움직여 봤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너는 장갑을 벗고 투덜거렸었지. 장갑 끼고 다니라니까. 하지만 잊어버렸는걸? 네가 손 잡아주면 되지. 덥썩 네 손을 움키면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다 이내 배싯 웃으며 발개진 내 손을 고쳐 잡아 주었다. 이러려고 맨날 장갑 안 끼고 오지? 앗, 들켰나~ 네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우리 꽤나 유치하게 놀았던 것 같기도.

항아리 뚜껑에 입술을 댔다. 꾹 누르니 입술이 뭉개졌다. 보쿠토. 뭉그러지는 발음이 듣기 싫었지만 입술을 떼지 않았다. 이게 너와 하는 마지막 키스? 이런 생각을 하니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입술을 살짝 떼고 소근소근 말을 건넸다. 그, 잘 지내 보쿠토. 아아, 너한테 이런 작별인사하게 될 줄 몰랐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도 계속계속 말했다. 평소처럼, 넌 듣고 있을 테니까.

아직 너와의 이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냥 집에 돌아왔다. 그 못된 항아리를 꼭 끌어안고서. 네 생각을 자꾸자꾸 나게 하는 그 바보같은 항아리를 꼭 끌어안고서 바보 같은 쿠로오 테츠로는 이 바보같은 짓을 꼭 일주일 째 반복 중이다.

 

라는 죽은 보쿠토 그 화장한 그 재 날려보내는 거 못하는 미련둥이 쿠로오가 보고 싶었음 전에 썼ㅅ던 건데 마감 시간ㄴ 닥쳐와서 완전 급하게 썻ㅅ더니 마지막 개후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