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앙스타

[스바호쿠] 처음 뵙겠습니다!

pdom1nt 2016. 11. 25. 22:22
* 회사원
* 애 딸린 이혼남 호쿠토
* 호쿠른 전력 6회 <첫 만남>


"오늘요, 유치원에서요, 아빠요, 그렸어요."
"그랬어요. 아빠 그렸어요?"
"으응, 이따 보여줄 거예요."
"기대 많이많이 해도 돼요?"

응, 하고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는 딸 아이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잡았다 놓는 것으로 호쿠토는 대답을 대신했다. 콧대 높은 거래처와 접촉한 이후 내내 굳어 있던 얼굴이 화악 피어난다. 어린 아이 특유의 말투로 재잘대는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는, 누군가 들었다간 딸 바보 소리를 들을 법한 생각을 하다가 히다카 호쿠토는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혼자 웃어 버리는 아빠를 의아한 얼굴로 올려다 보는 딸과 눈을 마주치고, 호쿠토는 빙그레 미소를 전했다. 영문도 모르면서 아이는 그저 아빠가 웃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따라 웃는다.
행복하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호쿠토는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이를 보며 요새 들어 하나의 고민을 시작했다.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할까? 물론 아빠와 엄마 두 역할 모두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는 호쿠토라지만, 한 부모 가정이라는 사실이 곧 학교에 들어갈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호쿠토는 몇 개월 간 미루던 끝에, 선을 보기로 결심했다.

선 자리를 주선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이가 있는 이혼남이라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호쿠토는 완벽한 스펙을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도 감수하고 그와 선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는 거다.
호쿠토는 어떤 여자가 좋냐 묻는 친구에게 '아이를 좋아하면 된다'는 심플한 조건을 내세웠고 친구는 의외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깐깐하게 이것저것 따지고 들 줄 알았더만 그렇지 않는 것에 놀랐다고. 그리하여 현 시각은 맞선 약속으로부터 10분 전. 어느 레스토랑에서 호쿠토는 자리에 앉아 조용히 상대를 기다리고 있다. 그로부터 이 분 정도 더 지났을 때, 호쿠토는 제 쪽을 향해 오는 듯한 발소리에 테이블 위에 고정시켰던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

그리고 보이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얼굴. 호쿠토는 눈이 마주친 순간 놀라 숨 쉬는 것조차 멈추어 버렸다. 빠르게 깜빡이는 두 눈을 아마도 불청객일 사람이 멋쩍게 웃으며 바라본다. 그 사람은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멈추어 양 팔을 몸에 딱 붙였다. 갑자기 경직된 얼굴을 하고는 숨을 후욱 들이쉬더니, 꽤나 큰 목소리로ㅡ

"처음 뵙겠습니다! 아케호시 스바루입니다!"
"......."
"히다카 호쿠토 씨 맞으시죠?"

그리고는 맞선 상대인 양 자연스레 호쿠토 앞의 의자를 빼고 앉는다. 호쿠토는 당황과 혼란이 섞인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인다. 스바루는 그의 기분이 다 전해지는 듯해 조금씩 눈치를 본다. 어깨를 움츠리고 손가락으로 테이블 보를 만지작거리다가, 무언가 결심이 섰는지 아까처럼 단호한 낯을 띤다. 괜히 낮게 깔린 목소리가 호쿠토에게 닿는다.

"미안해, 홋케."

오랜만에 듣는 호칭에 호쿠토는 아예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거짓말 친 것처럼 되어 버렸네. 스바루는 호쿠토의 표정을 살피며 이야기를 진행시켜도 될지 고민하더니, 될 대로 되라 싶었는지 어깨를 쭉 펴고 말을 잇는다.

"이렇게라도 나는 너를 다시 만나고 싶었어. 그 땐 너무, 나는 너무 허무하게 모든 걸 잃었으니까."
"...모든 거?"
"네가 내 전부라고 말했었잖아, 홋케."

호쿠토는 이제 슬슬 상황 파악이 됐는지 이마를 짚고는 짙은 한숨을 내쉰다. 입술을 잘근이더니 호쿠토는 스바루와 똑바로 시선을 맞추고 화를 억누른 듯한 음성을 낸다.

"몇 년도 더 지난 이야기야. 십 년도 가까이,"
"알아."

자신의 말을 대뜸 끊고 보는 스바루에 호쿠토의 눈매가 사나워진다. 스바루는 그것을 못 본 체 한다.

"그 십 년 동안 홋케, 너는."
"여전히 네 전부였다는 말이라도 하게?"
"어떻게 알았어?"

호쿠토는 지끈거려 오기 시작한 것 같은 머리에 짜증스러운 기색을 보인다. 스바루는 나름 진지한 듯 했지만.
결국 호쿠토는 자리를 뜨기로 결정했다. 의미 없는 입씨름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아. 시간 낭비다. 나중에 이 자리를 만든 그 친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겠다고 생각하고서 호쿠토는 의자를 뒤로 끌었다. 그러나 곧, 다급한 스바루의 목소리가 호쿠토를 잡는다.

"그런 거 다 됐어, 지금은!"
"......."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말은?"
"처음, 뵙겠습니다. 아케호시 스바루입니다."

울먹이는 목소리가 아까와 같은 말을 반복한다. 스바루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놓는다. 작게 벌어진 입술 새로 물기 어린 말들이 비집고 나온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홋케. 십 년이나 지났으니까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
"엄마가 필요해."
"내가 할 수 있어!"
"그 말이 아니, 하아."

호쿠토는 결국 의자를 도로 끌어 자세를 고쳐 앉는다. 스바루의 얼굴이 환해진다. 이번 뿐이라는 호쿠토의 단호한 목소리에도 스바루는 싱글벙글. 호쿠토는 눈을 내리깔고 잠시 생각하다 작게 중얼거린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 네!"
"히다카 호쿠토입니다. 반가워요."
"저, 저, 저야말로 반갑습니다!"

그들의 추억과는 거리가 먼 그곳에서, 두 사람의 새로운 첫 만남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다.


설명 : 대학생 때 사귀었던 스바호쿠 호쿠토가 결혼하겠다고 헤어지자 해서 끝났지만 스바루는 호쿠토를 못 잊었고 아내와의 성격 차이로 이혼한지 몇 년 이후 선을 본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친구에게 매달리고 매달려 자리를 만든 것. 첫 만남 아닌 첫 만남, 프레쉬하지만은 않은 첫 만남을 갖는 스바호쿠가 보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조금은 성숙해져 과거의 둘에서 멀어진 스바호쿠가 다시 만남을 시작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커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