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히로아카

[신소모노] Hello, how are you?

pdom1nt 2016. 9. 5. 17:25

bgm : 오타밍 - Hello, how are you

 

* 무개성 일상물

* 대학생 X 사진 작가

* 동거, 동갑



안녕, 잘 지내? 나는 지금 지구 반대편에 와 있어. 네가 없는 하루는 지루하기만 하고, 네가 없는 이은 쓸쓸하기만 해. 그래도 나, 나름 잘 지내고 있어. 너는 어때? 내가 없는 일상을 잘 버티고 있어?


***


신소 히토시는 그에게서 온 편지를 잠시 밀어두고 다시 노트북을 잡았다. 급하게 뜯은 티가 역력한 봉투 위에 대충 펼쳐진 편지지가 놓였다. 벚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지고 있는, 그 녀석을 닮은 상냥한 분홍색. 그것을 흘끔 쳐다본 히토시는 두 손 모두 키보드 위에 얹었다. 그리움에 취해 있기에는, 빌어먹게도 마감이 얼마 안 남았잖아.

 

「안녕, 히토시.」

「누구.」

「널 좋아하는 사람!」


그러나 더 빌어먹게도 그의 생각이 뇌를 덮어버렸다. 딱딱한 내용을 담은 딱딱한 글자들을 써내려가야 하는 손이 멈췄다.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꿈질거리며 잠시 멈춰 있던 히토시는 저도 모르게 문장 하나를 썼다.


좋아한다는 말은 일렀다.


손은 공중에서 어정쩡하게 멈췄다. 제가 만들어낸 것을 바라보는 눈가가 살짝 찌푸려져 있다. 잠시 생각을 하는지 아니면 멍한 것 뿐인지 가만히 시선을 주고 있던 히토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그것을 지웠다. 글자가 하나하나 지워졌다. 히토시는 제 손끝에서 나타난 이상한 문장을 그것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노려보았다. 소설을 쓸 것도 아닌데 대체, 감정을 잔뜩 실은 문장은 왜. 과거에 잔뜩 물든 문장은 왜.

뭐, 그와 함께 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마음이 저릿해진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 한참을 떨어져 있다 해도 어쨌든 현재 진행형이니까 말이다. 갑작스럽게 나온 문장이 답지 않게 달아서 답지 않게 향수를 불러 일으켜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야. 그리고 지금은 감성에 젖어 있을 시기로 알맞지 않았다.

 

"빨리 논문."


스스로를 독촉하는 의미에서 소리 내어 당면한 그것을 말한 뒤, 히토시는 논문의 길이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졸업논문. 너를 만났던 그곳을 떠나는 날이 머지 않았다. 커다란 나무 밑에서 고개를 잔뜩 꺾어 흩날리는 벚꽃에 손을 뻗던 그의 모습이 순간 히토시의 눈앞을 스쳤다. 눈을 느릿하게 꿈뻑였다. 지워지기는커녕 조금 더 선명해진 듯한 형체에 히토시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짜증이 조금 섞인 숨이었다. 오늘, 아무래도 아무 것도 안 될 것 같아. 편지가 온 타이밍이 나빴다. 편지가 온 게 싫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좋지만서도.

 

PonPon Let it loose Get your hands up in the airㅡ♬

 

때맞춰 울리는 벨소리에 히토시는 신경질적으로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저장한 이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 귀여운 편지를 보내 온 애인을 탓한다거나 원치 않는 타이밍에 편지를 전해 준 우편 배달부를 미워할 생각은 없다. 그냥 휩쓸려버린 탓에 기분이 좋지 않아. 지금 전화를 한 상대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논문을 빨리 마무리지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상냥한 대꾸는 하지 못할 것 같다ㅡ

 

[내꺼♥0♥]

 

고 생각했는데. 한참을 끊이지 않고 울리는 전화의 주인공은 너였다. 히토시는 저도 모르게 비식 웃어버렸다. 모노마 네이토, 지나치게 저 답게 그리고 정 없게 이름 그대로 저장해 놓은 꼴을 보고 노발대발하며 바꿔 놓은 이름. 휴대폰에 빨려 들어갈 듯 잔뜩 얼굴을 디밀고 꾹꾹 키패드를 열심히 누르던 모습이 생각나. 히토시는 다시 처음부터 울리기 시작한 벨소리에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초록색 버튼을 꾸욱.

 

"여보세요."

[그래, 네 여보시다!]

"끊을게."

[…안녕, 잘 지내?!]

 

정말 끊을 위인임을 알아서 목소리가 다급해진다. 대뜸 편지의 말머리와 같은 물음을 건네는 그에 히토시는 인심 썼다는 듯한 뉘앙스로 대꾸했다. 어, 잘 지내. 사실은, 너무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라서 두근두근 간질간질. 그에게 티가 날까봐ㅡ분명 알아채는 순간 '너는 나를 너무 좋아해! 정말 못 말리겠다니까!' 할 게 뻔하니까ㅡ 조금 마음 졸였지만 다행히도 눈치 없는 이 남자, 전혀 모르는 듯. 휴우, 하고 숨을 내쉬더니 아까보다는 조금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나는 지금 지구 반대편에 와 있어.]

"알아."

[네가 없는 하루는 지루하기만 하고, 네가 없는 이곳은 쓸쓸하기만 해.]

"그렇구나."

[그래도 나, 나름 잘 지내고 있어.]

"그럴 줄 알았어."

[너는 어때? 내가 없는 일상을 잘 버티고 있어?]

 

편지 내용을 보고 읽는 것 마냥, 그렇다기엔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오는 이에 히토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응, 하고 대답하려던 마음은 솔직해지라고 깐죽이는 것 같은 상대의 숨소리에 사라져 버렸다. 그래, 뭐. 사실은 조금 어리광 부리고 싶은 마음 있으니까. 히토시가 휴대폰을 든 손을 옮겨 반대쪽 귀에 댔다. 익숙치 않은 일이라 망설여졌지만, 선물 주는 셈 치고. 분명 아주 조금이라도 솔직하게 굴면 무지 좋아할 거 알아서.

 

"아니."

[헤에?]

"졸업논문이 안 써져."

[그랬어?]

"밥도 잘 안 넘어가고, 잠도 안 와. 네 목소리 듣고 싶었어."

 

숨이 멎는 소리. 놀란 것 같다. 히토시는 몰래 웃음을 내보냈다. 소리 없는 웃음, 꽤나 즐거운 모양이었다. 수화기 반대편의 이는 이런 대답이 나올 줄 몰랐는지 대답하기를 미룬다. 히토시는 그 짧은 전화 한 통으로 상당히 기분이 좋아져 버려서 경쾌한 스텝으로 방을 빠져나간다. 그 작디작은 발소리를 고요히 듣고 있다가 숨을 깊게 들이쉰 상대가 토해내듯 말을 내뱉는다.

 

[…예쁘다.]

"나 잘 못 지냈는데도?"

[응, 그래도 마음이 예뻐. 예쁘다, 우리 애인. 착해. 쓰담쓰담.]

 

방정이 사라진, 오랜만의 목소리에 히토시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지금 서로가 서로에게 낯설어 둘 모두 심장에 무리가 온 모양. 히토시는 입을 벌리고 버벅거리더니 무언가 퍼뜩 생각난 얼굴을 했다.

 

"너 근데 국제전화."

[으음. 괜찮아.]

"편지도 보내놓고, 그거 읽어주려고 전화했냐."

[헤.]

 

히토시는 고개를 절레절레. 대책 없기는 항상 똑같다. 뭐, 그런 점이 사랑스럽다면 사랑스러운 거지. 그리고 자신이 왜 방 밖으로 나왔는지 잊어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을 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 왔네."

[그래?]

"응. 근데 왜 초인종 안 누르지."

[초인종 공포증이 있나봐.]

 

웃기지도 않은 소리. 히토시는 대답하지 않고 현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 전에 왜 방을 나섰는지, 그 이유를 계속 생각하고 있는 채였다. 핸드폰에서 발랄한 콧노래가 흘러 나왔다. 그것마저도 오랜만에 들으니 반가워 눈물이라도 흘릴 지경. 히토시는 웃음을 작게 흘려보냈다. 그것이 상대에게 닿았을지는 모르지만.

 

[근데, 자기야.]

"뭐."

[나 일본에 있다?]

"…뭐야, 아까 반대편에 있댔잖아."

[하하! 그리고 지금 어딘지 알아?]

 

어딘데. 짧게 묻고 히토시는 손을 쭉 뻗어 문턱 위에서 문을 열었다. 문이 열렸다. 아, 실수. 전화에 신경을 뺏겨 누군지도 묻지 않고 문을 열어버렸다. 뭐, 택배라던가ㅡ

 

[여기!]

"여기!"

 

너겠지. 직접 귀에 스며든 목소리에 눈이 휘어지고 입술이 길게 찢어지는,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버렸다. 나랑 너무 안 어울리잖아, 이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히토시는 표정을 감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팔을 넓게 벌렸다. 그 품으로 햇빛이 비쳐 반짝거리는, 햇빛을 꼭 닮은 네가 폭삭 뛰어들었다. 다녀왔습니다! 목소리만큼이나 경쾌하고 두 사람만큼이나 따뜻한 어느 봄날의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