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하이큐

[보쿠로] 씹게이가 전학왔습니다

pdom1nt 2016. 3. 5. 23:44

"쿠로오!"


씨발. 커다랗게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쿠로오가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쿠로오, 같이 가! 뒤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발소리에 쿠로오가 발을 더 바삐 놀리며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난 쿠로오가 아니다, 나는 쿠로오가 아니다. 지금부터 내 이름은 쿠로코다.

그런 쿠로오를 알 리가 없는 보쿠토가, 다리를 바삐 놀려 종종종 걸어가는 뒷모습을 싱글벙글 웃으며 바라보았다. 아, 오늘도 개 귀여워.


쿠로오가 자신의 말을 못 들은 척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보쿠토가, 다시금 그의 이름을 크게 불러대며 빠르게 달려가 어깨를 확 끌어 안았다. 우리 쿠로, 오빠 보고 싶었지?


쿠로오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아무런 존재감 없이 삼 년 동안 얌전히 지내다가 졸업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목표를 삼 분의 이 쯤 이뤄가고 있을 때, 그러니까 이 학년 말 쯤이었다.

헤이, 다들 안녕! 보쿠토 코타로야. 그 아이가 전학을 왔다. 하필이면 쿠로오의 반으로.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그를 슬쩍 쳐다 보았다. 세상의 즐거움은 혼자 전부 껴 안고 있는 것처럼 방긋거리는 얼굴에 별다른 관심이 생기지 않아 연필을 고쳐쥐고 다시금 문제집으로 코를 박았다.

쿠로오는 펜 대신 항상 예쁘게 깎인 연필을 필통 한 가득 채워 가지고 다녔다. 오이카와는 그런 쿠로오를 항상 놀려대곤 했다. 야, 초딩이냐. 하지만 쿠로오는 언제나 연필을 고집했다.

제게서 미련 없이 시선을 돌리는 쿠로오에 묘한 표정으로 새까만 머리통을 한 번, 그리고 연필을 꼭 쥔 손을 한 번 힐끗 바라 본 보쿠토가 자신의 이름을 말 할 때보다 조금 더 높고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어, 쿠로오!


쿠로오가 놀라 고개를 휙 들자 그 아이가 저를 향해 손을 팔랑이며 웃어 보이고 있었다.


쿠로오랑 친하니? 부랄친구예요! 의아한 듯 물어오는 담임에게, 장난스러운 어조로 대답한 보쿠토가 물었다. 쌤, 저 쿠로오 옆에 앉으면 안 돼요? 야속하게도 담임은 흔쾌히 그것을 허락했다.
아싸! 허공을 마구 움키며 신난 기색을 그대로 드러낸 보쿠토가 쿠로오에게 달려왔다. 쿠로오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 있었다.


안녕, 쿠로오. 보쿠토가 자기 나름에는 멋들어지게 웃으며 쿠로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건 또 무슨 개멋인지, 딱 세 손가락만 펴 흔들어대는 보쿠토를 향한 반감을 쿠로오는 숨기려 하지 않았다. 보쿠토는 몰랐지만.
정말로 제 옆에 앉을 셈인지 가방을 주섬주섬 책상에 내려놓는 꼴을 보고 쿠로오가 기분 나쁘다는 듯 말했다.


너 뭐야.
보쿠토지.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보쿠토에, 쿠로오의 입술 새로 황당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난 너 오늘 처음 보는데. 나도 오늘 너 처음 보는데?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보쿠토에, 쿠로오는 어이가 실종되는 기분이었다. 너 방금 나랑 부랄친구라고 했잖아. 응, 우린 이제 우린 부랄을 공유할 사이니까. 아니, 뭔 개소린데.

반 아이들이 그 둘 쪽으로 잠시 시선을 돌렸다, 다시 각자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매사에 침착하고 조용한 쿠로오가 지금처럼 큰 소리를 내는 것은 그다지 흔한 일이 아니지만, 보쿠토와 부랄친구라고 했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너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글쎄? 아오, 싯팔.


그리고 그 날부터 일주일 동안 보쿠토는 쿠로오를 미친듯이 쫓아다녔다. 급식실부터 화장실까지, 마치 쿠로오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아이처럼 쿠로오만을 쫓아다녔다. 쿠로오가 가는 곳에 보쿠토가 있었고, 보쿠토의 옆에는 항상 쿠로오가 일그러진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꼭 붙들려 있었다. 그리고 꼭 일주일이 지난 그 날, 보쿠토는 말했다.


쿠로오.
어.
나 게이야.
어.
너 좋아해.
씨발.

그 다음 날부터 보쿠토는 쿠로오에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다. 원래도 무지하게 쫓아 다니긴 했지만, 느낌이 조금 달랐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쿠로오만 알았다.
쿠로오는 보쿠토가 작업을 걸어올 때마다 같은 남자에게 성희롱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사실 기분이 아니라, 성희롱이 맞았지만.

쿠로오, 너 꼬추 한 번 만져봐도 돼?
쿠로오, 너 엉덩이 되게 예쁘다. 만지고 싶어.
쿠로오, 너 우유 먹을 때 조온나 야해. 설 것 같아.
쿠로오, 좋아해. 그러니까 나랑 잘래?

쿠로오, 쿠로오….


씨발, 그만 좀 해! 왜 나한테 지랄이야! 그리고 고백을 한 지 몇 주 쯤 지난 어느 날, 그러니까 어제, 평소처럼 자신이 주번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린 보쿠토와 강제적으로 함께 하교를 하다 텅 빈 운동장에서 쿠로오는 소리쳤다. 보쿠토는 장난끼 어린 표정 대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쿠로오의 팔을 움켰다. 쿠로오. 뭐, 씨발! 귀 끝까지 발개진 채 씩씩대는 쿠로오에, 보쿠토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쿠로오, 생각을 해 봐.
뭐?
멀쩡한 게이라면 당연히 너를 따먹고 싶어야 정상 아니겠어?
…….
나한테 죄가 있다면 지극히 정상인 거지. 그러니까 나랑 잘래?

그 날 쿠로오는 웃으며 다가오는 보쿠토의 얼굴을 후려 갈기고 도망갔다. 엄마 씨발!