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히로아카

[토도바쿠] 땅 끝 어딘가 上

pdom1nt 2016. 9. 2. 16:28

* 장교 X 군의관

 

 

"어때요."

"아파."

"안 아프길 바랐어요?"

 

카츠키는 혀를 쯧 차더니 이불이 다 해진 침대 위에 얌전히 앉아 있는 토도로키에게서 등을 돌렸다. 곰팡이가 잔뜩 핀 더러운 벽에 위태로이 매달려 있는 선반, 카츠키는 그곳에 손을 뻗어 칙칙한 초록색 상자를 꺼내들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토도로키의 귀에 선명히 박혔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더 그랬다.

 

"뭐해?"

"뭐 하겠어요, 내가."

"보고 싶어."

 

보고 있잖아요, 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려던 그는 바구니 안에 담긴 붕대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제가 왜, 누군가를 위해 그것을 꺼냈는지 순간 잊었던 그것을 기억해 냈다. 대화를 이어갈 방도를 찾지 못해 카츠키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토도로키도 딱히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불만은 없다. 다가오는 발소리가 사랑스러우니 다 괜찮다.

앉아 있는 바로 옆에 무언가 묵직하게 내려앉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이 지금 저와 한 공간에 있는 상대이기를 바라지만 의자 끌리는 소리. 삐걱삐걱, 드륵드륵. 그 의자는 토도로키의 바로 앞에 멈춰선다. 붕대 갈 거예요. 어째서 심통이 났는지 아까부터 틱틱거리는 말투가 통보하듯 말했다. 토도로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행위에도 붕대로 단단히 감싸진 눈이 툭 떨어져 나올 것 같았다.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토도로키는, 끄덕임 위에 대답을 얹었다. 알아.

 

"아파도 참아요."

"소리는 내도 돼?"

"알아서 해요."

 

퉁명스러운 목소리와는 달리 붕대를 벗겨내는 손은 세심했다. 그러나 지금 토도로키의 상처는 그것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연약하. 붕대는 머리를 둘둘 말았지만 정작 다친 것은 왼쪽 눈뿐이었다. 짓무른 상처가 붕대에 찐덕하게 붙어 껍질이 뜯겨졌다. 입술 새로 탄성과도 같은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카츠키의 표정을 순식간에 물들였던 미안함이 다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감정. 카츠키는 무덤덤한, 아니 무덤덤하게 꾸며내는 목소리를 내보냈다.

 

"그러니까 조심했어야죠. 적당히 다치던가."

"그게 마음대로 되, 아. 되나."

"눈 뜨지 마요."

 

아름다움으로 화려한 얼굴에, 약과 진물로 범벅이 된 화상 자국. 토도로키는 단호한 그의 말에 깊은 숨을 흘려보냈다.

 

"네가 보고 싶어."

"봐서 뭐하게요. 그리고 지금 눈 떴다간, 으."

"너무 오래 못 봤어. 보고 싶어."

 

진저리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토도로키는 조금 웃었다. 조금 큰 표정을 지었다간 참을 수 없는 쓰라림에 침대 위로 쓰러지게 될 게 뻔해서 사랑스러운 만큼 웃어주지 못하는 게 슬펐다. 제 상처 위로 조심히 닿아오는 손가락을 위안으로 삼으며 토도로키는 투정을 삼켰다.

 

이틀 전. 갑작스러운 습격에 후다닥 총을 들고 뛰쳐 나갔던 토도로키는 세 시간 뒤 진영에 돌아왔다. 그것은 의무실로 사용하는 텐트에서 카츠키가, 예고 없는 전쟁에 옆에서 사라진 그를 걱정하느라 잠에 들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텐트 입구가 슬쩍 열렸다. 흠칫 몸을 떪과 동시에 손을 뻗어 더듬더듬 총을 찾아 쥐려고 한 순간 밖에서 화약탄들이 터지며 밝은 빛을 냈다. 열린 틈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 빛은 침입자를 밝혔다. 그의 정체를 밝혔다. 그리고 원치 않았으나, 그의 얼굴을 뒤덮은 핏물을 밝혔다.

 

'나 왔어.'

'어, 어, 어 왜, 어쩌다, 대체.'

'쉬잇. 나 아프다, 카츠키. 치료해줘.'

 

이 사람이 자잘하게 다친 적은 많지만 크게 다쳐 온 적은 처음이라, 카츠키는 상태를 보기도 전에 상황 설명을 듣기도 전에 눈물부터 쏟았다. 눈을 감고 있는 그에게 들키지 않게 울음을 있는 힘껏 삼켜내며 카츠키는 떨리는 손으로 피를 닦아냈다. 폭발에 조금 휩쓸렸나. 어색하게 미소짓는 이 남자에게 아프면 울고 화 내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제 울음을 참느라 급급하여 그러지 못했다.

 

"카츠키."

"말 하지 마요, 약 바르는데."

 

그리고 애석하게도 이 남자, 카츠키가 울고 있었다는 걸 알아 버려서. 그냥, 떨리는 손이라던가 힘겹게 삼켜내는 숨이라던가. 모른다면 바보겠지만 숨기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모르는 척 했다. 하지만 끝까지 혼자 끌어안고 있기에는 너무 사랑스럽고 다정한 사실. 아닌 척 하는 사람에게 있는대로 사랑 받고 있는 거, 기분 좋아.

그 기분 좋음은 도를 지나쳐 결국 오랫동안 담고 있던 무언가를 그에게 전하기로 결심하기까지 이른다. 아주 뜬끔없고 괴상한 타이밍이라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한 입을 멈추지는 않는다.

 

"우리 있잖아…,"

"제 말은 어디로 듣는 거죠."

"결혼할까."

 

몇 마디 더 핀잔을 주려던 카츠키의 입술이 닫혀 버렸다. 재갈을 문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 입술이 꼬물거리다 결국 열리기를 거부한다. 이럴 줄 알았다는 양 토도로키는 웃는다. 눈 주변을 움직여선 안 되기에 조금은 이상한 미소였지만 행복함을 표출하는 수단으로써 본인은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그리고 그 행복함을 차마 다 꺼내지 못해 대뜸 말해버린 그것. 언제나 마음 속에 담고 있었지만, 카츠키는 몰랐을 그것.

 

"전쟁이 끝나서, 우리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만 말해요, 약 바르게. 좀."

"내가 찾아갈 때까지 기다려줘. 알겠지?"

 

응? 채근하듯 한 번 더 물어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다. 그게 또 너 다워서, 나는 또다시 웃어버렸다. 총과 칼이 난무하는 이 땅 끝 어딘가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너에게 마음을 전했으니 됐다. 그리고, 여전히 눈가에 닿는 손끝은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